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촌분(村者)ㅎ~, 88올림픽 전이니까 1987년?, 일본 자유민주당 동경도련의 초청이...
당시 일본은 전국이 가라오케 열풍이었고 우리 나라는 이제 막 시작할까 말까하던 때다.
묻지마 반일투사였던 이 村者, 일본어는 물론 못하고 일본에 대해 아는 것도 발바닥 수준.
혐일에 반일에 게다짝 쪽바리 알기를 무조건 아주 우습게 알고 살았던 결과이기도 하지만...
일본에 대해 뭘 좀 알아본다고 ㅎ가로 늦게 주책을 떤다.
당시 일본에서 제일 유행했던 노래로
센마사오(千昌夫)가 불렀던 '북국의 봄(北国の春)'이란 노래를 발견하고 ㅎ
그걸 배운다고 무조건 외우고 흉내내면서 따라한다. 그걸 방일 준비라고 참 한심한 촌룸ㅎ~
(이 때 일본 노래는 일반적으로 3절까지 있다는 걸ㅋ~, 우리도 예전엔 3절까지 있었는데... 일본 안 따라가? )
도쿄를 방문하여 안내받은 가라오케에서 체면치례한다고 촌분은 그걸 써먹었지ㅋ
그 노래를 모르는 왜인은 한 사람도 없었으니 분위기가 좋았는지는 묻지를 마시라...
그 몇년후 미국행 대한항공기.
아마도 호ㅊ카이도 상공쯤 지날 즈음일까, 기내방송에서 '북국의 봄'이 흘러나오지 않겠나.
저으기 내심 조금 반갑기도 했지비라.
나에겐 가라오케 원조의 나라에서, 생애 첫 가라오케 무대 데뷔곡이 아니던가 ㅎ
(실제 가라오케라는 데를 난생 처음 도쿄에서 가 보았으니...)
「北国の春」(きたぐにのはる; 키타구니노 하루)~~~
* ㅎ 한국 가라오케 무대 활동 당시, 촌분의 예명은 ㅎ 참고로ㅋ "北西風"이었다.
시방, 그 시절의 北西風, ' 北国の春 '을 만나자니
감회도 새롭거니와
촌룸, 향수병이 갑자기 도진다.
고향은 내 사랑~!
나, 이제
내 고향으로 돌아갈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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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国の 春/千 昌夫
북국의 봄 / 센 마사오
1977년 4월
作曲: 遠藤実 (엔도미노루) 作詞:いではく(이데하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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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dAGlWpBaFHA
1.
白樺 靑空 南風
시라카바 아오조라 미나미카제
자작나무 푸른하늘 남쪽바람
こぶし咲く あの丘 北國の ああ 北國の 春
고부시사쿠 아노오카 기타구니노 아아 기타구니노 하루
백목련 피는 그 언덕 북녁의 아아 북녁의 봄
季節が 都会では わ からないだろと
기세츠ㅇ가 도카이데와 와카라나이다로토
계절을 도회에서는 모를 거라며
屆いた おふくろの 小さな 包み
도도이타 오후쿠로노 치이사나 츠츠미
보내 온 어머니의 자그마한 소포
あの 故鄕へ 歸ろかな 歸ろかな
아노 후루사토에 가에로카나 가에로카나
그 고향에로 돌아갈까나 돌아갈까나
2.
雪どけ せせらぎ 丸木橋
유키도케 세세라ㅇ기 마루키바시
눈 녹는 시냇물소리 외나무다리
からまつ
落葉松の 芽がふく 北國の ああ 北國の 春
가라마츠노 메ㅇ가후쿠 기타구니노 아아 기타구니노 하루
낙엽송 싹트는 북녁의 아아 북녁의 봄
好きだと お互いに 言いだせないまま
스키다토 오타ㅇ가이니 이이다세나이마마
좋아한다고 서로에게 말도 꺼내지 못한 채
別れて もう五年 あの娘は どうしてる
와카레테 모우고넨 아노코와 도우시테루
헤어진지 벌써오년 그녀는 무얼 하고있을까
あの 故鄕へ 帰ろかな 帰ろかな
아노 후루사토에 가에로카나 가에로카나
그 고향에로 돌아갈까나 돌아갈까나
3.
