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시골중학교 시절, 실업교과는 농업이었다.
당시 김J.호 농업 선생님은 체격이 비교적 넉넉하여 농업교사에게 잘 어울리는 "보릿단"이란 별명을 얻으셨다.
`960년대초, 당시 국민소득 100달러 미만으로, 봄이면 보릿고개를 넘던 찢어지는 가난 탓도 있었겠지만
"보릿단" 선생님은
당신의 제자들이 비옥한 성주땅에서 한국의 달가스가 되어
육종과 원예농업 개척으로 농업혁명을 일으켜 오천년 가난을 몰아내고
한국의 덴마크를 건설하기를~~~!!!........................................소원으로 교육애를 펼치셨다.
소년은 객향을 떠돈 연유로 이따금 찾는 귀향길에 고향산천의 변화를 느끼곤 하였다.
소년의 기억으로는
1970년대? 고구마, 배추 등 근교농업에 온벌판은 수박밭으로 뒤덮였었다.
소위 성주 수박의 시절이다.
그러다가 1980년대 중반?부터인가 소득이 낫다는 참외 비닐하우스가 온벌판을 덮여버리더니
지금의 성주 참외다.
고향 떠난 소년이 군 복부중이던 1970년대초 어느해
모처럼 귀향하던 버스가 왜관~ 성주사이 비포장도로를 따라 바람퇴고개를 올랐을 때
영마루에서 저 멀리 보이는 가야산까지 드넓은 성주 벌판은 온통 하얀 파도가 물결치고 있었다.
수박재배용 비닐이 햇볕에 반짝이는 '파도치는 바다'로 변한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언제쯤인가 부터 성주분지는 온통 참외 비닐하우스로 하얗게 덮여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성주는 농업혁명을 이룩하였고,
"보릿단" 선생님의 바람대로 "한국의 덴마크"로 태어난 것이었다.
성주 12경 비닐하우스 들판
https://www.youtube.com/watch?v=cOHJ2GI5NTg&t=20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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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농업혁명가, 달가스(Enrico Mylius Dalgas·1828∼1894)
덴마크 (The Kingdom of Denmark)와 뉴질랜드는 '부패인식지수'가 세계 최고로 청렴한 나라로...
국민 행복지수 세계 제1위의 나라 덴마크는 본래 매우 척박한 땅이었다.
척박한 덴마크는 부흥 지도자 ‘달가스’를 통해 비옥한 토지의 나라로 태어난다.
달가스는 군인 출신으로 국토개척 사업에 착수, 허허벌판인 모래밭에 식수 사업, 객토 사업, 시비(施肥), 하천 정비, 연료 발굴 사업을 벌였다.
대대적인 이 사업은 그의 아들 代(대)까지 이어져 마침내 전 국토가 푸르게 바뀌었고, 토지를 기름지게 만들었다.
이것이 덴마크를 세계적인 낙농국, 그리고 선진 산업국가로 만든 시발점이 된 것이다.
소년의 중학시절 '보릿단 선생님'은
"달가스의 영도아래 덴마크 사람들은 척박한 땅을 물에 빨아서 기름진 땅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감명 깊게 소개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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