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정권 출범 임박…첫 기자회견서 유화 제스처
- 아시아경제
- 김수환
- 입력2021.08.18 10:33
탈레반 지도자, 아프간 입성…새 정부 구성 착수 임박
탈레반, 유화적 정책 내놔…NYT "이미지 관리하는 것으로 보여"
검문소 설치·불시 검문 등 곳곳에서 공포 정치 사례 잇따르기도
G7, 아프간 사태 논의 예정…英 "국제사회, 아프간 인도주의적 위기 막아야"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 (가운데)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김수환 기자] 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인 탈레반이 수도 카불 장악 후 첫 기자회견에서 여성인권 존중과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겠다고 밝히는 등 기존보다 유화적인 정책들을 발표했다. 앞서 미 정부를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탈레반을 아프간 공식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탈레반 측이 국제 사회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한 제스처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탈레반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아프간으로 입성, 정권 출범을 본격화하고 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17일(현지시간) 트위터를 통해 바라다르가 이날 오후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 공항으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탈레반이 지난 15일 수도 카불을 장악한 지 이틀만이다. 탈레반 공동 설립자이자 실질적 지도자인 바라다르는 작년 9월 카타르 도하에서 시작된 아프간 정부와의 평화협상에서 탈레반을 대표해왔다.
바라다르는 1968년생으로 알려졌으며, 아프간에 돌아온 것은 10여년 만이다. 탈레반은 바라다르를 중심으로 새 정부 구성에 착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탈레반 최고 지도자인 히바툴라 아쿤드자다 소재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바라다르가 입국하면서 탈레반의 새 통치 체제 발표가 임박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바라다르는 앞서 탈레반 지도부를 이끌고 하미드 카르자이 전 아프간 대통령, 압둘라 압둘라 국가화해최고위원회 의장과 평화 협상을 벌여왔다.
이에 따라 탈레반이 아프간 접수 후 이전과 달리 유화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공식 정권으로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스처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날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아프간 장악 후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이슬람법의 틀 안에서 여성의 권리를 존중할 것이며 여성의 취업과 교육도 허용할 계획"이라며 "이미 사면령이 내려진만큼 이전 정부군이나 외국군에 협조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복수도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그는 이어 "아프간 내 민간 언론 활동도 독립적으로 이뤄지기를 원한다"며 "다만 기자들은 국가의 가치에 반해서는 안 된다"고 발언했다.
앞서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첫 집권할 당시 이슬람 샤리아법(종교법)을 앞세워 엄격하게 사회를 통제한 바 있다. 춤, 음악, TV 등 오락이 금지됐고 도둑의 손을 자르는 등 ‘사지절단형’이 만연했으며 불륜을 저지른 여성을 돌로 쳐 죽게 하는 벌도 허용됐다.
특히 여성들은 취업 및 각종 사회 활동이 제약됐고 교육 기회가 박탈됐다. 외출할 때는 얼굴 전체를 검은 천으로 가리는 ‘부르카’도 착용해야 했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은 탈레반이 이같은 폭력적 통제 정책을 다시 단행할 가능성을 우려하며 탈레반이 인권을 존중하는 경우에만 탈레반 정부를 공식 인정하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네드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 16일 기자회견에서 "앞으로 아프간의 정부에 관한 우리의 태도는 궁극적으로 그 정부의 행동에 달려 있을 것"이라며 테러리스트를 숨기지 않는 일, 인구 절반인 여성과 소녀를 포함해 기본권을 보장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탈레반의 기자회견을 두고 "탈레반이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기 위한 의지를 보여준다.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아직도 국제 사회는 탈레반의 과거 행위를 바탕으로 탈레반 측의 유화적 정책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상태다"라고 전했다.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실제로 탈레반이 순식간에 아프간을 장악하면서 곳곳에서 공포정치를 펼치고 있는 사례가 잇따라 보고되면서 탈레반의 이같은 유화적 정책 발표가 ‘위장 전술’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6일 카불의 한 호텔에 투숙하고 있던 아프간계 캐나다인 여성의 사례를 소개했다. 보도에 따르면 호텔에 머무르고 있었던 이 여성은 탈레반이 갑작스럽게 들이닥치자 곧바로 호텔 방으로 피신했다. 탈레반 병력들은 여성을 향해 호텔 방에서 나오라고 강요했으며 이어 지갑과 가방을 뒤지면서 불시 검문에 나섰다. 이에 해당 여성의 남편이 강하게 항의하자 탈레반 대원들이 남편의 얼굴을 가격하기도 했다고 WSJ는 전했다.
앞서 CNN도 지난달 탈레반이 장악했던 지역에서의 한 사례를 소개하면서 여성을 대상으로 한 탈레반의 공포 정치가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한 아프간 여성이 자신의 집에 머물던 도중 탈레반 대원들이 들이닥쳤고 이들은 해당 여성에게 자신들을 위해 요리를 해줄 것을 강요했다. 해당 여성은 자신이 빈곤층이어서 요리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원들의 요구를 거부하자 이내 대원들은 자신들의 소총으로 해당 여성을 무자비하게 폭행했다고 CNN은 전했다. 이 여성은 폭행의 후유증으로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도 최근 카불을 장악한 탈레반 대원들이 시내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시민들을 불시에 검문하고 있다.
WSJ는 탈레반 대원들이 검문소에서 행인들의 핸드폰을 수시로 점검하며 정부 관련 인사의 연락처와 영어로 메시지를 주고 받은 내용 등이 담겨 있는지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미군과 협력한 아프간인들을 색출하기 위한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매체는 전했다. 또한, 검문에 응하지 않는 시민들은 폭행을 당하거나 검문소 통과가 불허되고 있다고 WSJ는 덧붙였다.
NYT는 아프간 시민들이 탈레반의 공포 정치를 두려워 한 나머지 외출을 자제하거나 피난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CNN은 탈레반의 여성 억압 정책을 우려한 여성들이 부르카(눈을 제외한 신체 모든 부위를 가리는 옷)를 대거 사들이면서 부르카 가격이 10배 이상 폭등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탈레반 측이 기자회견에서 "이슬람 율법의 경계 안에서" 여성 인권을 존중하겠다고 밝힌 점도 국제 사회의 의구심을 자아내는 부분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NYT는 "탈레반이 주장한 유화적 정책의 신빙성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한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이날 정상 통화를 가지고 아프간 사태를 논의했다.
아프간 사태 이후 바이든 대통령이 해당 사안과 관련해 외국 정상과 통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정상은 아프간 정책과 관련해 동맹국과 민주주의 국가 파트너들 사이의 지속적이고도 긴밀한 협력 필요성에 대해 논의했다.
이어 다음주에 화상으로 주요 7개국 모임(G7) 정상회담을 여는데 합의했다고 밝혔다.
영국 총리실은 성명을 내고 "두 정상은 가능한 많은 사람이 아프간을 떠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고, 국제사회가 아프간이 인도주의적 위기를 막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데에도 합의했다"고 전했다.
김수환 기자 ksh205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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