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호 - 돌아가는 삼각지
최초 녹음 원판. 1967년 3월 16일
이인선 작사 배상태 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utDXGtUbZGM&t=204s
전설이 된 가객! 배호(裵湖)
기자명 영남신문
- 입력 2020.03.05 22:44
- 수정 2021.01.29 00:38
20대에 요절한 불멸의 가수 배호(裵湖)는 1942년 4월 24일 아버지 배국민과 어머니 김금순의 장남으로 중국 산둥 성 지난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배만금(裵晩今)이며, 아명(兒名)은 배신웅(裵信雄)이고, 호(號)는 산남(山南)이다.
배호의 아버지 배국민은 대한광복군 제 3지대 중사 출신의 독립 운동가였으며, 광복 이후 배호가 3살 때 한국에 돌아왔다.
그의 아버지는 광복군이 대한독립을 실현하지 못하고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되어진 조국을 통탄하며 술로서 세월을 보내다 1955년 과음으로 인한 간경화로 사망하고 만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의 부재는 남은 가족들의 큰 고통이다. 이후 배호는 가난한 집안 살림에 부산에 있는 이모의 집에서 살다가 부산 삼성중학교를 중퇴하고 먹고 살기 위해 어머니의 권유로 서울에 있는 배호의 외삼촌 김광빈(1922년 10월 4일~2008년 12월 1일 타계)의 집으로 가게 된다.(배호라는 예명도 이때 김광빈이 지어주었다.)
본명은 배만금(裵晩今)이며, 아명(兒名)은 배신웅(裵信雄)이고, 호(號)는 산남(山南)이다.
배호의 아버지 배국민은 대한광복군 제 3지대 중사 출신의 독립 운동가였으며, 광복 이후 배호가 3살 때 한국에 돌아왔다.
그의 아버지는 광복군이 대한독립을 실현하지 못하고 미국과 소련에 의해 분단되어진 조국을 통탄하며 술로서 세월을 보내다 1955년 과음으로 인한 간경화로 사망하고 만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의 부재는 남은 가족들의 큰 고통이다. 이후 배호는 가난한 집안 살림에 부산에 있는 이모의 집에서 살다가 부산 삼성중학교를 중퇴하고 먹고 살기 위해 어머니의 권유로 서울에 있는 배호의 외삼촌 김광빈(1922년 10월 4일~2008년 12월 1일 타계)의 집으로 가게 된다.(배호라는 예명도 이때 김광빈이 지어주었다.)
배호는 외삼촌 김광빈의 수하에서 대중음악을 시작하여 김광빈 악단의 드럼 주자로 미8군 무대와 방송국 등에서 활동하게 된다.
그 이후 1958년부터 삼촌 김광수, 김광빈 악단, 미군 부대, 동화, 천치 카바레, mbc악단, 김인배 악단 등에서 드럼을 연주하며 음악활동을 시작했으며 12인조 밴드 을 결성해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그는 1963년 만 21세의 나이에 예명 ‘배호’로 데뷔해 명곡 ‘굿바이’를 불렀지만 별다른 히트를 치지 못했고, 너무 어린 나이에 걸맞지 않게 목소리가 성숙해서 일부러 나이 들어 보이게 패션을 연출했다
그가 선보인 중절모에 양복차림, 선글라스로 무장한 패션은 중후한 40대의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1967년 배상태가 작곡한 트로트 곡 가 히트하였고 그는 곧 1960년대 최고의 인기 가수로 자리 잡게 된다.
사실 배호는 1966년 신장염에 걸렸으며, 1967년 병상에서 를 불렀다.
이후 배호는 ,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10대 가수에 선정되는 등 그의 앞날은 창창했다.
그러나 그는 1966년부터 앓아온 신장염으로 꾸준히 고통을 받고 있었고 건강이 채 회복될 틈도 없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몸은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었다.
방송사들이 수여하는 가수상을 휩쓸었던 배호는 타계 할 때까지 쉬지 않고 신곡을 냈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으며 심지어 휠체어에 의지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수많은 일정을 소화하며 활동하던 1971년, 배호는 라디오 출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비를 맞게 된다.
이 때문에 감기몸살에 걸린 배호는 쓰러지게 되고 여기에 복막염까지 합병증으로 겹쳐 1971년 11월 7일, 어머니 김금순, 누이동생 배명신, 작곡가 배상태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타계하였다.
당시 배호가 사망할 때 나이가 29세에 미혼이었다. 사실, 대구 공연에서 만난 여성팬과 약혼까지 했는데, 배호가 임종 직전에 약혼녀와 '눈물의 파혼'을 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1966년부터 앓아온 신장염으로 꾸준히 고통을 받고 있었고 건강이 채 회복될 틈도 없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며 몸은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져 있었다.
