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s

그리움만 쌓이네

Jimie 2020. 8. 8. 06:45

그리움만 쌓이네

여진 작사.작곡.노래

 

여 진 - 그리움만 쌓이네

1979

다정했던 사람이여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 버렸나
그리움만 남겨놓고 나를 잊었나
벌써 나를 잊어버렸나

그대 지금 그 누구를 사랑하는가
굳은 약속 변해 버렸나
예전에는 우린 서로 사랑했는데
이젠 맘이 변해버렸나

아 이별이 그리 쉬운가
세월 가버렸다고 이젠 나를 잊고서
멀리 멀리 떠나가는가

오 나는 몰랐네 그대 마음 변할 줄
난 정말 몰랐었네
오 나 너 하나만을 믿고 살았네
그대만을 믿었네
오 네가 보고파서 나는 어쩌나
그리움만 쌓이네

아 이별이 그리 쉬운가
세월 가버렸다고 이젠 나를 잊고서
멀리 멀리 떠나가는가
오 나는 몰랐네 그대 마음 변할 줄
난 정말 몰랐었네
오 나 너 하나만을 믿고 살았네
그대만을 믿었네

나는 몰랐네 그대 마음 변할 줄
난 정말 몰랐었네
나 너 하나만을 믿고 살았네
그대만을 믿었네
오 네가 보고파서 나는 어쩌나
그리움만 쌓이네
오 네가 보고파서 나는 어쩌나
그리움만 쌓이네,

 

 여진은 1958년생, 본명 남궁은영으로 이화여고와 서울대 성악과를 졸업한 싱어송 라이터다.여진은 고등학생 때부터 이미 싱어송라이터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었다 한다.

 

1978년, MBC 라디오가 주최한 창작가요제에서 자신이 직접 쓴 '꿈을 꾼 후에'와 '그리움만 쌓이네'가 당선되면서 대중가수의 길로 들어 1979년에 자신이 작사작곡하고 직접 부른 노래들을 모아 "여진 노래모음 1집"을 발표했는데 이 음반에 수록된 "꿈을 꾼 후에", "목련꽃"과 더불어 이 노래가 히트를 하였다.

 

당시 라디오와 레코드점에서 자주 흘러나오던 멜로디가 무척 구슬프고 아름다운 이 곡은 대중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 주면서 널리 전파되어 나갔다.

 

그런데 노래를 부른 가수는 방송에서 전혀 볼 수가 없었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처럼 애절하고 감미로운 노래를 부른 가수가 누구인지 무척 궁금해 했다.

 

79년도와 80년도 초반에 라디오에서 인기 순위가 상위에 오르는 등 노래는 인기있는 명곡이 되었지만, 정작 노래를 부른 가수는 끝끝내 방송에서 볼 수가 없었다. 노래는 큰 인기를 끌었지만, 노래를 부른 가수는 나타나지 않는 매우 희한한 일이 발생했다.

 

나중에는 서울대 음대 출신 '여진'이 직접 곡을 만들고 불렀던 노래로 알려졌는데, 좋은 집안에서 명문대에 재학하는 클래식 학도인 딸이 대중음악에서 소위 '딴따라'가 되는 걸 용납하지 못했던 부모의 반대로 여진은 더 이상 대중음악활동을 펼치지 못하고 교사의 길을 걸어야 했다

 

여진은 방송활동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채 오로지 노래만 히트시켰으니 이는 여진이 앨범을 내고 나서 3일 뒤에 중학교 음악교사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다. 방송활동은 교사로서 부적절한 것이라는...

 

'여진'은 1979년 대학졸업후 바로 서울사대 부속여자중학교 음악 교사로 발령을 받았고, 교사와 가수활동을 병행할 수가 없게 되었고 결국 가수활동을 포기했다고 한다. 1995년까지 움악교사로 재직한 후 2004년부터는 동아방송대학 영상음악계열 보컬(성악)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렇게 하여 '그리움만 쌓이네'는 70년대 후반과 80년대를 풍미했던 명곡이었지만, 가수는 직장과 결혼 등으로 한 번도 얼굴을 대중들에게 내비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잊혀진 이 곡이 부활한 건 1994년에 노영심이 리메이크한 후였는데 노영심이 리메이크 허락을 얻으려고 여진을 찾아가자 그녀는 즉각 허락을 해주었다고 하니 그동안 여진이 얼마나 가수 활동을 그리워했는지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는 일화다. 싸비 클라이막스에서 음이탈이 있는데 노영심은 이를 수정하지 않고 그냥 사용하였다.

 

15년이 흐른뒤인 1994년 노영심이 허술하고 허망한 가창력으로 '그리움만 쌓이네'를 리메이크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성공을 거두자 여진은 용기를 냈다. 음악교사로 재직중 1983년에 공개한 "그리움만 쌓이네"가 실린 1집 앨범 < 여진의 노래모음 > , 이후 12년 만인 1995년에 두 번째 음반, 2000년에 3집을 발표했지만 원작자의 반가운 외출은 빛이 바랬다.

 

2009년 새로운 음반을 발표하면서 가요계에 다시 복귀해서 비로소 대중들에게 얼굴을 알리면서 여진은 이제 '얼굴 없는 가수'라는 꼬리표를 뗄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여진을 더 이상 주목하지 않았다.

 

틈틈이 유익종과 이은미의 앨범작업에도 참여하며 음악활동을 꾸준히 해왔고 베스트 앨범[꿈을 꾼 후에]도 내었다,

 

"그리움만 쌓이네~~~"
후반부에 등장하는 플루트가 여진의 고전음악에 대한 배경을 감지할 수 있는 '그리움만 쌓이네'는 쓸쓸한 가을에 어울리는 그렇게 두 번이나 우리 마음속에 스며들었지만 펑크밴드 레이지본이 2004년에 재해석한 버전은 그다지 인기를 얻지 못했다.

 

여진 - 그리움만 쌓이네

Live (2000) (H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