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sons

觀相不如心相 一切唯心造

Jimie 2020. 4. 15. 21:04


一切唯心造  !

세상만사 마음짓기!


 '행복은 만족하는 데 있다'

~서양 속담~


행복할 것인가?는 내 마음이 만족하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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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상은 심상만 못하고,
심상은 덕상만 못하다.


마의상서麻衣相:관상학》
*마의선사(麻衣禪師)는 중국 당나라 말기와 송나라 초기 관상법을 저술한 도인.

相好不如身好

상호불여신호
(얼굴이 좋은 것은 몸이 좋은 것만 못하고)


身好不如心好

신호불여심호
(몸이 좋은 것은 마음이 좋은 것만 못하고)


心好不如德好

심호불여덕호
"마음이 좋은 것은 덕성이 좋은 것만 못하다" 


이 글은 중국 초나라와 한나라를 거쳐 당나라에 이르러 관상학을 집대성한  '마의선인(麻衣禪師)'이 쓴

마의상법麻衣相法》, 마의상서(麻衣相書일종의 관상학) 마지막 장에  추가한 내용인데, 그 사연이다.


하루는 마의선인이 길을 가던 중 나무하러 가는 머슴살이 총각을 만났는데, 꼭 죽을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의선인은 그에게 "얼마 안 있어 세상을 떠날 것 같으니 무리해서 고생하지 말게." 말한 후 ,지나갔습니다.

머슴살이 총각은 그 말을 듣고 낙심하여 하늘을 바라보며 탄식하다가,

계곡가에 앉아 물에 떠내려 오는 나무껍질 속에 수많은 개미떼가 물에 빠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총각은 자신의 신세와 같은 개미에게 연민(憐愍)을 느끼고 나무껍질을 물에서 건져 개미떼들을 모두 살려주었습니다.

며칠 후, 마의선인은 우연히 며칠 전의 그 머슴총각과 다시 마주치게 되었는데, 아~, 이게 웬일인가!

그 총각의 얼굴에 서려있던 죽음의 그림자는 온데 간데없고 오히려 30년 넘게 부귀영화를 누릴 관상으로 변해있었습니다.
마의선인은 총각으로부터 수천 마리의 개미를 살려 준 이야기를 듣고 크게 깨달아 자신이 지은 책 〈마의상서〉 마지막 장에 

추가하여  남긴 말이 바로  "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  心好不如德好"  이라는 유명한  글귀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은 젊은 날 조선시대 과거제도의 부정부패를 목도하고 관직에 대한 희망을 접으면서 아버지의 권유로

 마의상서를 공부하다가 자신의 얼굴부터 살펴보았더니 얼굴엔 마마를 앓은 자국이 남아 자신이 보기에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겁니다.

김구 선생은 그 후 깨달음을 얻어 觀相不如心相 관상불여심상” 즉, 관상이 아무리 좋아도 마음 씀씀이보다는 못하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마음을 수양하고 닦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아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도 ‘사람 얼굴은 뱃속에서 나올 때 부모가 만들어 준 것이지만 그 다음부터는 자신이 만들어가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공자님도 나이 사십이면(不惑)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이 곱고 심성이 착하고 남에게 배려하고 베풀어 덕성을 쌓으면 사람의 관상은 은은하게 편안하게 변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선하게 살면 해맑은 얼굴로 꽃피고 세상을 불편하게 살면 어두운 얼굴로 그늘이 집니다.

마음의 거울이 바로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외적 관상((觀相)은 보이지 않는 내적 심상(心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심상은 관상보다 앞선다 하겠습니다.


 “마음이 얼굴을 결정한다”는 말,

 “세상사는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

“마음이 고우면 얼굴도 고와 보인다”는 말은

외적 관상((觀相)은 보이지 않는 내적 심상(心相)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즉, 심상은 관상보다 앞서는 것입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영혼과 육체는 하나이며 영혼의 아름다움은 얼굴에 나타난다고...

   


        마음먹기에 따라 운명이 바뀐다. 내 인생은 내가 열어가는 가르침이다.

一切唯心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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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好不如身好

身好不如心好

心好不如德好



금오산(金烏山 976.7m)



관상학과 관련된  저작들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인해 대부분 불타 없어졌지만 도제(徒弟)를 통해 비밀리에 전해져 내려와 명맥을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렇게 구전형태 혹은 도제형태로 전해져오던 관상학은 중국의 남북조시대 때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선종(禪宗)의 시조가 되었던 달마대사(達磨大師)가 달마상법(達磨相法)이라는 관상학을 정립함으로서 최초의 학문적인 관상학이 성립되었다고 한다.



 현대관상학의 시조로 알려진 당나라의 마의선사(麻衣禪師)는 화산(華山)의 동굴에 살면서 겨울에도 삼베옷인 마의(麻衣)를 입고 공부하면서 마의상서(麻衣相書)를 지었다하여 사람들이 마의선사(麻衣禪師)라 불렀다고 한다.


마의선사의 제자 진박(陳搏)은 마의선사의 상학비전(相學秘傳)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마의상법(麻衣相法)”이라는 책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된 진박의 마의상법이 유명해지자 송나라 태종(宋太宗)이 그를 불러 그 책을 극찬하며 벼슬을 주었으나 진박은 태종의 호의를 뿌리치고 그의 스승이 그랬던 것처럼 화산석실(華山石室)로 들어가 “신상전편(神相全編)”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관상학은 위에 약술한 달마상법과 마의상법을 2대 축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선봉사(僊鳳寺) 대각국사(僊鳳寺大覺國師) 의천(義天) & 명(明) 태조 홍무제(洪武帝) 주원장(朱元璋)

▲ 여염집같은 선봉사(僊鳳寺).

경북 칠곡군 북삼읍 숭오(崇烏)리 산1번지에 자리한 선봉사



숭오리(崇烏里) 숭산(崇山) 마을

* 숭산(崇山) 마을과 오평(烏坪) 마을의 첫 글자를 따서 숭오(崇烏)라고 하였다.

명(明) 태조 홍무제(洪武帝) 주원장(朱元璋)이 출생한 전설의 고향, 금오산(남숭산) 숭산(崇山) 마을

조선 시대에는 인동군 북삼면(北三面)에 속하였고 오늘날은 경상북도 칠곡군 북삼읍에 속하는 법정리.


숭오리(崇烏里)는 칠곡군의 가장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금오산(金烏山)[976.7m]의 남사면이다.

금오 동천(金烏洞天)은 계곡 피서지로 유명하며, 금오산을 오르는 등산로의 입구에 해당된다.



숭산(崇山) 마을은 금오산[남숭산]의 동남쪽 자락에 있는 마을이다.

수령 약 250년 된 높이 25m의 숭오리 느티나무 한 그루가 마을의 정자목으로 자리한다.

마을 북쪽 대각사에는 대각 국사 의천(義天)[1055~1101]의 공적을 말해 주는 선봉사 대각 국사비[보물 제251호]가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칠곡 북삼읍 숭오(崇烏)리 산 1번지, 선봉사 대각국사비(漆谷僊鳳寺大覺國師碑).

보물 제251호.


1천년 세월~...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의  교선(敎禪) 일치를 주장하고 천태종을 개창한 

대각국사(1055∼1101))의 공적을 기리는  선봉사대각국사비(僊鳳寺大覺國師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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