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야당사찰 치명타…공수처, 결국 尹수사도 檢에 넘기나
입력 2021.12.26 17:49
업데이트 2021.12.26 17:56
전방위 민간인 사찰 논란에 휩싸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휘청이고 있다. 기자 등 언론인과 야당 정치인에 이어 이들이 접촉한 일반인까지 무더기로 통신자료를 조회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26일 낮 12시 현재 공수처가 통신자료를 조회한 건 총 172명, 285건에 이른다. 서초동 법조 기자단과 여의도 정치권을 중심으로 통신사에 대한 통신조회 확인 신청이 줄을 이으면서 대상자 수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언론·야당 사찰 의혹이 커지면서 공수처가 기존 부실·편파 수사 지적을 받아온 고발 사주 의혹 등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관련 수사도 결론을 내지 않고 검찰에 넘길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 논란이 사찰 의혹으로 확산하는 가운데 김진욱 공수처장이 지난 23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내 공수처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법조계에선 현재 공수처 언론 사찰 의혹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한다. ①현직 기자의 가족·지인의 통신자료도 조회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공수처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는 언론인에 대해서도 법원에 통신사실 확인자료제공 요청허가(통신영장)를 청구한 뒤 허가서를 발부받았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과 ②공수처가 어떤 사건과 관련해 이 같은 통신사실 관련 수사를 벌였는지 투명하게 밝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수처는 지난 24일 내놓은 공식 입장문을 통해서도 “수사기관으로서 수사 중인 개발 사건의 구체적 내용은 공개하기가 어렵다”고만 했다.
현재까지 공수처가 통신영장을 발부받아 통신내역을 들여다본 것으로 추정되는 기자는 2명이다. 이들은 지난 4월 1일 공수처의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 ‘황제 조사’ 논란을 보도했다. 공수처는 이들이 수원지검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및 수사외압’ 수사팀으로부터 폐쇄회로(CC)TV 영상을 입수해 보도한 것으로 의심, 복수의 수사관을 CCTV가 설치된 건물로 보내 탐문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당시 공수처는 “신원미상의 여성이 위법한 방식으로 관련 동영상을 확보했다는 사건 관계인의 진술을 확보했다”면서도 “수사대상이 아닌 기자를 입건하거나 수사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러나 해당 기자들의 가족·지인 통신자료가 비슷한 시기 조회된 건 이들이 고위공직자범죄 사건의 참고인이든, 관련 범죄의 피의자든 사건 관계인으로 수사 선상에 올랐다는 걸 방증한다. 익명을 요구한 현직 검찰 간부는 “공수처가 기자를 상대로 통신영장을 청구했고, 이를 법원이 받아들여 발부한 것이 사실이라면 공수처가 법원에 낸 수사기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통신영장을 발부받기 위해 기록을 허위로 작성했을 경우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공수처는 “모든 수사 활동을 법령과 법원의 영장 등에 근거해 적법하게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공수처가 ‘통신 사찰’ 논란으로 홍역을 치르는 바람에 여운국 차장을 중심으로 별도 수사팀을 편성하는 등 수사력을 집중했던 ▶고발 사주 ▶판사사찰 문건 작성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사기 부실수사 ▶한명숙 전 국무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모해위증교사 의혹 수사방해 등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관련 사건은 연내 처리가 어려워졌다. 가뜩이나 적법 절차 위반에 따른 법원의 압수수색 취소 결정과 세 차례의 체포·구속영장 기각으로 수사의 동력을 잃은 상황에서 사찰 논란까지 불거지며 지휘부를 포함한 조직 자체가 위축됐기 때문이다.
검찰이 통신자료 확인자료제공 요청허가를 법원에 청구할 때 내는 청구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도 공수처사건사무규칙에 따라 통신자료 확인자료제공 요청허가 청구와 관련해선 검찰사건사무규칙에 규정된 절차를 준용하고 있다. 자료 국가법령정보센터
공수처는 최소 30명의 국민의힘 국회의원·보좌진에 대해서도 통신자료를 무더기로 조회하는 등 3·9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편향 논란도 거세질 전망이다. 이 때문에 공수처가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현직 야당 의원인 김웅 국민의힘 의원은 물론 물증 확보에 실패해 체포·구속영장이 세 번이나 기각된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대구고검 인권보호관)에 대해서도 기소 여부 등 최종 처분을 검찰에 떠넘길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수도권 지검의 한 검사는 “불리한 상황이 오면 공수처장 재량에 따른 이첩 규정을 십분 활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공수처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가 지난 3월 17일 이첩한 이규원 대전지검 부부장검사(전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 검사)의 ‘윤중천·박관천 면담보고서’ 허위 작성 및 유출 의혹 사건 수사를 종결한 뒤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지난 17일 9개월 만에 검찰에 다시 넘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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