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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장 유서에 담긴 '끔찍 성폭행'…北여군 극단선택의 전말

Jimie 2021. 12. 24. 06:07

12장 유서에 담긴 '끔찍 성폭행'…北여군 극단선택의 전말

중앙일보

입력 2021.12.23 15:01

업데이트 2021.12.23 17:40

[중앙포토]

최근 북한에서 여군 하전사(병사 계급)가 5명의 상관에게 성폭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가 중태에 빠졌다. 그런데도 북한군 당국은 여군을 조기 제대시키는 등 사건 축소를 시도하면서 ‘쉬쉬’하고 있다.

22일 데일리 NK 보도에 따르면 북한 내부 소식통은 “함경남도 함흥에 위치한 7군단 지휘부 전신 전화소 교환분대에서 간부석 교환수로 근무하던 여군 A씨가 군의소(군병원)에 입원해 있던 중 이달 중순 극단적 선택으로 중태에 빠졌다”고 전했다.

A씨는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과다출혈 상태가 됐다. 하지만 혈액 부족으로 수혈을 받지 못했고, 결국 의식불명이 됐다.

지난 1월 7일 북한 노동당대회 2일차 회의 참석한 군인 대표들. 조선중앙TV=연합뉴스 (기사 내용과 무관한 자료 사진)

북한군 간부들, 상습 성폭행 시도…거액 내밀며 노골적 성관계 요구하기도

A씨 극단선택 사건의 전말은 앞뒤로 빽빽하게 적은 12장의 유서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A씨 유서의 제목은 ‘신소 청원편지’였다. 쉽게 말해 ‘유언’이라는 의미다.

 

황해남도 출신인 A씨는 17세 때 하전사로 군에 입대했다. 이후 6년간 7군단에서 전화 교환원으로 근무해 왔다.

성폭행은 A씨가 신병훈련을 마친 뒤 부대에 배치된 직후 시작됐다. 당시 7군단 정치지도원(당시 계급 소좌, 한국군으로 치면 소령)이었던 40대 초반의 김 모씨는 1년 가까이 A씨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했다.

 

성폭행 후엔 “앞으로 일생을 돌봐주겠다”며 A씨를 다독였지만, 이후 김씨는 정치 군관을 양성하는 정치대학에 들어가면서 연락을 끊었다.

 

두 번째 가해자는 대렬부(인사과) 부부장(당시 중좌, 한국군 기준 중령) 한 모씨로, 그는 자신의 사무실로 A씨를 부른 후 성폭행을 저질렀다. 한씨는A씨의 뒤를 봐주겠다며 간부석 교환수로 진급시키기도 했지만, 이후로도 지속적인 성폭행이 이뤄졌다.

 

상관으로부터 성폭행에 시달리던 A씨는정치 일군(일꾼)이 돼 여군들의 군내 성폭력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정치군관학교에 지원했다.

 

그러나 간부부장(당시 계급 상좌, 한국군 기준 중령과 대령의 중간 단계로 고급장교) 조 모씨는A씨의 정치대학 지원서를 누락시키면서 정치대학에 가고 싶으면 지하 갱도(벙커) 내 지휘부 사무실로 오라고 A씨를 유인했다.

 

A씨는 당시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지인에게 손전화(휴대전화)를 빌려 녹음을 하며 사무실로 향했다. 그리고 A씨 예상대로 조씨는 속옷 차림으로 기다리고 있다가 거액의 돈을 내밀며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요구했다.

 

A씨가 거부했지만 조씨는 계속해서 성폭행을 시도했고, A씨 옷에서 녹음 중인 휴대전화가 나오자 A씨를 폭행하기까지 했다. 휴대전화 주인을 찾아내 “발설하지 말라”며 협박하기도 했다.

 

이 사건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A씨는 처음 그를 성폭행했던 김씨와 다시 만났다. 총정치국 소속이 돼 A씨 부대로 검열을 나온 김씨는 함께 검열을 나온 총정치국 간부(대좌, 한국군 기준 대령) 조 모씨가 묵는 방으로 A씨를 유인, 강제로 성폭행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옷이 찢기고 상해를 입어 군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수차례 상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A씨는 지난 10월 제대를 신청했지만, 군에선 “심신이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제대를 허락할 수 없다”며 2022년 2월로 제대를 미뤘다.

 

제대할 날만 기다리던 A씨는 또 성폭행 피해에 노출됐다. 세포비서를 겸하는 군 병원 내과 과장(소좌) 염 모씨가A씨에게 수면제를 투여한 후 성폭행을 한 것이다. A씨는 의식을 차린 뒤 자신이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깨닫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8월 10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 황해북도 개풍군 북한군 초소. 뉴스1 (기사 내용과 무관한 자료 사진)

가해자들, 직무 정지 혹은 전보에 그쳐…피해자는 강제 제대

A씨 극단적 선택과 유서로 사건의 전말이 알려지자, 북한군 당국은 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직무 일시 정지 또는 전보 조처를 받았을 뿐 현재까지 다른 처벌은 받지 않았다.

이 소식을 데일리 NK에 전한 소식통은 “가해자 중 총정치국 고위 간부가 포함돼 있어 솜방망이 처벌로 사건이 무마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A씨는 현재 사경을 헤매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와중에 군 당국은 지난 20일, A씨에게 제대 통지를 내렸다.

소식통은 “북한군은 동기 훈련이 진행 중인 12월에 제대 조치를 하지 않는다. 상당히 이례적인 조치”라며 “제대 통보를 받아 A씨는 현재 민간인이 됐다. 군이 사건을 축소하기 위해 A씨를 서둘러 제대 조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하수영 기자 ha.su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