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하지만, 죽어주실 분 있나요?” [박은주의 돌발]
누구에게 먼저 살 기회를 줄 건가, 어려운 질문의 시간이 온다
코로나 병실, 사실상 꽉 찼다
환자폭증하면 ‘입퇴원 기준’ 누가 마련?
완전한 가정이다.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고령의 환자들이 병실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치자. 그 때 만삭의 임산부인 코로나 환자가 이송된다. 중증이다. 고령자 가족에게 “2명을 살리기 위해 환자분이 포기해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 할 수 있나. 가족 중 누군가가 “회생 가능성이 없다니, 그러시죠”라고 했다고 치자. 그런데 가족들끼리 싸움이 난다. “형이 뭔데 아버지를 죽이나.” 그 아들은 의사에게 소송을 건다. 병원은 그 의사를 보호해 줄 수 있나.
코로나에 걸렸지만 입원 못하는 사람이 1200명이 넘고, 병상가동률이 90%에 다가가고 있다. 며칠 전 만난 의사들은 “이 수준이면 서울 수도권에서 실제로는 입원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들이 말을 이었다. “이제는 정말 전쟁터에서나 할 질문을 해야 하는 때다. 누구를 먼저 살릴 것이냐.”
“전쟁터도 아닌데, 살릴 사람 순위를 정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전하면 이렇다. “요양원에 입원하면 입원비를 내지요? 그런데 거기서 코로나에 걸려 상급병원으로 이송되면 그때부터는 무상치료가 됩니다. 자녀들 입장에서는 입원 치료를 받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그렇게 해서 지금 수도권 병상이 꽉 찹니다. 60대 중증 사망자가 속출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 병원은 오는 순서대로 환자를 받아야 해요. 그게 법이니까.”
이런 문제는 당연히 의료인들이 먼저 눈치챘다. 대한중환자의학회와 대한의사협회가 지난 7일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중환자 병실 우선배정 기준안 마련’ 토론회를 열었다. 주요 발언은 이렇다. “중환자 병실 우선 배정 기준은 사회적으로 매우 다루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언제까지나 이걸 방치해 놓고 있을 수도 없다” “생명의 가치를 논할 수 있느냐 하는 차원부터 논쟁을 시작하고...” (염호기 의협 코로나19 대책전문위원장), “대량재난이 발생한 경우 최고의 치료보다 최적의 치료가 중요하다. 누구를 우선적으로 살릴지에 대한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기준이 필요하다”(홍석경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외상외과 교수)
긴 이야기를 줄이면, 중증 환자의 입퇴원 순위를 정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실행단계에 들어가면 한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쥐는 행위가 된다.
지난해 1차 대유행이었던 지난 여름, 대구동산병원에서는 중환자실 입실 제한 검토 대상을 마련한 적이 있다고 한다. ▲말기장기부전(뇌·심장·간·신경근골격계 등) ▲예측 사망률이 90%가 넘는 중증 외상·화상 ▲심각한 뇌 기능 장애 ▲기대 여명이 6개월 미만인 말기 암 ▲ASA score IV-V ▲예측 생존율 20% 미만 등을 몇가지 의학적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의사들 “의료진이 결정 못해, 정부가 국민 공감대 모아야”
그렇다면, 이것을 전국에서 확정적으로 적용하려면 ‘누구’ 허락을 맡아야 하나. 가장 쉬운 말은 ‘사회적 합의’일 것이다. 그러나 이건 처지마다 입장이 달라 결코 ‘합의’가 도출되지 않을 것이다. ‘병 들었다고 살 기회를 놓치라는 것이냐’ ‘늙었다고 죽으라는 것이냐’ 같은 반발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의학적 소견이 절대적이니 의사가 결정한다? 아마 모든 환자가 의사에게 대거리를 할 것이다. 의료진에 대한 물리적 공격까지도 발생할 수 있다. ‘소생 가능성’의 기준도 각 의사의 철학만큼 이나 다를 것이다.
‘어려울 것 같으니 다른 병실로 모시자’는 의료진 제안을 가족이 수용하면 입원실을 바꾸는 방법, 민관위원회가 입원실을 바꾸는 ‘전실’에 관한 의견을 제시하는 방법 등 여러 아이디어가 현장에서 나왔다.
‘K-방역’ 자화자찬 정부, ‘중대한 질문’ 못본 척 외면
생명의 소중함이나 애착은 나이, 성별, 계층, 임신과 비임신, 어떤 조건으로도 서열화할 수 없다. 그러나 ‘선택’이 불가피한 상황이 곧 온다고 의사들은 경고하고 있다.
결국 정부가 개입해 푸는 수 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의료전문가·윤리전문가·정부가 조기에 사전협의를 통해 마련”하며 “협의된 기준을 적용할 때 의료인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결정적 순간’이 오지 않고는 정부가 이런 기준 마련에 나서지 않을 것 같다. ‘K 방역’ 홍보에 급급한 이 정부는 이런 문제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코로나 중환자 입퇴실 및 전실 기준’을 마련하겠다고 정부가 발표하면 똑똑한 국민들은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에 병원이 없는 것도 아닌데, 뭐하고 있다가 ‘살 사람, 죽을 사람’을 가르게 하느냐.”
정부가 이 문제를 외면하는 이유다. 이 침묵은 결국 더 많은 자원을 쓰고, 생존율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의사들은 예상하고 있다. 대선이 세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 더 그렇다.
쉽지 않은 질문인 건 사실이다. 어떻게 묻겠나. “죄송한데, 먼저 돌아가실 수 있나요?” 의료강국 대한민국이 왜 이런 상상을 해야 하나.
'The Citing Articles'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릉 외손 왔습니다" 외가 찾은 尹, 강릉시내 동선에 담긴 뜻 (0) | 2021.12.10 |
---|---|
‘K방역’ 자랑 때는 앞장 文, ‘K방역’ 위기 때는 안 보여 (0) | 2021.12.10 |
文정부서 네 명째… 여권 수사 ‘핵심 고리’ 잇달아 극단선택, 왜? (0) | 2021.12.10 |
신임 해군총장에 김정수… 국방장관, 해·공군총장 모두 '호남' (0) | 2021.12.10 |
"이재명·김원웅의 '미군은 점령군' 발언, 광복군 영령 모독이다" (0) | 2021.1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