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hers...

현대사 아픔과 갈등, 굴곡, 논란 안고 떠난 전두환 전 대통령

Jimie 2021. 11. 24. 07:49

[사설] 현대사 아픔과 갈등, 굴곡, 논란 안고 떠난 전두환 전 대통령

조선일보
입력 2021.11.24 03:20 | 수정 2021.11.24 03:24
 
[서울=뉴시스] 백동현 기자 = 23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고 전두환 전 대통령 빈소가 마련돼 있다. (공동취재사진) 2021.11.23. photo@newsis.com

전두환 전 대통령이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 명 예외없이 영욕이 교차한 대한민국의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에서도 전 전 대통령만큼 끊임없이 비판받고 마지막 순간까지 논란을 일으킨 경우는 없었다. 지난달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전 전 대통령까지 눈을 감으면서 격동의 현대사가 또 하나의 장을 넘기게 됐다.

 

전 전 대통령이 철권통치했던 8년(1980~1988년)은 정치적 억압과 권위주의 통치, 인권 탄압이 이어진 시기였다. 그는 12·12 쿠데타를 통해 권력 기반을 잡은 후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력 진압하며 집권했다. ‘80년의 봄’으로 상징됐던 민주화 바람은 그의 등장으로 싹이 꺾였다.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시위가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고 많은 시국 사범들이 잡혀가 옥고를 치렀다. 언론에 대해선 보도 통제와 사전 검열이 일상화됐다. 박종철·이한열 등 대학생들이 고문이나 시위 중에 숨졌다. 다만 경제적으로는 2차 오일쇼크의 경제 위기를 벗어나 1980년대 유례없는 호황기를 맞았다. 정치적으로 암울했지만, 단군 이래 처음이라는 ‘물가 안정’ 등 경제적으로는 발전했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전 전 대통령은 육군사관학교 4년제 첫 기수(11기)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으면서 군부의 핵심으로 성장했다. 그가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79년 10월 박 전 대통령 시해 사건 직후 보안사령관으로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을 전격 체포하면서다. 합동수사본부장이 되어 10·26 사건을 수사했고, 신군부를 규합해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는 12·12 쿠데타를 일으켰다. 민정 이양 요구를 외면한 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뒤 1980년 9월 장충체육관에서 관제 선거인단 투표로 11대 대통령에 올랐다. 곧이어 개헌을 통해 이듬해 3월 임기 7년의 간선제 대통령에 다시 취임했다. 이런 비민주적 집권은 재임 내내 정통성 시비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5·18은 전 전 대통령이 생을 마치는 날까지 그를 짓누르는 업보가 됐다. 그는 미얀마 방문 때 북한의 아웅산 테러로 정부 각료급 14명이 순국하는 참사도 겪었다.

 

전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임기 연장 대신 육사 동기이자 쿠데타 동지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후계 자리를 넘겼다. 노 전 대통령은 1987년 6월 29일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받아들이는 결단으로 국가적 파국을 피했다. 전 전 대통령은 이 직선제 수용은 사실 자신의 뜻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해 왔다. 전 전 대통령이 직선제 개헌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했던 것은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유혈 사태를 통해 권력을 잡고 폭압 체제로 국민을 억눌렀던 전 전 대통령은 권력을 순순히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예상했다. 전 전 대통령은 이런 예상을 깨고 평화적 과정으로 권력을 이양해 우려됐던 국가적 비극은 피할 수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단죄를 받았다. 5공 청산 청문회에 불려 나갔고 백담사에 유폐됐다. 김영삼 정부 때는 12·12 군사 반란 및 5·17 내란, 2200억원대 뇌물 비자금 조성 혐의로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가 사면됐다. 전 전 대통령은 5·18 당시 계엄군에게 발포 지시를 내린 적이 없고 헬기 기총 사격도 없었다고 부인했다가 고령의 나이에도 법정에 나와 재판을 받아야 했다. 그는 끝까지 5·18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다.

