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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여성들 “빵, 일, 자유를”… 밤마다 목숨 건 ‘스프레이 낙서’

Jimie 2022. 1. 13. 06:33

아프간 여성들 “빵, 일, 자유를”… 밤마다 목숨 건 ‘스프레이 낙서’

입력 2022-01-13 03:00업데이트 2022-01-13 03:03
 

 

거리시위 탈레반이 강경 진압하자… 담벼락에 구호 쓰는 시위로 바꿔
“잡히면 죽을 수 있지만 포기 못해”… 전통 축제 몰래 열고 계속 저항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수도 카불 도심의 담벼락에 아프간 여성 시위대의 구호 ‘빵, 일자리, 자유’를 적고 있다(위 사진). 이들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밤에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담벼락에 적는 투쟁을 벌이고 있다. 또 다른 담벼락에는 ‘여성에 대한 폭력을 멈추라’는 글이 등장했다. 영국 더타임스·아프간 매체 톨로뉴스 캡처
‘Food, Work, Freedom(빵, 일, 자유).’

 
요즘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에는 골목 곳곳의 담벼락에 이 세 단어가 쓰여 있다. 누군가 스프레이 페인트를 뿌려 벽에 큼지막하게 써놓은 것이다. 이 문구는 지난해 8월 미군 철군으로 탈레반이 아프간을 완전히 점령한 뒤 여성들이 시위에서 외쳤던 바로 그 구호다.

후다 카무시는 담벼락에 세 단어를 써넣으며 ‘무언의 시위’를 하는 아프간 여성들 중 한 명이다. 카무시는 밤이 깊어지면 스프레이를 들고 조용히 집을 나선다. 여성들과 서둘러 ‘작업’을 하고는 바로 각자 집으로 흩어진다.

 
야밤의 스프레이 시위는 아프간 여성들이 최근 고안해낸 새로운 투쟁 방식이다. 탈레반이 여성의 교육권, 노동권을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누거나 구타하는 등 폭압적 통제를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카무시는 영국 더타임스에 “탈레반이 벽에 구호를 쓰고 있는 우리를 본다면 죽이려 들 것”이라고 말했다.

카무시는 반년 전만 해도 직원 35명을 둔 양복점 사장이었다. 하지만 탈레반이 양복점을 강제로 폐점시키고 집에서 못 나오게 하자 여성의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그는 “탈레반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거라고 협박했지만 우리는 그들을 폭로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탈레반은 20년 전 집권할 때 여성의 외출과 교육을 금지했다. 이번 아프간 점령으로 여성 탄압 정책이 부활할 것이란 우려가 커졌다. 그러자 탈레반은 여성들이 머리만 (히잡 등으로) 덮으면 일을 할 수 있다며 안심시키려 했다. 지난해 첫 공식 기자회견 때도 첫 질문을 여성 기자에게서 받는 등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우려는 현실이 됐다. 탈레반은 새 내각에 여성을 한 명도 기용하지 않았다. 또 거의 모든 직업군에서 여성을 배제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탈레반 경찰은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따라 무슬림 여성은 히잡을 써야 한다”는 포스터를 카불 도심에 붙이며 부르카(눈만 내놓고 얼굴을 다 덮는 의복) 착용을 강제하고 있다. 탈레반은 국제사회의 인정과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겉으론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지역별로 반인권적 규칙을 공표하는 꼼수를 써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아프간에는 한 해 중 밤이 가장 긴 날이 있었다. 카무시는 이날 우리의 동지와 비슷한 ‘얄다 축제’를 열었다. 여성들은 형형색색의 옷을 입고 모여 음악을 연주했다. 여성에게 히잡을 강요하고 가정 내 춤과 노래를 금지하는 탈레반에 저항하는 시위였다. 카무시는 “우리에게 포기는 사치”라고 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