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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환(柳致環) 청마시초(靑馬詩抄) / 깃발 / 그리움 1, 2

Jimie 2021. 9. 23. 15:12

 

 

/ 유치환 청마시초(靑馬詩抄) / 깃발 / 그리움 1, 2

 

깃발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海原(해원)을 向(향)하야 흔드는
永遠(영원)한 노스턀쟈의 손수건
純情(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理念(이념)의 標(표)ㅅ대 끝에
哀愁(애수)는 白鷺(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맨처럼 공중에 달줄을 안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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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1월 [조선문단]에 발표된 시 ‘깃발’은 대립과 모순의 구조로 유치환 초기 시의 경향을 잘 보여줍니다.

시인은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이것은 소리없는 아우성”이라고 말합니다. ‘
이것’이라는 근칭 지시어로 보아 시인은 깃발과 가까운 거리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깃발은 곧 근거리에 위치한 시인이 자신의 마음을 투사하는 대상이 됩니다.

다음 행 “저 푸른 해원을 향하야 흔드는”에서 깃발이 지향하는 것이 바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시인의 마음이 지향하고 있는 것이기도 한데, 깃발이 “노스탈쟈의 손수건”에 비유되면서 바다는 향수, 즉 그리움의 대상으로 변모합니다.

4행에서 깃발은 다시 순정의 물결이 됩니다. ‘아우성 – 노스탈쟈 – 순정’이라는 이미지의 전개 속에서 깃발은 시인의 순정을 상징하고 있으며, 그리움의 그 마음은 소리 없이 아우성치고 있었음이 드러납니다.

그리워하지만 갈 수 없는 이유는 깃발이 푯대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푯대는 “맑고 곧은 이념”에 비유됩니다. 푯대가 깃발을 묶어두듯이, 이념은 순정을 제어합니다.
여기서 순정과 이념의 대립구조가 나타납니다. 깃발이 동적이며 수평적으로 푸른 바다를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순정은 마치 물결과도 같이 바람에 나부낍니다.

푯대가 정적이며 수직적으로 하늘을 지향하고 있는 것처럼 이념은 맑고 곧습니다.
먼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펄럭이지만 푯대에 묶여 있음으로 인해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깃발의 모습은 ‘백조처럼 날개를 편 애수’로 발전합니다. 깃발과 바다의 좁혀질 수 없는 거리가 애수의 정서를 불러일으킨 것입니다.

애수는 이념의 푯대와 그에 반하는 순정의 나부낌이라는 대립 속에서 회의하고 갈등하는 모순된 정서의 표현입니다. 이 시의 화자는 맑고 곧은 이념의 푯대를 세웠지만 끊임없이 나부끼는 순정에 흔들립니다. 소리없는 아우성으로 표현될 만큼 마음의 갈등은 고통스럽습니다.

결국 그 한계를 인정하고 애수에 젖는 것. 깃발이 등장하는 또 다른 시 [그리움]의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애수는 울음의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의지와 감정의 모순된 마음과 그 사이를 흐르는 애수의 정서는 시집 [청마시초]의 개성이자, 유치환 초기 시의 가장 큰 특징입니다.
[해설 : 哀愁(애수)의 시학, 박민영]

 

유치환은 1908년 7월 14일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에서 태어났다.

동래고보를 졸업, 1937년 통영협성상업학교 교사가 되었고, 1939년 첫 시집 <청마시초>를 펴냈으나, 일제의 압제가 심해지자 1940년 만주로 건너가 살다가 해방후 귀국하여 교육자로 시인으로 살다가 1967년 2월 13일 부산 동구 좌천동 봉생병원 앞에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해방 직후에는 '생명파 시인'으로 분류되기도 했고, 대표작으로 <깃발>· <행복>· <생명의 서>· <일월>· <바위> 등이 있습니다.

 

그리움 / 유치환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 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더 그리워
진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그리움 / 유치환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