 

그는 남은 현금이 29만원뿐이라며 1600억원대 미납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텨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박근혜 정부 때 검찰 수사로 가족·친척 명의로 돼 있던 800억원대 재산이 압류됐지만 추징금 956억원은 내지 않은 채 남았다.

 

그의 집권기 경제적 성과는 좋았다. 1979년 박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중동 오일쇼크 여파로 경제 상황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김재익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발탁해 전권을 맡기는 등 경제 회생 정책으로 호황기를 만들었다. 유가·금리·환율 등 ‘3저(低)’ 호재가 겹치면서 수출이 날개를 달고 대기업들도 급성장했다.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0%에 가까웠고 물가도 안정됐다.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도 유치했다. 그는 사회적으로는 야간 통행 금지를 풀고 교복 자율화를 시행했다. 과외 금지 조치도 실시했다. 당시 경제 발전과 개방 정책으로 늘어난 중산층은 1980년대 말 민주화 요구를 분출시켰다.

 

지금 우리 사회는 좌우 진영과 지역, 계층으로 갈라져 대립하고 있다. 이 대립과 갈등이 격화된 출발점이 바로 전 전 대통령 집권 과정이었다. 이 갈등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 격동의 현대사 중심에 서있던 전 전 대통령이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런 점에서 전 전 대통령이 5·18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고 떠난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5·18 희생자 중 한 사람인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고 했다. 이제는 어두웠던 역사의 기억도 그와 함께 떠나보냈으면 한다. 그의 죽음과 함께 우리 사회도 대립과 갈등, 상처를 넘어서는 길로 가기를 바랄 뿐이다.

 

 

박희남2021.11.24 03:50:08
전직대통령에 대한 공과는 있을수 있겠지만 왜그리 모질게 밀어 붙이는 5.18 유족들의 행태도 도가 지나치다.....과연 무기고를 털어 전쟁을 방불케한 사건이 민주화로 덮는다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언젠가 공정하게 역사를 평가하게 될 것이다....또한 뭐가 두려워 유공자라는자들의 명단을 공개 못하는가??? 자랑스럽다면 발표하라.
100
3
홍순근2021.11.24 03:41:04
개인적으로 민주의 관점이 아닌 국가의 관점에서 본다면 당시의 상황에서 그 방법이 최상의 국가를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86
5
노송근2021.11.24 05:10:44
난 민주화 인사를 믿지 않는다. 지난 60년을 돌아다 보면 민주화란 이름으로 제 배를 불리고 제 패거리들을 위한 정치를 하고 오히려 더 독재적 행태를 해온 무능한 인간들이 태반이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 중에서 제일 사악한 인간이 문재인이 아닐까 한다. 박대통령 서거 이후 혼란기를 이용해 정권을 뺏았지만 당시 2김 중 하나가 정권을 잡았다면 더 나았을까? 굶주린 이리 떼가 호랑이 한 마리보다 더 나았을 것 같지 않다. 민주화를 빌미로 5.18의 논란에 입을 다물게 하는 자들이 과연 민주를 신봉하는 자들인가? 전 대통령의 영면을 빈다.
답글1
76
3
정의철2021.11.24 06:20:52
김대중은 5.18 최대 수혜자
15
1
이상국2021.11.24 06:34:53
위 사설에 ( 끝까지 5.18에 대해서 사과하지 않았다 ) 신문기자들이 공부를 안 하고 뭘 모른다. 구글 검색창에 ( 이희성 최보식 기자 ) 검색해보세요. 그 글에서 전두환 대통령은 그 때 광주 5.18에 대힌 책임이 전혀 없었고 그 때의 계엄사령관은 이희성 장군이라서 전두환 장군이 계급이 높은 이희성 장군을 명령하거나 권고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신문이 진실을 전해야지 엉터리를 전하면 됩니까 ? 4.15 부정선거의 진실도 보도하지 않고 . 지금 조선일보 정기구독자이지만 문화일보로 갈아탈 계획입니다. 그리고 12.12 쿠데타가 아닙니다. 합법적입니다. 최규하 대통령을 비롯해서 고위직 장관들이 대통령 하라고 권유해서 한 것입니다. 자기는 대통령 할 의도가 없었다고 말하셨습니다. ( 전두환 회고록 참조 )
13
2

