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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의 무차별 통신 조회, 수사를 빙자한 사찰이다

Jimie 2021. 12. 24. 05:55

Opinion :사설

공수처의 무차별 통신 조회, 수사를 빙자한 사찰이다

중앙일보

입력 2021.12.24 00:09

지난 22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이종배 법치주의 바로 세우기 행동연대(법세련) 대표가 공수처의 민간인 통신조회 사찰 인권침해 진정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언론·민간인 사찰에서 정치사찰로 비화

해명 안 하면 검경이 공수처 수사해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발(發) 무차별 통신자료 조회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이성윤 서울고검장 공소장 유출’ 사건과 관련한 기자들의 통신자료 조회 사실이 확인되며 언론 사찰이라는 비난을 받았는데, 민간인 사찰 의혹을 거쳐 정치사찰 의혹으로까지 번졌다. 공수처로부터 지난 10월 초·중순 사이 통신자료 조회를 당한 대상에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 조수진 의원 등 야당 정치인 7명이 포함된 것으로 그제 확인되면서다. 모든 의원과 보좌진의 전수조사 결과가 나오면 숫자는 더 늘어날 수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는 어제 “명백한 야당 탄압이며 공수처의 존폐를 검토해야 할 상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수처는 수사 목적일 경우 통신 조회를 할 수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83조 3항에 근거해서다. 사법부나 수사기관·정보기관 등이 재판·수사, 형 집행, 국가 안전보장 등과 관련해 통신자료 제출을 요청하면 통신사나 포털 등은 이를 제공해야 한다.

 

문제는 통신자료 수집이 상식에서 벗어날 정도로 대규모에 무차별적이라는 점이다. 수사기관은 수사상 필요하더라도 피의자의 인권보호 차원에서 개인정보에 대한 강제조치를 최소화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확인된 조회 대상 언론인만 17개 이상 매체에 100명이 넘고, 국회의원 등을 합치면 조회 대상자 127명, 자료 건수 231건에 이른다. 특히 여권 인사들을 다수 고발한 시민단체 대표, 검찰 개혁에 반대 입장을 드러낸 한국형사소송법학회 이사 등은 물론 진보·보수 인사도 들어 있다. 이들은 공수처가 수사 중인 사건 또는 사건에 연루된 인물들과 무관하다. 누가 이를 적절한 수사권 행사라고 납득하겠나. ‘이성윤 황제 조사’ 기사를 보도한 TV조선 기자의 경우 그의 가족 통신자료까지 조회 대상이었으니 납득하기 어렵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수사관 2명을 동원해 해당 기자의 취재 경위를 뒷조사했다는 의혹으로 고발당해 수사를 받고 있다. 보복성 조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현직 부장검사(강수산나)가 “고발사주 의혹, 공소장 유출 사건 등의 수사 과정에서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아닌 기자들 통신 조회를 광범위하게 한 것은 위법한 수사”라고 질타했겠나.

 

가장 심각한 건 공수처가 언론인·민간인·정치인 등을 마구잡이로 통신 조회하고도 “적법 절차에 따랐고, 수사 중”이라며 사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수사를 빙자한 사찰’로까지 국민이 생각한다면 적극적으로 의혹 해소에 나서는 게 도리인데 입을 굳게 닫고 있다. 스스로 못 밝힌다면 검경이 수사로 진상을 밝혀야 한다. 야당과 시민단체가 김 처장을 고소·고발한 사건들이 차고도 넘친다. 이번 기회에 국민의 기본권이 무차별적으로 침해되지 않도록 전기통신사업법도 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