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from Me

대한의 사나이 대한민국 공군

Jimie 2021. 11. 12. 13:41

대한의 사나이 

1997

작사 이은집   작곡 김성국

https://www.youtube.com/watch?v=ZvXV918C24A

 

 

 

건군 제60주년 대한의 사나이 (군가)

https://www.youtube.com/watch?v=JZHJrghEsEc 

 

 

육군훈련소 조교 출신왈,  대한의 사나이는 필수 교육군가는 아닙니다.

육군가, 전우, 육군훈련소가, 푸른 소나무 등 여러 곡을 우선적으로 교육하고 대한의 사나이나 멸공의 횃불 같은 군가는 수료 직전에 교육하거나 또는 자대에 가서 교육받도록 지도하는 것이 지침이었습니다.

 

 

 

공군가

작사 최용덕   작곡 김성태

 

*대한민국 공군 창설의 주역이자 *제2대 공군 참모총장 최용덕 장군 작사곡

https://www.youtube.com/watch?v=CivqNhCp0EM 

 

대한민국 공군 창설의 주역이자  제2대 공군 참모총장  최용덕(崔用德 1898~ 1969) 장군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 1919년 대한독립청년단과 1922년 의열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펼쳤다.

최용덕은 중화민국 공군의 고급장교로서 중화민국 공군 건설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고, 1940년 광복군 창설 후에는 광복군총사령부 총무처장 등을 거쳐 1944년 참모처장을 역임했다.

광복 후 1946년에는 공군을 창군하기 위해 국내 항공단체들을 통합하여 '한국항공건설협회'를 창립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최용덕은 초대 국방부차관에 임명되었으며, 국군조직법 제정에 관여하며 공군 독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여  1949년 10월 1일, 대한민국 공군이 창군되었다. 1950년 공군 준장으로 공군사관학교 교장, 공군 참모부장, 제2대 공군 참모총장을 역임 1956년 공군 중장으로 예편하였다.

 

장군은 1960년 체신부장관, 1961년 주 중화민국 대사에 임명되었고,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받았다. 

 "내가 죽거든 수의 대신 공군복을 입혀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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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당시 본 블로거는 K-5 대전비행장에 있던 공군 기술교육단에 입소하여 공군에 입대하였는데

1969년 8월 장군이 영면할 때는 부산의 외진 '장거리통신 파견대'에서 근무했던 탓인지 그 사정이 어두웠었다.

공군에 입대하면 배우고 부르기 시작하는 공군가는 대한의 공군에게 장군이 지어 남긴 영원한 선물로 함께하리라.

 

 

대한민국의 비행장과 K-SITE CODE

대한민국의 비행장에  K-SITE CODE(정식명칭; 국제항공운송협회 IATA CODE/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CODE)가 부여된 것은 한국전쟁 당시 미공군이  한반도(남북)의 군사공항, 비행장을 부를 때 사용했던  CODE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인천국제공항(Incheon International Airport)의 IATA의 코드는 ICN이며  ICAO 식별명은 RKSI 이다.

 

 K-1 김해국제공항(PUS/RKPK), K-2 대구국제공항(TAE/RKTN),  K-3 포항공항(KPO/RKTH),  K-4 사천공항(HIN/RKPS), K-5 대전 비행장(QTW/RKTF) , K-6 평택 비행장(RKSG) , K-9 동부산 공군기지(East Busan Base RKPP),  K-18 강릉 비행장(KAG/PKNN) 등이며  대관령 헬리포터는 K-Juliet...  

(나는 K-2, K-5, K-6, K-18, K-Juliet 에 머문 적이 있다)

 

1968년 당시 대전 탄방동 K-5 대전 비행장, 공군 기술교육단에서 교육생 시절 널리 불렸던 비공식 비인가(?) 군가(?)~

공군에 오랜 세월 전승되었을 그 인기절정의(?) 군가가 문득 떠오른다.

 

54년 세월이 흐른 날에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옛 공군의 추억~~~

휴식시간, 오락시간, 회식시간, 자유시간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던 양념, 공군의 연가(?), "대전서 유성간에~..."

 

군가는

"대전서 유성간에~"

군가시작 하나 둘 셋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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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서 유성간에

젊은 청춘이 모여드는

우리 항공병학교

 

오늘은 휴무날이다 내일은 기합이라도

오늘만은 우리세상

지그작작작 지그작작~ 지그작작작 지그작작

 

로맨스 깊은 밤에

그대와 단둘이서 속삭이던 그날밤이 그립구나

야야야야~ 야야야 야야야야

날씬한 그대 허리 그대 허리 몽실 몽실 ㅈㄱㅅㅇ ㅈㄱㅅㅇ..........

*나를 울린다 나를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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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소절은 '마음에 든다'  '그리워진다' 등으로도 응용되었던듯~

 

▲ 대전 서구 탄방동 보라매공원

 

 

K-5 대전비행장 (QTW/RKTF) 옛터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 589 일대 (보라매공원 일대)
 
대전의 중심이 된 둔산  보라매공원은
서구 탄방동 시청사 남쪽 잔디광장에서 시청 북쪽의 산책로까지 1㎞가 넘게 길게 꾸며진 5만 4466㎡ 규모의 공원이다.

K-5 대전비행장은 일제강점기 때인 1944년 일본 육군성이 전국에 건설한 비행장 중 한 곳이었다. 대전비행장 건설에는 대전주민들뿐만 아니라 인근 유성, 공주지역 주민들까지 강제동원되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미 제24사단이 주둔하면서 군사물자 기지, 전방지휘소로 사용되었다. 대전전투를 앞두고, 미 제24사단장 딘 소장, 미 제8군단장 워커 중장, 미 제5공군 사령관 패트리지 소장 등 미군 수뇌부들도 이곳 대전비행장을 통해 대전에 왔다. 이후 미 제5공군의 보급물자 수송기지로 활용되기도 했다.
 
1952년 K-5에 공군항공병학교가 창설된 후 공군 통신전자학교, 공군 기술고등학교 등이 주둔했다. 이후 1956년 8월1일 공군기술교육단이 창설되었고, 1973년  4월 10일 공군교육사령부로 개편 창설되었다. K-5는 사령부 내에 있었던 훈련 및 연락용 비행장으로 초등비행훈련을 담당하는 공군 제212 교육훈련비행대대가 주둔하였다.
 
공군교육사령부는 1988년 11월 경남 진주로 이전했고, 둔산 신시가지가 개발되면서 대전비행장 터 일부가 보라매공원으로 조성되었다. 1995년 10월에는 ‘공군의 위용 상징탑’을 건립했고, 2000년 11월에는 관측기, 훈련기, 전투기를 전시해 두고 있어 이곳이 과거 공군 관련 시설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