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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종착역' 신성일과 친형제 같은 친구 손시향

Jimie 2021. 12. 20. 06:12

[권영재의 대구음악遺事<유사>♪] '이별의 종착역' 신성일과 친형제 같은 친구 손시향 히트곡

 
권영재 전 적십자병원 원장
매일신문 입력 2018-02-02 00:05:01 수정 2018-02-02 00:05:01
 
 
 

손시향(孫詩鄕)

 

 

손시향이 신성일을 배우로 만들었다.

'그날' 둘이 그런 식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배우 신성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날 있었던 일을 신성일은 이렇게 회고했다.

 

손시향(손용호)은 대구중앙초등학교 출신이고 신성일(강신영)은 대구수창초등학교 출신으로 둘은 경북중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둘 다 집도 잘살았고 공부도 잘한데다 인물도 잘생겨 절친이면서 속으로 은근한 라이벌이었다. 경북고등학교도 둘이 같이 들어갔고 공교롭게도 삼년 동안 한 반에서 공부를 하였다. 말하자면 친형제 같은 친구였다.

 

 

짓궂은 하늘은 때로 인간을 시험한다. 이럴 때 시련에 약한 놈은 죽거나 골병들고 강한 놈은 더 세어진다.

 

손용호(손시향)의 어머니와 강신영(신성일)의 어머니들은 현모양처라기보다 활동하는 신여성이었다. 두 어머니는 계를 모아 '오야'를 하며 꽤 재미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비슷한 무렵 두 집 다 계가 깨어져 몽땅 망하고 말았다. 손용호는 그래도 주위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어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 농대에 입학하게 된다.

 

그러나 강신영은 아버지도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떠난 빈집에서 형 신구와 두 형제만 남아 남들에게 생계비를 도움받아 겨우 호구지책을 하고 있었다. 친구 아버지에게 공납금을 얻어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하지만 찌든 가난 때문에  형 신구는 공군사관학교(나중에 공군조종학교를 나와 유명한 장군이 된다)에 떨어지고 동생 신영은 서울대학교에 떨어지고 만다.

 

먼저 서울로 간 손용호는 손시향이 되어 '검은 장갑', '이별의 종착역', '사랑이여 안녕' 등을 불러 대박 나며 한국 가요계의 샛별이 되어 빛나고 있었다. 손시향과 같은 중앙초등학교 출신인 남일해가 대건고등학교 3학년 때 대도극장에서 오리엔트 레코드회사가 주최한 전국 콩쿠르 대회에 일등을 해 가수가 된다. 그가 전국을 뒤흔들 때 손시향은 서울농대 입학 후 뒤늦게 KBS 노래자랑에서 입선해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 무렵 중앙초등학교를 나와 이화여대에 다니던 여동생 손미희자는 미스코리아 진으로 입선하고 인기 여배우가 된다. 손씨 집안에서 깨어진 계의 아픔은 희미한 옛 이야기가 된다.

 

목소리는 '한국의 짐 리브스', 외모는 '마카오 신사'라고 불리던 손시향이 '그날' 하얀 양복을 입고 명동 입구에 있는 미도파 백화점 지하 나이트클럽 공연을 위해 충무로를 걸어가고 있었다. 전투 비행기 조종사인 형에게 기대어 살며 낭인생활을 하던  강신영도 마침 충무로를 정처 없이 배회하고 있었다. 신성일이 그때를 말하며 미소는 지었지만 눈빛은 번쩍했다. "저 멀리서 아래위 하얗게 빛나는 옷을 입은 젊은 신사가 '가방모찌' 둘을 양옆에 끼고 거만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가까이 만나 보니 흰 양복쟁이는 손용호가 아닌가!" 반가움과 부끄러움에 신성일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고 한다.

 

강신영(姜信永)

 

"아이고! 신영아" "야! 용호야"하고 얼싸안고 인사를 나누어야 할 두 사람은 냉랭하게 헤어지고 만다.

스타 손시향이 된 손용호가 "어. 신영이 아닌가?"하며 건성으로 아는 체하고 신영의 어깨를 툭 치고는 그냥 가버렸기 때문이다.

 

용호가 간 미도파 쪽을 보며 망연자실한 신영은 긴 시간 멍하게 길에 서 있었다. 행인들이 그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갔다. 신영은 찢어진 가슴을 안고 명동을 헤매다 배우학원이 눈에 띄어 그곳에 입학한다. 이렇게 손시향이 신성일을 배우의 길로 인도한 것이다.

 

손시향은 1960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거기서 부른 '거리를 떠나' '사랑이여 안녕' '사랑의 자장가'도 공전의 히트를 친다. 이제는 여든 넘은 노인이 되어 조용한 황혼을 맞이하고 있는 두 동창생이 만약 길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 이번에는 어떤 일들이 또 생겨날까 무척 궁금하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길 나그네 길."

한 번 맺은 인연, 외로운 나그네 길에 영원한 동반자가 되시길.

 

***

*

본명 강신영(姜信永)

신성일(申星一, 1937년 5월 8일 ~ 2018년 11월 4일)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며, 계명대학교 특임교수였고,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회의원에 출마하면서 본명과 예명을 합친 강신성일(姜申星一)로 개명.

폐암 투병 끝에 2018년 11월 4일 오전 2시 30분  화순전남대학교병원에서 81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검은 장갑-1958 손시향

https://www.youtube.com/watch?v=LxAeHcr0_WU

검은 장갑

1957년 오아시스

손석우 작사 손석우 작곡

1.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굳바이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2. 잔을 비고 청해봐도
오지 않는 잠이여
닿지 않을 사랑이면
잊느니만 못해
잊을 수 있을까 잊을 수 없어라
검은 장갑 어울리는
마음의 사람아.

 

 

혜원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 화제(畵題)에

月沈沈夜三更 달도 떨어지는 야삼경

兩人心事兩人知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안다.

이백 년 전 조상이 느꼈던 정서와 이백 년 후 후손이 가진 감정선을 보면 한민족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