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서 생이별 속출… “죽어도 가족과” 귀국하는 청년도
[우크라이나 국경 현장, 정철환 특파원 르포]
키예프發 열차 도착역은 난민캠프… 부모는 징집되거나 탈출 못해
80여명 중 30명이 어린아이들 “여기서 만나자 했는데…” 눈물
美영사센터에도 피란민 몰려 “머물게만 해달라” 소파서 쪽잠
“옷가지만 챙겨 겨우 왔어요. 갈 곳이 없습니다. 제발 이곳에라도 머물게 해주세요.”
지난 24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서쪽으로 약 27㎞ 떨어진 폴란드 도시 프세미시우 외곽의 ‘글로리아’ 호텔 2층. 미국 대사관이 긴급하게 마련한 영사지원센터가 자리한 이곳에 이날 밤늦게 아이 둘을 데리고 도착한 부부가 눈물을 글썽이며 사정을 했다. 정신없이 전화를 받던 직원이 “일단 이곳에서 쉬고 계시라”며 복도 한쪽 소파로 이들을 안내했다. 이들은 이날 밤을 호텔 소파에서 났다. 아이들 아버지(35)는 “아직 부모님과 장인·장모가 키예프에 계신데, 이러다 생이별을 하게 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고 울상을 지었다. 아버지와 장인 모두 동원 대상인 18~60세에 포함돼 우크라이나를 떠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출발한 열차가 도착하는 프세미시우 중앙역에도 25일 피란민들을 위한 임시 난민 캠프가 차려졌다. 경찰과 군인들이 삼엄한 경비를 펼치는 역 안으로 들어가니, 오른쪽 복도 끝에 피난민 80여 명이 머물고 있는 임시 거처가 보였다. 폴란드 구호단체 봉사단원들이 이들에게 음식과 휴지, 담요 등을 건네자 몇몇 사람들은 눈물을 보였다. 아나니(18)라는 한 소녀는 “나와 남동생이 먼저 나왔고, 어제 저녁 여기서 부모님과 만나기로 했는데 연락이 끊겼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전투가 벌어지는 우크라이나로 다시 돌아가려는 사람도 만날 수 있었다. 대학생 브세볼로드(22)씨는 “오후 1시10분 키예프행 열차를 타러 왔다”며 “부모님이 절대 오지 말라고 했지만, 삶이든 죽음이든 가족과 함께하겠다”고 했다.
이날 아침 폴란드 크라쿠프의 우크라이나 영사관 앞에는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우크라이나인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비자와 여권 문제 외에도 우크라이나 현지의 가족과 연락이 안 된다며 도움을 청하러 온 사람도 있었다. 크라쿠프에서 일하고 있다는 30대 여성 크비토슬라바씨는 독일어로 “드니프로에 사는 가족이 연락이 안 된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들은 ‘라이브UA맵’이라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 시시각각 전해지는 우크라이나의 전황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앱에는 우크라이나 어디에 미사일이 떨어지고, 러시아군이 목격됐는지, 피해는 얼마나 큰지 등이 지도 위에 자세히 표시됐다. 정부 기관이나 언론인, 일반 시민들이 트위터에 올린 내용들을 서비스 업체가 분석해 지도 위에 아이콘으로 표시하고, 손가락으로 누르면 바로 관련 내용이 나왔다.
현재 우크라이나를 오가는 항공편은 모두 결항되고, 버스와 기차만 운행되고 있다. 이날 크라쿠프 국제공항에도 “24일부터 우크라이나 전역의 항공편이 중단됐다”는 안내가 떴다. 영국 맨체스터행 라이언에어 항공편을 기다리던 개인 사업가 페디르(62)씨는 “어제 리비우에서 타기로 했던 비행기가 취소돼 여기까지 왔다”며 “동부와 달리 (러시아군이 미치지 않은) 서부는 조용한 상황이지만, 어제 총동원령이 선포되고 예비군 징집이 시작되면서 긴장감이 극도로 높아졌다”고 했다.
이날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는 새벽 4시30분부터 다시 공습이 시작돼 러시아군의 순항·탄도 미사일이 잇따라 떨어졌다. “군과 정부 관련 시설만 정밀 타격 중”이라는 러시아군 주장과 달리 주거지에도 미사일이 떨어지고 있다고 크라쿠프의 우크라이나인들은 전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공군의 공중전에서 러시아 전투기가 격추되면서 잔해가 키예프 중심가의 고층 아파트에 떨어졌다는 얘기도 나왔다. 적지 않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소식이 잇따라 전해졌다. 폴란드 등 안전한 곳으로 피신한 사람들은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러시아군 공격에 혹시나 가족이나 친인척이 사망하거나 다쳤을까봐 마음을 졸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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