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대통령의 염장이’ 펴낸 유재철 장례지도사
상주 완장 없앤 YS 장례도 각별… 화장 치른 1998년 최종현 회장
매장 집착하는 풍속 바꾼 계기
분홍 치마저고리 곱게 갖춰입고, 잠자듯 가신 할머니 가장 생각나
서른네 살에 염습(殮襲)을 배웠다. 고인을 마지막으로 목욕시키고 깨끗한 옷을 입혀 관에 모시는 일이었다.
“수입이 괜찮다”는 말에 일을 시작했지만 주위의 반대가 심했다. 천대받는 직업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세상의 인연을 매듭짓는 소중한 직분으로 여기고 힘을 다했다. 그렇게 현재까지 서거한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 9명 중 6명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최규하(2006년), 노무현(2009년), 김영삼(2015년), 노태우(2021년), 전두환(2021년) 전 대통령을 직접 염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2009년)의 국장에 참여했다. 10일 에세이 ‘대통령의 염장이’(김영사)를 펴낸 장례지도사 유재철 씨(62) 이야기다.
유 씨는 1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람이 죽으면 언제든 달려가야 하기에 정작 산 사람과의 약속은 거의 잡지 않고 살아왔다”며 “자긍심을 갖고 일하다 보니 어느새 28년간 3000여 명의 마지막을 지켰다”고 말했다. 그는 이맹희 CJ 명예회장(2015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2020년) 등 유명인사뿐 아니라 노숙자, 이주노동자, 홀몸노인 등 무연고자의 장례도 치러왔다. “평범한 사람이건 유명한 사람이건 염습에는 차이가 없죠. 고인이 누구든 마음을 다해 염하는 게 제일입니다.”
지금껏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죽음은 평범한 80세 할머니의 마지막이다. 고인은 볕 좋은 날 세상을 떠났다. 아침에 일어나 죽음을 직감하곤 화장실에 들어가 혼자 목욕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나기 전 선물한 분홍색 치마저고리를 차려 입고 소파에 누운 채 조용히 죽음을 맞았다. 유 씨가 장례 의뢰를 받고 갔지만 따로 염습할 게 없었다. 그는 “고인은 죽음이 다가오는 걸 알고 일주일 전부터 곡기를 끊었다”며 “몸에서 어떤 이물질도 새어나오지 않을 정도였으니 스스로 염습을 마친 셈”이라고 했다.
유 씨는 지도자의 떠나는 길이 장례문화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일례로 최종현 SK 회장(1998년)의 화장(火葬)이 매장에만 집착하는 장례풍속을 바꿨다는 것. 그는 “내가 김영삼 전 대통령 장례식 때 간소화 차원에서 상주 완장을 없앤 게 기억에 남는다”며 “관을 짜지 말라는 마지막 유언에 따라 들것에 시신을 올리고 천을 덮은 2010년 법정 스님 다비(茶毘·불교에서 시신을 화장하는 의례)도 자주 생각난다”고 회고했다.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지키며 삶을 마무리하는 것을 강조하는 ‘웰다잉’ 시대. 우리가 나아가야 할 장례문화는 어떤 그림일까.
“2014년 장모님이 돌아가셨는데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형식으로 장례식을 치르고 싶지 않았어요. 발인 전날 저녁에 가족과 지인들이 모여 고인의 인생을 요약하는 약력을 읊고 시를 낭송했습니다. 유명인사들만 애도식을 연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거창하지 않아도 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고인을 생각하는 방식으로 장례식을 열면 그것이 진정한 애도의 방법입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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