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panese Arts

龍馬殘影

Jimie 2020. 6. 29. 07:57

 

龍馬殘影

龍馬殘影

(りょうまざんえい,Ryoma zan'ei)

 

(天保6年11月15日-- 慶応3年11月15日)

作詞:吉岡治 作曲:市川昭介

 

オリジナル歌手は美空ひばり(1985年発売)

 

https://www.youtube.com/watch?v=AZR1oFyGB4Q

 

 

https://www.bilibili.com/video/BV1xh411o7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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唄 - 水森かおり 

 

카제ㅇ가 마우노카 오료오노 코에카

風 が 舞う のか お 竜 の 声 か

바람이 몰아치나 龍의 외침소린가

 

호호오 타타이타 *쿄오시ㅇ구레

頬 を たたいた *京 し ぐ れ

얼굴을 내리치던 *쿄오토의 가을비

 

노 츠즈키ㅇ가 아루나라바

夢 の つ づ き が あるならば

끝나지 않은 꿈이 아직 남아있다면

 

오마에토 미타이 사이ㅇ고마데

おまえと 見たい 最 後 ま で

당신하고 꾸고싶어 마지막 까지

 

*료오마 *치조

*竜 馬 *血染 めの

*<료오마> *피투성이로

 

료오마 치조 노 유메ㅇ가 나쿠

竜 馬 血 染 めの 夢 が 哭 く

<료오마> 피투성이로 꿈이 통곡하네

 

* 京 = 京都 의 略稱 임.

 

* 竜馬 = 坂本竜馬(1863~1887), 土佐藩 (現 高知県) 의 下級武士의 次男으로 出生, 父母가 各各 태몽을 꾸었다고해서 竜馬라 이름을 지었다고하며, 江戶의千葉道場에서 劍術硏磨 武士로, 幕末격동기에 江戶幕府의 마지막권력자 德川慶喜에게서 그 권력을 天皇 에게 반납토록 하는 大政奉還 이 이루어 지도록 진력(後에 明治維新)하는 等 활동을하다가 戊辰戰爭 直前, 京都 河原町 近江屋에서 30대의 젊은나이에 刺客들에게 暗殺되어 橫死한 不運한 近世 日本의 風雲兒임.

 

坂 本 龍 馬

 

* 血染め = 竜馬가 暗殺된 近江屋 事件의 광경을 표현한 것이며, 이 事件은 京都 河原町간장상점 2층竜馬가 묵고있었는데, 十津川鄕士라는 몇사람이 찾아와 竜馬와의 면회를 요청, 경비하고 있던 從僕 들을 무참히 살해 하면서 2층에 帶刀도 않은있던 竜馬一行 여러명을 살해한 사건으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살해되어 피바다를 이루었고, 대부분은 卽死 했으나, 中岡, 藤吉은 치명상을 입었으나 즉사 하지않아 事件의 증언을 남겨 놓고 하루 이틀 후에 각각 사망한 事件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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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카ㅇ가 무요오노 켕누이테

馬 鹿 が 無 用 の 劍 ぬいて

바보가 쓸데없이 칼 들고

 

소레데 니홍가 히라케루카

それで 日本が 拓 けるか

그런다고 일본에 새세상이 열리겠나

 

하나시데 와카루 야츠데와 나이가

話 し で わかる 刺客では ないが

말로해서 알아들을 놈들은 아니나

 

마코토 코노요와 마마나라누

まこと この 世は ままならぬ

정말로 이세상은 뜻대로 되지않아

 

우이테 타다요우 *타카세부네

浮いて 漂 よう *高 瀨 舟

강물에 떠다니는 *<타카세부네>

 

 

* 高瀨舟 = 江戶時代 江 바닥이 얕은 江에서 운행하기 爲해 日本 各地에 보급된 배로 배밑을 평평하게만든

木造船이며, 이 노래에서는 京都 高瀨川에 떠있는 高瀨舟 를 말 하는것임. (아래 사진)

復元된 高瀨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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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노 *코오치노 *하리마야 바시데

*土佐の *高 知 の *はりまや 橋 で

*<토사> <코오치>의 *<하리마야>다리에서

 

보ㅇ상   칸자시   카우오 미 타

坊さん かんざし  買うを み た

스님이 머리꽂이 사는것을 보았네

 

*요 사 코 이 요 사 코 이 ...

*ヨサ コイ ヨサ コイ ...

*요 사 코 이 요 사 코 이 ...

 

* 土佐, 高知 = 高知県 의 地名

* はりまや橋 = 土佐의 高知市 中心에있는 播磨屋橋(하리마야 다리)는 江戶時代 高知 의 豪商인 播磨屋와 역시 富商 柩屋이 江을 서로 마주하고있었는데, 이 두집이 서로 왕래하기위해 놓았다는 다리로, 土佐의 代表的인 民謠 <ヨサコイ節> 가사중 첫번째 句節을 삽입해 놓은것임.

 

하리마야 다리위에서 路店商人으로부터 스님이 恋人에게줄 머리꽂이 사는것을 보았다는 재미있는 풍자를 써 놓은 가사임.

 

* ヨサコイ = よさこい = 뜻은 여러가지 說이있는데, 여기서는 江戶時代 高知城을 築城 할 때 그 工事場에서 石材나 木材를 운반 할때 힘돋우는소리(掛け声)로 불렀다는 說.

