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에 계신 아버님의 이름이 욕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998년 4월 2일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 그날 밤 당선을 확인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朴槿惠) 당선자는 목소리는 잠겼지만 분명하게 포부를 밝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1997년 11월, IMF 사태를 계기로 제15대 대통령 선거 후보 이회창을 지지하며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첫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이듬해인 1998년 대구시 달성군 보궐선거에 출마하여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다.
15대 대선 당시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박정희 신드롬' 이 일어났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측은 박정희 대통령의 그림자인 박근혜를 자신의 지원유세에 끌어들인 것이다. 결국 이 후보는 패했지만 '정치인 '박근혜' 는 확고하게 부각되기 시작했다.
그 다음해 달성군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인 김석원 의원이 쌍용그룹 회장 복귀를 이유로 사직함에 따라 보궐선거가 이뤄졌다. 당시 국민회의 엄삼탁 후보의 조직과 자금력을 부담스러워한 한나라당 지도부는 박근혜를 조건없이 달성군의 후보로 불러들이게 된다. 이때부터 박근혜는 달성군과의 정치적 인연이 시작된다.
최소한 TK에서는 무적이라며 박근혜 후보는 선거과정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사진 피켓을 흔들고, 새마을 노래를 불러가면서 선거운동에 매진한 결과 보선에 승리했다.
당선권에 접어들자 그는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목이 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이후 달성군에 제16대에서 제18대까지 내리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햇수로 치면 보선 잔여임기 2년을 합쳐 모두 14년을 달성군에서 정치적 인생을 누린 셈이다.
달성 국회의원 시절에 자주 지역 내 경로당을 돌며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리러 다녔다. 한 할머니는 버선발로 뛰어나와 눈물을 글썽이며 1만원권 지폐를 꼬깃꼬깃 접어 그의 손에 쥐어줘 주변을 숙연케 하기도 했다.
제17대 국회의원 시절인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의 역풍으로 기존 한나라당 주요 인사들이 몰락한 상황에서 당대표로 선출됐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각종 선거에서 승리를 이끌면서 이때 '선거의 여왕'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8년 18대 총선 직전에는 당시 한나라당의 '친박 학살' 공천을 강하게 비판한 뒤 3월 24일부터 17일간 달성군에만 머물렀다. 결과적으로 '친박 열풍'의 진원지가 된 셈이다.
2010년 치러진 6·2지방선거에서 "선거는 당 지도부 위주로 치르는 게 맞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14일간 달성군수 선거 지원에 매달렸다. 하지만 결국 당 공천자가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문오 현 군수에게 고배를 마시는 이변을 맞기도 했다.
2012년 4월 제19대 총선에서 달성군 지역구를 떠나 비례대표로 당선된 박 전 대통령은 선거 3개월후 15대 보궐선거 당시부터 보금자리였던 화원읍의 대백아파트를 매각하고 주소지를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옮기게 된다.
그해 12월의 제18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 민주통합당 소속 문재인 후보를 상대로 당선됐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결국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이어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에 따라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진했다.
현재 달성군에는 박 전 대통령의 달성국회의원 시절 동고동락 하면서 '원조친박'으로 통하는 이종진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박경호 전 달성군수, 변태곤 국회의원시절 보좌관, 채석규·곽병천 전 지구당 운영위원 등이 다시 모여 입주 후 역할을 모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