山吹 朝霧 水車小屋
야마부키 아사ㅇ기리 스이샤고야
황매화 아침안개 물방아간
わらべ唄 聞こえる 北國の ああ 北國の 春
와라베우타 기코에루 기타구니노 아아 기타구니노 하루
어린이노래 들려오는 북녁의 아아 북녁의 봄
兄貴も 親父似で 無口な ふたりが
아니키모 오야지니데 무쿠치나 후타리ㅇ가
형님도 아버지닮아 말없는 두 사람이
たまには 酒でも 飮んでるだろうか
타마니와 사케데모 논데루다로우카
이따금은 술이라도 마시고 계실까
あの 故鄕へ 歸ろかな 歸ろかな
아노 후루사토에 가에로카나 가에로카나
그 고향으로 돌아갈까나 돌아갈까나
千 昌夫[ 센마사오, 1947년생 ; 本名:阿部 健太郎(あべ けんたろう, 아베 켄타로우)] 는
岩手縣 陸前高田市에서 가난한 농부의 차남으로 태어나 小學 4학년 때 父親 사망。
수업료가 없어 고2 봄에 휴학하고 상경, 유명作曲家 遠藤實 (엔도미노루) 門下에서 학습, 1965年에 『君が好き』 로 정식데뷔하여。가수의 길로 들어선 그는 1966년 발표한 '星影のワルツ' 가 170만장 발매되면서 第1回日本有線大賞特別獎을 수상하고 1968년 第19回NHK紅白歌合戰出場으로 무명가수를 벗어 날 즈음 1979년에는, 1977년에 발표한 "北国の春"의 대힛트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北国の春」(きたぐにのはる)は、1977年4月5日に発売された千昌夫のシングルレコードである。
「북국의 봄」(키타구니노하루)는, 1977년 4월 5일 발매된 '센마사오'의 싱글 레코드이다.
オリコンシングルチャートでは、100位以内初登場から通算92週目でミリオンセラー達成。
오리콘 싱글차트에서는 100위 이내 첫 등장부터 통산 92주째로 밀리언 셀러 달성.
この数字は、後年に至るまでミリオンセラー達成までの100位圏内チャートイン週数が歴代1位であった。
이 숫자는 후년에 이르기까지 밀리언 셀러 달성까지 100위권내 차트인 주수가 역대 1위였다.
同チャートの100位以内チャートイン数は通算134週、連続111週(1978年1月16日付〜1980年2月18日付)となっている。
「北国の春」の累計売上は300万枚。
이 차트의 100위내 차트인수는 통산 134주,연속 111주(1978년 1월 16일자~ 1980년 2월 12일자)이다.
'북국의 봄' 누계매상은 300만매.
曲のヒットで千昌夫は、1977年大晦日放送の『第28回NHK紅白歌合戦』に第22回(1971年)以来6年振りの出場を果たした。以降、同楽曲の超ロングセラーにより第29回(1978年)、第30回(1979年)と3年連続で披露するに至っている。また『紅白歌合戦』において、3年連続で同一曲を歌唱するのは「北国の春」が史上初めてであった。
곡의 히트에서 센마사오는 ,1977년 새해전날 방송의 '제 28회 NHK홍백가합전'에 제 22회(1972년) 이후 6년만의 출장을 이루었다. 이 곡의 슈퍼 롱 셀러로 제 28회(1977년)에 이어 제 29회(1978년), 제30회(1979년)의 3년 연속으로 선보이기에 이르렀다. 또 '홍백가합전'에서 3년 연속 동일곡을 가창한 것은 '북국의 봄'이 사상 처음이었다.
その後も第33回(1982年)と、昭和時代が終わりを迎えた1989年の『第40回NHK紅白歌合戦』(初めて2部構成となった紅白)前半部分「昭和の紅白」でも歌われた。20世紀内における紅白では、ひとりの歌手にもっとも多く歌われた楽曲のひとつになっている(もう一曲は、渡辺はま子「桑港のチャイナ街(サンフランシスコのチャイナタウン)」で、特別出演を含めて同じく5回[9])。21世紀になってからは、2011年の第62回でも歌われた。
그 후로도 제33회(1982년)와, 쇼와 시대가 끝을 맞이한 1989년 『第40回NHK紅白歌合戦』(처음 2부 구성이 된 홍백전) 전반부 「쇼와의 홍백」에서도 노래했다. 20세기내에 홍백에서 한 가수에게 가장 많이 노래된 곡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다른 곡은 와타나베 하마코의 「샌프란시스코 차이나 거리(샌프란시스코 차이나 타운)」 에서 특별 출연을 포함 , 같은 5회임).
21세기 되고 나서는 2011년의 제 62회에서도 노래되어 총 6회를 기록하였다.
「北国の春」이 일본 역대 최고의 인기곡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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