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권 교체 민심이 가른 대선, 國政 바로잡아 달란 뜻
1987년 직선제가 도입된 이래 정권은 예외 없이 10년 간격을 두고 보수와 진보 정파 사이를 오갔다. 더구나 대통령 탄핵 사태로 몰락하다시피 했던 보수 정당이 5년 만에 정권을 되찾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드물었다. 윤석열 당선인이 작년 3월 평생 몸담아온 검찰을 떠나 정치적 도전을 시작했을 때 그의 성공을 점치는 사람 역시 많지 않았다. 과거 이런 경력의 대선 주자가 일으킨 바람은 일시적인 경우가 많았다. 윤 당선인의 대선 승리는 정치사에 없던 일이다.
이처럼 어려운 승리가 가능했던 가장 큰 동력은 문재인 정권의 교체를 바라는 민심이었다. 대선 기간 중 정권 교체 민심은 언제나 정권 유지를 크게 앞섰다. 이번 대선은 윤 당선인의 승리이자 정권 교체 민심의 승리다.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민심은 결국 지난 5년 상식과 정도를 이탈한 국정 진로를 바로잡아 달라는 뜻일 것이다.
문 정권이 나라 전체보다 정파의 이익을 앞세우면서 헝클어진 국정 분야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탈원전과 소득 주도 성장, 이념적 부동산 정책도 합리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나라를 포퓰리즘의 늪에서 건져내야 한다. 문 정권은 5년 간 국가 부채를 415조원이나 늘려놓았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문 정권 전까지 역대 정부가 진 빚이 모두 600조원임을 감안하면 너무나도 방만한 빚 늘리기였다. 415조원은 나라와 경제의 면모를 바꿀만한 엄청난 돈이지만 어디로 갔는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정치와 선거가 포퓰리즘에 감염되면 정치인들은 경쟁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게 된다. 이번 대선에서도 여야는 주거니 받거니 수백조 규모 공약을 쏟아냈다. 이 폭주 열차를 멈추지 않으면 지금 청년 세대는 그리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나라를 물려받게 될 수 있다. 윤 당선인은 도저히 감당 못 할 약속들은 욕먹을 각오로 거둬들였으면 한다. 코로나 피해 계층에 대한 지원은 꼭 필요하지만 이 역시 국가 재정 상황과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외교와 안보는 지난 5년 동안 골병이 들었다. 한미 관계는 형식적 동맹과 같은 상태가 됐다. 대선 결과가 나오자마자 바이든 미 대통령이 윤 당선인에게 전화를 걸어와 “빠른 시일 내에 만나자”고 제안한 것도 그런 까닭일 것이다.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으로 추락했다. 한중 관계는 3불 약속으로 군사 주권을 내줄 정도로 저자세로 일관했다. 모두 정상화돼야 한다.
문 정권이 외교 안보를 이렇게 만든 것은 북한 김정은 정권에 대한 환상 때문이었다. 북핵을 사실상 인정하고 대북 제재를 풀어 남북 이벤트 벌일 생각만 했다. 그러는 사이 군은 ‘대화로 나라를 지킨다’고 선언하는 지경이 됐다. 이제는 북한의 도발을 도발이라고 말조차 못 한다. 돌아온 건 더 커진 북핵 미사일 위협이다. 북한은 우리 새 대통령 취임 전후에 어김없이 도발해왔다. 새 정부를 길들이려는 것이다. 이번에도 상당한 도전이 예상된다. ICBM 발사나 핵실험 등 대형 도발로 나올 수도 있다. 어쩌면 이것이 윤 당선인인 마주할 첫 도전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윤 당선인은 갈라질 대로 갈라진 나라를 통합해야 할 막중한 책임도 지고 있다. 이번 대선 승패는 0.73%포인트 차로 갈라졌다. 24만7000여 표 차다. 역대 대선 최소 표 차다. 이를 우리 사회의 분열을 보여주는 것으로 보는 국민이 적지 않다. 문 정권은 매사 국민을 가르는 방식으로 정치를 해왔다. 새 정부도 스스로 그런 문제가 없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현재 국회를 장악한 거대 야당의 협조 없이는 새 정부의 원활한 국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다음 총선까지는 2년이나 남아 있다. 거대 야당과 2년 동거, 협치가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윤 당선인이 기댈 언덕은 정권 교체를 통해 국정을 바로잡아 달라고 한 국민의 지지밖에 없다. 민심은 윤 당선인이 문 대통령과는 다른 리더십을 보여주길 바란다. 어떤 경우든 뒤로 숨지 않고, 공은 아래로 돌리고 책임은 자신이 지길 바란다. 겉으로 하는 말과 실제 행동이 같아야 한다. 착한 척하며 뒤로는 다른 일을 꾸미는 대통령은 더는 없어야 한다. 내 편만 챙기는 국정도 끝나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은 새 정부에서 ‘내로남불’만은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윤 당선인은 문 정권의 위선과 내로남불에 맞섰던 공정과 상식으로 국정을 운영하기 바란다.
윤 당선인의 첫 국정 시험대는 비서실과 내각 인선일 것이다. 국민은 편을 가리지 말고 능력 있는 사람을 폭넓게 기용하는 대통령을 보고싶어 한다. 편중되지 않은 상식적 인선, 야당도 대체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인선을 원한다. 거대 야당이 그런 인사를 무조건 낙마시켜 정치적 이득만을 취하려 한다면 국민이 그 야당에 회초리를 들 것이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을 청와대에서 광화문 정부 청사로 옮기겠다고 했다.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언론 앞에 자주 서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도 5년 전에 똑같은 다짐을 했지만 정반대로 했다. 윤 당선인 말의 무게는 전임자와 다른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이 약속만 실천에 옮겨도 ‘제왕적 대통령’ ‘불통(不通) 대통령’ 문제는 해소되기 시작할 수 있다.
윤 당선인은 자신이 정치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다. 그래서 윤 당선인의 대선 구호는 ‘국민이 불러낸 윤석열’이었다. 정치를 시작한 후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왜 국민이 저를 불러내셨는지를 생각했다”고 했다. 윤 당선인은 앞으로도 5년 동안 끊임없이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고 답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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