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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여류비행사 권기옥

Jimie 2020. 4. 17. 12:52

    멋진언니    07.02.24 08:47

한국 최초, 여류비행사 권기옥


     


 

 

날개는 하늘 겨레의 꿈


태고 적 생명은 바다에서 태어나 땅을 가득 채우고 하늘을 꿈꾸었다. 하늘에의 꿈, 날고 싶다는 꿈은 진화를 향한 꿈이었다. 생명은 바다에서 태어났지만, 그 생명을 있게 한 근원은 하늘이라고 여겼다. 하늘은 신의 영역이었다. 그래서 인간이 하늘을 정복했을 때, 그것은 생명의 확장이자 생명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비행기는 하늘을 향한 꿈과 생명에 대한 도전이라는 양날을 가지고 있었다. ‘날개와 무기’라는 두 얼굴...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비행기가 살상무기로서 사신(死神)의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을 때, 역설적으로 하늘을 나는 것은 다시 생명을 지키는 일이 되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고향을 지키고, 민족의 생명 국가의 생명을 수호하는 일이 되었다.

우리 겨레는 한겨레, 하늘겨레이다. 한민족은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낳은 단군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구려인들은 스스로 천손(天孫)임을 자부했다. 한민족의 뿌리는 하늘이다. 외세의 침략과 환란, 곡절 많은 역사 속에서도 하늘의 꿈은 우리 겨레를 끈질기게 살아 오르게 하는 힘이었다. 20세기 초 일본제국주의가 한반도를 강점하고 하늘마저 빼앗았을 때, 겨레의 하늘을 지키고자 날아오른 젊은이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하늘을 나는 것은 꺼져가는 민족의 생명을 잇고 되찾는 길이었다.

빼앗긴 하늘에도 봄은 오는가!

 

 

△ 낡은 사진으로 남은 권기옥의 군복 차림.


일제 식민지시대 수많은 젊은이들이 자주독립의 비원을 안고 비행사가 되기 위해 중국대륙으로 갔다. “비행기로 민심을 격발하고 장래 국내의 대폭발을 일으키기 위함이라”“전쟁의 승패는 하늘을 제패하는 자에게 있다” 나라를 잃은 그들에게 비행기는 낭만적인 꿈이기에 앞서 독립투쟁의 무기로 다가왔다.

중국의 항공학교에서 비행술을 배운 젊은이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중국군에 들어가서 일본과 싸운다. 대륙의 하늘을 새벽별처럼 수놓고 이역만리에서 유성처럼 스러져간 젊은 비행용사들...... 중일전쟁의 막바지, 살아남은 비행사들은 조국진공작전을 세운다. 일명 ‘광복군의 비행대 편성과 조국진공작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군무부는 `한국광복군 건군 및 작전계획'에 덧붙여 ‘광복군 비행대(飛行隊)의 편성과 그 운용 방안’을 입안했던 것이다.

이 작전은 미 공군으로부터 비행기를 차용하고 중국 공군에 복무중인 한인 장교(조종사 및 정비사)를 광복군으로 전환시켜 비행대를 편성함으로써 광복군 총사령부와 국내 지하군과의 연락 임무 및 진공작전을 담당하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이 계획에 참여한 한인 비행사들은 중국 공군 대령 출신으로 당시 광복군 총사령부의 참모처장이었던 최용덕, 운남항공학교 출신인 권기옥과 이영무, 모스크바항공학교 출신인 김진일과 장성철, 독립운동가 손두환의 아들로 장세스의 전용비행기 부기장을 지낸 손기종 등이었다. 이 명단에서 이채로운 것은 권기옥이라는 여성비행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우리민족 최초의 여성비행사 권기옥


권기옥! 그녀는 누구인가? 식민지와 봉건 관습이라는 이중의 족쇄가 채워져 있던 시절, 그녀는 어떻게 비행사가 되고 조국의 해방을 위해 날아오를 수 있었던가?

 

 

△ 1928년 손정방 공군 비행기를 접수하러 갈 때(남장하고 중절모를 쓰고 있다)

 

1901년 평양에서 태어난 권기옥은 1917년 5월 미국인 비행사 아트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보고 날개의 꿈을 키운다. 평양 숭의여학교 재학시절 3.1운동 참여와 비밀활동으로 멸치배를 타고 상해로 망명한다. 상해에 도착한 권기옥은 비행술을 배우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한다. 두 군데 항공학교에서 여자라고 입학을 거절당하자, 그녀는 임시정부의 추천서를 품고 직접 멀고먼 운남으로 향한다.

1923년 12월 하순 운남에 도착한 권기옥은 성장인 당계요를 찾아가서 직접 담판을 지어서 입학을 허가받는다. 조선의 독립운동에 호의적인 군벌인 당계요 성장은 비행사가 되겠다고 이국만리를 찾아온 조선 소녀의 용기에 탄복하여 전격적으로 입학을 허가해준 것이다. 마침내 1925년 2월 28일 권기옥은 운남항공학교를 졸업하여 자랑스러운 윙 배지를 달게 된다.

 


1925년 5월 다시 상해로 돌아온 권기옥은 임정의 어른들을 찾아가서 조선 총독부를 폭파하겠으니 비행기를 사달라고 호기롭게 말하지만, 임정에는 비행기를 살 돈이 없었다. 1926년 봄 권기옥은 선배 독립운동가의 소개로 개혁성향 군벌 풍옥상의 항공대에 들어가기 위해 북경으로 간다. 당시 풍옥상의 항공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라고 일컬어지기도 하는 서왈보가 남원항공학교 교장 겸 동로군 항공대 대장으로 있었다. 1926년 4월 기옥은 동로군 항공대의 부비행원으로 임명된다.

