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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는 8년째 항전 중입니다."

Jimie 2022. 8. 26. 00:26

[취재파일] "우크라이나는 8년째 항전 중입니다."

  • SBS
  • 안상우 기자(asw@sbs.co.kr)
  • 입력2022.08.25 18:07

지난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6개월이 지났습니다. 당초, 열흘도 버티지 못할 것이란 예상을 깨고 우크라이나는 수도 키이우를 향해 진격해오던 러시아군을 동부 전선으로 몰아내며 항전을 지금까지 이어왔습니다.

침공 6개월째인 어제는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지 31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는 상징적인 날이지만, 러시아는 이를 의식한 듯 어제도 공습을 감행했습니다. 러시아의 공격은 우크라이나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주에 위치한 채플린이라는 작은 마을로 향했고 11살 소년을 비롯해 민간인 최소 25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https://tv.kakao.com/v/431477142

 

▲ 24일 러시아의 로켓포 공습 직후, 11살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모습

세르히/아버지
"집에 있던 아들이 (로켓 공격으로) 여기까지 튕겨져 나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지붕으로 튕겨져 나갔거나 폐허 아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찾았지만 여기에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죽지 않기 위해 국민의 절반이 고향을 떠났다



러시아군의 공습이나 집단 학살로 인해 가족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우크라이나 민간인은 지금까지 2만 8천5백 명으로 추산됩니다. 이마저도 추정치입니다. 아직 우크라이나군이 되찾지 못한 마리우폴, 루한스크에서 얼마나 많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목숨을 잃었는지를 파악하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러시아군이 휩쓸고 간 곳에서는 어김없이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희생당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고향을 떠나고 국경을 넘는 것입니다. 유엔난민기구, UNHCR에 따르면 러시아의 침공 이후 1,115만 명이 국경을 넘어 피란을 떠났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전체 인구가 4천4백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침공 초기 총동원령으로 인해 성인 남성은 국경을 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민의 절반이 살기 위해 피란을 떠난 셈입니다.


▲ 국경을 넘은 우크라이나 피란민 누적 현황 (출처 : 유엔난민기구)

이렇게 떠난 이들 중 상당수는 다시 돌아오기도 합니다. 외교부의 허가를 받고 저 역시 폴란드에서 우크라이나 키이우로 10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지난 6월 향한 적이 있는데, 그 버스 안에는 남편과 아들, 아버지를 두고 떠난 우크라이나 여성들로 득했습니다. 남겨둔 가족을 한 번이라도 다시 보기 위해 목숨을 걸고 결연하게 고향으로 향하는 그들의 모습이 여전히 기억에 남습니다.

키이우행 버스 안 사진, 지난 6월

 

 

전쟁은 2014년부터 시작됐다



저는 2주간 키이우를 취재하면서 현장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이번 전쟁에 대한 견해를 물었습니다. 특히, 저는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민간인 피해가 커지는 만큼 영토를 되찾는 것보다 먼저 휴전을 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니냐고 집요하게 질문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온 대답은 러시아는 "2014년부터 똑같은 방식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잠식해왔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러시아가 6개월 전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전면 침공을 감행하기 정확히 8년 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크름 반도와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 군 병력을 투입했습니다. 그 결과, 러시아는 크름 반도를 강제 병합했고, 동부 돈바스 지역에는 친러시아 성향의 분리주의 공화국이 세워졌습니다. 이후 돈바스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과 분리주의 세력의 크고 잦은 무력 충돌로 약 1만5천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6개월 동안, 러시아는 크름 반도와 돈바스, 마리우폴 등 주요 도시를 포함해 우크라이나 영토의 1/5을 빼앗았습니다. 만약 지금 휴전을 하더라도 과거와 마찬가지로, 1,000km에 달하는 전선을 두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는 크고 잦은 무력 충돌이 생길 것이며 양측의 군인을 비롯한 민간인 피해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러시아가 스스로 충분히 재정비했다고 판단했을 때, 친러시아 세력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또 다시 침공해올 수 있다고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생각합니다.

실제로, 지난 6월 월스트리트저널이 여론조사업체에 의뢰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러시아가 이번 침공 이전부터 점령하고 있던 남부 크름 반도와 동부 돈바스 지역 일부를 내주고 휴전하는 방안에 대해 우크라이나 국민 10명 중 8명이 반대 의사를 나타냈습니다. 이는 러시아군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한다면 2014년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잔혹하고도 뻔뻔한 침공 행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없다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공감대인 것입니다.

세 번째 국면을 맞이한 우크라이나 전쟁



국민의 공감대를 반영하듯,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연일 크름 반도에서 시작된 이번 전쟁을 크름 반도는 물론 러시아군이 빼앗은 영토 모두를 되찾음으로써 마무리 짓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단순히 의지만 표출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이달 들어 크름 반도에 있는 러시아군의 사키 군 비행장이라든가, 잔코이 군 탄약고 등에서 정체 모를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우크라이나 군 당국은 공식적으로 자신들의 군사 행동이었음을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러시아가 그토록 원했던 부동항을 갖기 위해 강제로 빼앗은 크름 반도에서 러시아의 군 기지가 공격에 노출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우크라이나의 반격으로 이번 전쟁이 세 번째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습니다. 특히, 반격이 성공한다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쟁에 대한 대중의 지지를 전과 같이 유지하기 힘들 것이고, 그동안 누적된 러시아군의 피로도, 부담 등을 고려하면 지난 6개월과 달리 앞으로의 6개월은 우크라이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 내다봤습니다. 사실상, 러시아의 침략 행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결정적인 국면에 다가선 것입니다. 8년째 항전 중인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이번에야 말로 자신들이 가장 원하는 방식으로 이 전쟁을 끝낼 수 있기를 고대해봅니다.
안상우 기자(asw@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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