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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불세출의 가수 배호(裵湖)의 여인

Jimie 2021. 11. 28. 09:30
 

배호~'영아의 노래' 

1971

백영호 작사 작곡

Jun 16, 2020

https://www.youtube.com/watch?v=924T0dpJb7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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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호

법학ㆍ행정학박사,로스쿨객 원교수,가수

백 호 2017년 10월 29일 오전 01:00
 
 
세계 최고의 가수,영원한 불세출의 가수 배호님의 숨겨 둔 여인!!


세계 가요사 (최고의 음폭:낮은 음기준 40음폭~5옥타브)낮은 음과 아주 높은 음을
       가성 없이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유일한 가수,
세계 가요사 가장 짧은 기간 동안 가장 많은 히트곡(만 5년 동안 대히트곡만 50여곡) 을 낸 가수,
세계 가요사 가장 많은 호칭(불멸의 가수 등 60여가지)이 붙은 가수,
세계 가요사 노래비.추모비(100여개중 대형 노래비만 현재 7개, 앞으로 수백개 예상)가 가장 많은 가수
배호님은 여성 팬들도 많았었지만 스캔들도 없을 만큼 몸가짐을 바로 했던 배호!!


그렇다면 영원한 불세출의 가수 배호님께서는 아무 여성과도 사귀지 않았던 걸까요?

지난번 말했던 유명 여가수 J님과는 어떤 관계이었을까요?(나중에 꼭 알려드리겠습니다!!)


1971년 11월 10일자 <부산일보>는 '안개속으로 가버린 가수-배호의 노래와 주변'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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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가요계 데뷔 후 줄곧 신장병과 싸워야 했던 그 탓으로 몸을 아껴선지 배호는 연예인 가운데서 비교적 스캔들이 없는 생활을 했다.

그러나 마음과 몸을 사르며 사랑한 아가씨가 있었다.
배호는 지방공연 무대에서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대구 아가씨를 그의 약혼녀라고 소개하고 다녔다. 또 신장병에 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와의 사랑을 불 태웠다.주위에서 말리면 되뢰 화를 낼 만큼 배호는 그 아가씨에 넋을 잃었었다.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했던 배호는 생전 양가 부모 사이에 허락받아 그녀와 가깝게 지냈다는 말도 있다. 줄곧 신장병에 시달리다 근년에는 방송출연 때 그녀와 가깝게 지냈다는 말도 있다. 줄곧 신장병에 시달리다 근년에는 방송출연 때 노래 대신 녹음테이프를 틀었고 입만을 벌려야 했을 만큼 지병이 악화됐었다.

그러던 그가 마지막 남긴 노래는 <영시의 이별>과 <마지막 잎새>.
신장병으로 신음했던 배호로서는 격정적인 노래를 부를 수 없었고 안으로 파고드는 구성지고 애달픈 노래만을 남겼지만 대구 아가씨의 가슴에 사랑의 '마지막 잎새'를 새겨 놓고 '안개 속으로 가버린'것이다.
(중략)
유족으로는 어머니 김금순 여사(55)와 여동생 명신 양(18)이 있다.
김여사는 '장가 못 보낸 것이 한'이라면서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슬픔으로 눈물을 그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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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배호님에게는 이처럼 숨겨둔 약혼녀가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2001년 11월 5일자 <경향신문>은 '거기 그 노래가 있었네 4.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사나이 아픔 달래던 구슬픈 저음' 제하의 기사에서 이렇게 보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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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금이 임박한 1960년대의 밤 12시...
(중략)
배호의 노래를 부르며 뱃속에서 퍼올려지는 듯한 뜨거운 그 무엇에 그들은 울고 있었다...
(중략)
25살의 젊은 나이에 혜성처럼 나타난 배호는 단숨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유의 저음으로 구슬프지만 힘있게 넘어가는 그의 노래 맛 때문이었다.
(중략)
그러나 이 비운의 가수는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71년 11월 7일 밤 9시,서울 미아리고개를 달리던 병원 앰뷸런스 안에서그는 차갑게 식어갔다.
붉은 피가 아름다운 29살이었다....
(중략)
배호를 불세출의 스타로 만든것은 <돌아가는 삼각지>였다.
당시 이미자는 활약했고 나훈아는 데뷔하지 않은 상태였다.
남진이 배호보다 3개월 먼저 활동을 시작했다.
KBS라디오 <오후의 로터리>라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1년간 인기순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배상태씨는 "고인이 된 박시춘 씨는 배호를 두고 '백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가수'라고 평했었다"고 전했다...
(중략)
배호의 당시 인기는 장례식이 있던 날.
미아 10동 자택 앞에서 시작돼 200m까지 길게 늘어선 소복 입은 여대생을 비롯한 젊은 여성들의 행렬로도 짐작된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일이지만 배호에게는 숨겨 둔 약혼녀가 있었다.
7살 연하로 대구 공연에서 배호에게 꽃다발을 목에 걸어주었던 팬이다.얼굴이 하얗고 체구가 작았는데 배호는 '옥아'라고 불렀다. 배호가 1년 가까이 지병으로 동침 없이 동거만 한 그녀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안 배호가 죽기 하루 전날 필사적으로 고향으로 돌려보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배호는 자신이 몸에 지녔던 필립파텍 손목시계와 반지를 그녀에게 주었다.당시 병실 문짝을 붙잡고 한사코 남겠다며 울부짖었던 20대의 젊은 그녀.이제는 중년의 여인이 되었을 그녀는 어디에선가 남몰래 배호의 30주기를 맞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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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경향>1984년 2월호 '70년대 사회학 3'(210~215)에서 배호님 어머니 김금순 여사는 배호님이 타계하신지 13년 만에 배호님이 죽기 전에 약혼을 했었던 사실을 팬들 앞에 털어 놓으셨습니다.

