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칼럼] 이준석 정치, ‘보약’대신 ‘독약’으로 기억될 건가
자기 당 후보 공격에 온 힘
자해능력으로 존재가치 증명
박빙으로 지면 李 독박쓸 것
서울 보선서 청년風 몰고 온
기획력 활용않는 尹도 아쉬워
풍운아 기대, 허망한 끝 보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지역균형발전 모색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국회사진기자단
지난 6월 국민의 힘 전당대회가 임박했을 무렵, 정치권 중진급 인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김대중 정부 때 집권당 소속이었지만 지금은 문재인 정권 재창출에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준석 대표의 당선이 확실시되는 상황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이 대표를 가까이서 지켜봤다면서 “재주 있고 똑똑하지만 ‘트러블 메이커(말썽꾼) 기질도 다분하다”고 했다. “대선을 앞둔 결정적인 순간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지 모른다”고 했다. 당시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는데 요즘 그 얘기가 자꾸 귓가를 맴돈다.
대선 국면에 접어든 이후 이 대표가 주로 해 온 일은 윤석열 후보와 측근 저격이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 총구를 겨눈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적진에서 날아오는 대포보다 내부 소총질이 훨씬 아픈 법이다. 게다가 사수가 당대표라면 그 파괴력은 몇 곱절 늘어난다. 친여 성향 매체들의 야당 내분 부채질에 이준석 대표는 고정 불쏘시개로 동원되고 있다.
이 대표를 보면 김대중 정부 초기 주목받았던 30대 참모가 떠오른다.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뛰어나 김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았지만 자기주장이 강해서 종종 설화를 일으켰다. DJ는 “잘 쓰면 보약, 잘못 쓰면 독약이 될 친구”라고 했었다.
이 대표가 윤석열 후보의 보약처럼 보였던 순간이 있었다. 윤 후보와 이 대표가 울산 회동으로 갈등을 수습한 다음 날, 두 사람은 함께 부산 서면 젊음의 거리를 누볐다.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려들어 300m 전진하는 데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두 사람이 커플처럼 입은 빨간 후드티에 노란색 글씨로 ‘사진 찍고 싶으면 말씀 주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이 대표는 “앞으로 이 빨간 티에 자기만의 노란색 메시지를 준비해 오시면 앞으로 모셔서 소개해 드리겠다”고 했다.
이 장면은 지난 4월 서울 보궐선거 당시 이준석 뉴미디어 본부장이 주도했던 2030 시민유세단을 생각나게 했다. 젊은 청년들이 유세 차량에 뛰어 올라와 문재인 정권을 성토했다. 그 영상이 유튜브에서 수십만 회씩 조회를 기록하면서 2030 지지가 오세훈 후보에게 쏠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청년들이 윤석열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적은 빨간 티를 입고 윤 후보와 어깨동무하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그런 동영상과 사진이 몇 차례 언론에 보도되면 상당한 효과가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어쩐 이유에서인지 그날로 끝이었다. 젊은이들은 “뭘 주겠다”는 선심보다, “함께하자”는 제안에 마음을 연다. 윤 후보는 자신의 허한 부분인 젊은 층 지지를 메워줄 보약을 왜 마다했던 걸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후보를 둘러쌌다는 ‘윤핵관’들이 이준석의 ‘설치는 꼴’을 보기 싫어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뿐이다.
며칠 전 방영된 예능 프로에서 이 대표는 ‘이준석 대통령 되기’와 ‘윤석열 대통령 되기’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 대표는 “내가 되는 게 좋다”고 했다. 보통 때라면 젊은 정치인의 솔직함으로 받아들여 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준석의 ‘나밖에 몰라’ 행태에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야당 지지층 반응은 험악했다.
이준석 입장에서 정치적으로 현명한 답안은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윤석열 후보가 낙선하면 나는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는다. 내가 대통령 꿈을 꾸려면 먼저 윤 후보를 당선시켜야 한다.” 이것이 이 대표가 지금 처해 있는 실제 상황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이재명 대신 윤석열 까기’를 하는 이유를 ‘실패한 대통령’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만일 윤 후보가 넉넉하게 앞서가는 상황이라면 이런 변명이 어느 정도 통할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이 대표는 물이 목까지 차올라 허우적대는 윤 후보를 더 깊은 곳으로 밀어 넣고 있다. 윤 후보를 상대로 “내 입맛에 못 맞추면 이재명 후보가 돼도 어쩔 수 없다”고 벼랑 끝 싸움을 벌이고 있다. 현재까지 이준석 혼자 날려 버린 표가 최소 50만 표는 넘는다고 본다. 윤 후보가 대선에서 진다면 일차적 책임은 윤 후보 몫이겠지만, 만약 승부가 미세하게 갈린다면 이 대표가 독박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불과 몇 달 전 이준석은 곰팡내 나고 숨 막히던 보수 정당에 청량한 바람을 몰고 온, 말 그대로 풍운아였다. 그랬던 이 대표가 자신이 속한 집단에 얼마나 피해를 줄 수 있는지 ‘독약’ 성분으로 존재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이준석 정치가 그런 식으로 결산을 맺는 것은 너무나 아쉽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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