 

 

△ 1926.4.20 동로군 부비행원의 임명장

 

1928년 북벌전쟁에서 승리한 국민혁명군이 손정방 군벌의 항공기를 접수하여 공군 창설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들은 기옥은 상해로 가서 중국 공군 비항원으로 임명받는다. 여기서 권기옥은 당시 손전방 공군의 비행사로 있다가 국민혁명군에 합류한 최용덕 비행사를 만난다.

1931년 만주를 기습 점령한 일본은 1932년 상해를 공격한다. 상해전쟁이 터지자 권기옥은 비행기를 몰고나가서 일본군에 기총소사를 퍼붓는다. 기옥은 중국과 일본의 전쟁이 확대되어 전면전이 되고 중국이 승리하면 조선도 해방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하지만 나약한 장개석 중국 정부가 만주를 일본에게 넘겨주는 대가로 정전협정을 맺자 권기옥은 통탄한다.

 

 

△ 1935년 중국 선전비행을 준비하던 무렵의 권기옥(왼쪽에서 두번째).

(가운데 이탈리아인 교관과 중국 최초의 여자 비행사 이월화와 함께)


1935년은 비행사로서 권기옥이 꿈에 한껏 부풀던 해였다. 당시 항공위원회 부위원장이던 송미령 부인이 권기옥에게 선전비행을 제안했던 것이다. 당시 중국 청년들이 비행기가 무서워서 공군에 자원하지 않자 고심 끝에 여류비행사의 선전비행을계획하게 되었던 것이다. 선전비행은 상해에서 북경까지 날아가는 화북선, 화남선, 그리고 동남아시아를 경유하여 일본까지 날아가는 남양선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상해에서 선전비행의 연습과 실무가 착착 진행되었다. 기옥은 남양선 비행의 마지막 순간을 일본 폭격으로 장식하겠는 뜻을 세우고 목숨을 걸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전비행 출발 당일 북경에서 대학생 시위가 확산되면서 정국이 불안해지자 선전비행이 무산되고 말았다.

1937년 여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권기옥은 육군참모학교의 교수직을 맡고 영어와 일본어, 일본군 식별법과 성격 등을 강의한다. 1939년 임시정부가 중경으로 와서 정착하자 권기옥은 임정인사들과 빈번하게 교류한다. 1943년 2월 23일에는 좌우로 분열되어 있던 부인들을 설득하여 대한애국부인회를 재건하고 선전부장을 맡는다.

 

 

△ 중경에서 재건된 대한애국부인회 동지들과 함께(오른쪽에서 두번째)

 

1943년 여름부터 권기옥은 중국군에서 비행사로 활동하던 동지들과 함께 한국비행대 편성과 작전계획을 구상한다. 이 계획은 2년 후인 1945년 3월 임정 군무부가 임시의정원에 제출한 <한국광복군 건군 및 작전 계획> 중 '한국광복군 비행대의 편성과 작전'으로 결실을 맺었다.


1945년 봄 권기옥은 희망에 들떠 있었다. 이제야말로 비행기를 타고 조선총독부를 폭격하리라던 19살 이후 20년간 품어온 꿈이 눈앞에 다가온 것으로 보였다. 조국 진공의 꿈이 실현되는 것을 눈앞에 두고 권기옥은 힘차게 날개짓하기 시작했다.

해방 후 권기옥은 조국으로 돌아와 최용덕, 이영무 등과 함께 대한민국 공군 창설의 산파가 된다. 최용덕 장군이 공군창설의 아버지라면, 국회 국방위 전문위원으로서 공군창설을 도왔던 권기옥은 ‘공군의 아주머니’로 불렸다.

 

 

△ 한국전쟁 당시 전방을 시찰하는 권기옥과 지청천 장군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권기옥은 국방위 전문위원으로서 최전방 격전지를 돌아다니며 국방위원의 임무를 수행했다. 국민방위군 사건을 조사하고,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의 격전지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도 갔다. 금화지역 전방에서 급식 조사를 하던 중에 폭설이 내려 일주일을 갇힌 일도 있었다.



△ 한국전쟁중 미공군 헤스 중령과 함께

 

아름다운 대한민국 공군의 뿌리


현재 창군 60주년을 바라보는 대한민국 공군은 공중과 우주, 정보영역을 넘나들며 한국의 국익과 안보를 보장하는 ‘항공우주군’으로서의 비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하늘(Sky)' 또는 공중(Air)'의 영역을 넘어 우주(Space)로! 멋진 미래상이다. 그러나 아무리 멋진 집이라도 지반을 다지는 과정이 없이 세워진다면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공군의 미래상이 현재의 공군에게 달려있듯이, 현재의 공군을 있게 한 과거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한민국 공군은 빼앗긴 겨레의 하늘을 지키기 위해 날아올랐던 용감하고 아름다운 젊은이들을 그 뿌리로 하고 있다. 그 뿌리를 발굴, 재조명하고 튼실하게 북돋는 일이야말로 공군이 미래로 우주로 날아오르기 위해 한 첫출발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사제공= 공군뉴스레터 http://www.airforce.mil.kr:7778/news/afnews/afnews_3_1177.jsp
작성 : 소설가 정혜주
작품집으로 [내안의 불빛]이 있음.
현재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 평전을 집필중이다.
(http://www.funnu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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