1987년 10월 4일자 <주간경향>에 실린 쇼 사회자 최성일의 회고문에도 배호님이 사랑하셨던 '단 한 사람의 여성'일 것으로 미루어지는 목격담이 나옵니다.(내용 생략)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낀 장충단공원>의 작곡가 배상태님(배호님 노래 40여곡 작곡)은 당시 배호님의 약혼녀에 대해서 "약혼자가 병실에 같이 있었어요. 그런데 여자의 입장도 있고 하니까 배호가 숨지기 3~4일 전에 내려 보냈어요.(사실 상 배호님께서 매몰차게 보내셨습니다.)  시집도 못 가면 안 되잖아요.그래서 할 수 없이 파혼을 하도록 한거죠. 형부가 공군 대령인가 대위인가 그랬는데,그 형부가 와서 데려갔죠."
 

시간은 이렇듯,민족 최대의 가수,영원한 불세출의 가수 배호님의 혈육을 남길 수 있도록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았습니다.

만일 혈육을 남기셨다면 현재 수천만원의 저작권료(음원 수입)가 들어와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을것이고 현재
남아 있는 배호님의 짝퉁노래(음반의 30% 이상)도 정리가 됐을 것입니다.또한 배호님 노래도 방송에 자주 나오게 할 수도 있어(방송국 관계자 매수해서 ㅋㅋ 예를 들면 연속극 삽입곡에 넣는다든지..) 더 많은 돈이 들어오도록 하여 떵떵거리며 잘~살 수 있었을것입니다.ㅋㅋ

만일 1971년 10월 20일에 배호님께서 이종환 진행의 MBC<별이 빛나는 밤에>에 출연하고 밤12시에 가수들을 위한 야간통행증으로 귀가할 때 비가 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요? 배호님의 신장병이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고 대한민국 가요계에서 독보적인 인기가수로서 경제적으로는 준재벌의 자산가로서 예쁘디 예쁜 약혼녀와 결혼을 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하게 잘 살고 계실 것입니다.
 
저는 모든 일 다 접고 배호님 곁에서 운전기사나 허드렛일 하며 살아갈것 같습니다.ㅋㅋ
사랑하는 사람과 어머님,동생을 두고 눈을 감아야만 했던 배호님의 그 심정 누가 알겠습니까?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픕니다.

쓰러질 때까지 노래를 부르다 노래가 불러 일으킬 때까지 노래를 부르다 안개속으로 가버린 세기에 가장 안타까운 가수, 불꽃같이 살다간 비운의 천재가수, 이 시대의 진정한 불멸의 가수, 영원한 불세출의 가수, 세계 최고의 가수, 동양의 베에토벤 가성 배호님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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