방송사들이 수여하는 가수상을 휩쓸었던 배호는 타계 할 때까지 쉬지 않고 신곡을 냈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으며 심지어 휠체어에 의지해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수많은 일정을 소화하며 활동하던 1971년, 배호는 라디오 출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비를 맞게 된다.
이 때문에 감기몸살에 걸린 배호는 쓰러지게 되고 여기에 복막염까지 합병증으로 겹쳐 1971년 11월 7일, 어머니 김금순, 누이동생 배명신, 작곡가 배상태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어머니의 손을 꼭 붙잡고 타계하였다.
당시 배호가 사망할 때 나이가 29세에 미혼이었다. 사실, 대구 공연에서 만난 여성팬과 약혼까지 했는데, 배호가 임종 직전에 약혼녀와 '눈물의 파혼'을 해야 했다.
배호의 곡은 다분히 트로트의 문법을 차용해 만들어진 곡이었지만, 배호가 불렀기에 그저그런 트로트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을 발산했다. 배호 목소리의 최고 장점은 심장을 파고드는 저음이었다.
다시 말해 저음에서 풍겨나오는 나직하고 감미롭고 중후한 느낌은 살아있으되 절대 억지로 짜낸 것 같지 않은 부드러운 느낌이 추가된 최상의 발성이었다.
‘돌아가는 삼각지’ 이후 배호의 음악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이후 발표한 곡마다 히트를 펼치며 1960년대 최고 인기가수 대열에 배호를 밀어 올렸다.
그런데 탄탄대로였던 음악 인생과 달리 배호는 속으로 점점 쇠락해가고 있었다.
아마 지금이라면 배호가 만 20대의 나이에 신장염 요절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1960년대 당시는 한미한 의학 수준으로 그가 앓던 신장염은 목숨을 위협할 만한 것이었다.
바쁜 스케줄로 잠도 제대로 못 잘 정도로 무리를 했으니 병이 악화되는 것은 명약관화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을 태워 노래와 목숨을 맞바꾼 셈이었다.
병색이 완연해진 배호는 노래를 부를 때 숨이 차서 호흡이 짧아지기도 했는데, 음 사이 사이마다 배호가 힘겹게 내뱉고 들이마시는 숨소리마저 음악이 되어 노래를 더 짜릿하고 신비롭게 만들 정도였다.
대중들은 배호의 목소리에 열광했다.
1971년 11월 7일 그가 죽은 후 장례식장에 소복을 입은 여인이 구름처럼 몰려들며 흐느꼈다고 하니 당시 그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게 된다.
그의 장례식에서는 최희준, 현인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과 어머니, 누이동생이 참석했고, 이날 장례식에서는 , 등 고인을 대표하는 히트곡과 함께 유족들과 동료들, 스승들의 서글픈 흐느낌만이 울려 퍼졌다.
묘지는 경기도 양주시 신세계 공원묘지에 있다.
배호의 유족도 그다지 평탄치 못했다. 배호가 돈 벌어서 사준 집이나 여러 재산도 이후 유족인 어머니와 정신질환자였던 누이동생이 잃어 버려 가난 속에 시달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배호는 스물한 살인 63년 ‘굿바이’로 데뷔, 가수 생활 내내 투병생활로 사투를 반복하다가 71년 마지막으로 취입한 노래 ‘마지막 잎새’와 ‘영시의 이별’이 결국 유작이 되었다.
배호는 1981년 실시된 MBC 특집 여론 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로 선정되었으며, 2005년 6월 '광복 60년 기념 KBS 가요무대' 여론조사에서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은 국민가수 10인'으로 선정되었다.
2003년 10월 옥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으며, 삼각지의 한 거리가 ‘배호길’로 명명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 최고의 인기를 누린 20대의 가수 배호는 세대를 아우를 만한 카리스마가 있었다. 이건 단순히 그의 외모가 노숙했거나 나이가 들어 보이도록 패션을 연출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설이 된 배호는 신장염에 복막염까지 앓는 중에도 박자, 음성에 흐트러짐 없이 정확한 음정을 선보였던 그 정신이 아닐까...
죽음 앞에서도 노래하던 불멸의 가수 배호. 29년 짧은 생을 마감한 그의 노래는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흐느끼듯 꺽꺽거리는 애절한 목소리를 듣고 싶다.
김병택 대표 news2769@naver.com
출처 : 영남신문(http://www.ynam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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