황광열2021.11.24 07:03:02
삼가 (故) 전두환 대통령 각하의 冥福을 빕니다
12
0
이근수2021.11.24 06:56:56
전두환 전 대통령은 사과할 일이 없다. 5.18 사태때 적절히 진압하지 않고 김대중이 의도한대로 5월22일 민중봉기로 김대중이 정권을 탈취했다면 지금 한반도는 김정은 치하와 비슷한 처지로 진행되었을 것이 뻔하다. 그랬을 경우 우리는 지금 북한처럼 김일성의 위대한 영도하에 5.18사태 성공을 축하하는 소리를 지르며 살고 있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12
0
이상국2021.11.24 07:11:25
집안에 어른 노인이 계시면 방 안에 편히 계십시오 . 노인 보고 밭에 일하러 갑시다. 오늘 광주에 재판 받으러 갑시다. 그리 하지 않습니다. 올해에도 재판 받으러 광주에 가시는 것을 보고 어찌나 마음이 아픈지 " 이 종북좌파들은 어른 공경도 없구나 ! " 나라의 어른 지도자 대통령이 돌아가셔도 조문 간다는 대선 후보가 없다. 아주 막 되어 먹은 인간들 , 기본 예의도 없는 인간들이다.
10
0
황광열2021.11.24 07:20:35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재임 15년 간, 국정조사,청문회,특검 등으로 5.18에 대한 진실을 탈탈 털었다. 전두환의 발포명령 없었고 폭도들이 버스탈취해서 시위진압 계엄군을 깔아뭉게는 바람에 현지 분대장의 방어 사격이 첫 발포로 밝혀졌다. 광주mbc상공의 기총소사도 없었고 오히려 폭도들이 헬기에 발포했다고 밝혀졌으나 文이 집권해서 다시 원점수사를 지시하는 등 끝도없는 5.18 역도들의 반문명 횡포가 자행되고 있으며 최대 피해자는 전두환 대통령이다.
6
0
문길상2021.11.24 07:19:40
전두환 군은 지은 죄가 차고 넘쳐 필설로는 죄목을 다 열거할 수 없지만, 오늘 당장 죽어도 " 그놈 참 잘 죽었다:라는 말은 듣지 말아야 한다. 죽어서도 상갓집 개 신세가 되어버린 전두환에게 고한다. 자유대한민국에 다시는 나타나지 말아라.
1
4

유대열2021.11.24 07:35:27
전두환 욕할 것 없습니다. 박정희대통령 시해의 혼란을 재빠르게 수습하고 국가 안정을 도모한 것은 불가피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국민 편가르기는 좌파의 특징입니다. 이재명 놈 보십시요. 90:10 편가르기로 부자 국민 10% 돈을 강제로 갈취하여 가난한 90%에게 나눠준다는 공산주의자 아닙니까요?
3
0
박기린2021.11.24 07:40:06
29만원밖에 없다고 한것도 OOO의 날조요 518과 전통이 무슨 관계가 있나? 김대중 석방하라고 군경살해하고 무기고 탈취한걸 민주화라고 하는건가 제발 역사 바로세우기하자 518 세월호
2
0
이종운2021.11.24 07:42:39
영욕과 명암을 한몸에 지니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국론분열의 축도 이젠 끝이 났다. 이젠 전진이다. 호남인들부터 전진해야 한다! 전두환에서 벗어나 밝은 태양을 쫓는 대열에 합류해야한다. 과거를 털고 미래를 향해 나가자. 법치와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시대로 나아가자. 표를 얻기 위해 가진자와 안가진자를 이간질시키려는 자, 또다시 국론을 분열시키는 자를 축출해야한다. 이제는 자랑스런 단군의 자손으로 뭉쳐야한다!
1
0
이한식2021.11.24 07:42:46
김대중이 희생자???
0
0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