또 다른 說은 夜にいらっしゃい (밤에 오세요)라는 古語가 변화된 말이라는 等 全國 各地에 여러가지로 인용되고 있으며, 演歌 歌詞에서도 많이 인용되고 있는 추임새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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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싱 카이텐 이노치오 카케테

*維 新 回 天 命 を 賭けて

*유신회천에 목숨을 걸고

 

치ㅊ테 미노나루 하나모 아

散って 実のなる 華 も ある

죽어서 열매 맺는 꽃도 있어

 

아레테 호에루나 토사노 우미

荒れて 吠えるな 土佐 の 海

험악하게 짖지마라 <토사> 의 바다여

 

아 스 와 *나나츠노 우미 코에테

明 日 は *七 つ の 海 越えて

내일은 *온누리의 바다 넘어서

 

료오마 요아케노

竜 馬 夜明けの

< 료오마 > 새날이 밝으면

 

료오마 요아케노 텡 오 유 쿠

竜 馬 夜明けの 天 を 征 く

<료오마> 새날이 밝으면 天下를 잡는다

 

 

* 維新回天 = 明治維新으로 天下의 형세를 뒤바꿈 한다는 뜻.

明治維新 = 江戶幕府 체제가 붕괴하고, 近代 통일국가와 이를 뒷받침하는 明治 新政權이 형성된 일련의 政治 社會的 변혁.

 

* 七つの海 = 全世界의 바다. (英語의 the seven seas 에서 따온 의미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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坂本 龍馬(さかもと りょうま、天保6年11月15日新暦1836年1月3日 慶応3年11月15日新暦1867年12月10日〉)は、江戸時代末期志士土佐藩郷士

直陰(なおかげ)、のちに直柔(なおなり)。通称は龍馬(竜馬)[注 1]。 他に才谷 梅太郎(さいたに うめたろう、さいだに うめたろう)などの変名がある (手紙と変名の項を参照)。

 

土佐藩郷士の家に生まれ、脱藩したあとは志士として活動し、貿易会社と政治組織を兼ねた亀山社中(のちの海援隊)を結成した。薩長同盟の成立に協力するなど、倒幕および明治維新に関与した。大政奉還成立の1か月後に近江屋事件中岡慎太郎山田藤吉らとともに暗殺された。暗殺者は諸説あるが、京都見廻組という説が有力である。1891年(明治24年)4月8日、正四位追贈される。

 

 

사카모토 료마(일본어: 坂本 龍馬, 덴포 6년 음력 11월 15일 (1836년 1월 3일) ~ 게이오 3년 음력 11월 15일 (1867년 12월 10일))는 도사 번 고시(鄕士) 계급 출신으로, 일본 의 무사 겸 사업가이다. 료마는 탈번하여 지사(志士)로서 활동하면서 무역회사와 정치조직을 겸한 가메야마 조합을 세웠고, 이 회사는 훗날 개칭해 가이엔타이 그리고 삿초 동맹의 알선, 대정봉환의 성립 등을 위해 노력하여 에도 막부 타도 및 메이지 유신 에 영향을 주었다.

 

대정봉환 1개월 후, 교토의 여관 오미야 에서 료마는 암살당했다.

이러한 업적을 남긴 료마는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 》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후, 지명도가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에도 막부 말기의 풍운아로서 일본 국민의 인기를 얻었다. 쇄국과 개화의 갈림길에서 과감한 결단으로 역사를 개척한 료마의 드라마틱한 모습은 오늘날 일본인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사카모도 료마 (坂本龍馬)

(天保6年11月15日-- 慶応3年11月15日)

 

 

<사카모도 료마>는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일본인들 중에 항상 1위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그런 위치이면서도 그의 일생은 너무나 간단하다. 그는 31세 나이에 암살당함으로 짧은 일생을 마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1835년 하급 사무라이의 아들로 <도사 번>(土佐藩)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부터 검술을 익혀 검술가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당시의 부패하고 무능한 권력에 저항하여 새롭게 일본을 건설하는 운동에 투신하였다.

 

 

젊은 나이에 그는 새로운 일본을 건설하려면 서양의 발달한 지식과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스승 가스 이슈의 뜻에 공감하여, 무역의 필요성을 느끼고 해운무역회사를 설립하였다.

 

훗날 이 해운회사가 일본 해군으로 바뀌어 체제를 변혁시키는 데에 획기적인 몫을 감당하게 되었다.

 

1866년 그는 서로 원수같이 지내던 <조슈 번(長州藩)>과 <사츠마 번(薩摩藩)>을 신일본 건설의 큰 명분아래 화해시키고 동맹을 맺어 그 세력을 바탕으로 1866년 무혈혁명으로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성공시켰다.

 

메이지유신이라는  일본 역사에 획기적인 공로를 이룩한 후에, 신정부의 각료를 정하는 자리에서 혁명동지들에게 모두 양보하고 자신은 아무런 자리도 맞지 아니하였다.

 

이런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과 과감한 독파력과 용기 그리고 선견지명이 오늘까지 그를 일본 최고의 인물로 평가받게 하였다.

 

지금 일본인들은 사카모도 료마와 같은 지도자가 등장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런 인물이 필요함은 어찌 일본뿐이겠는가.

 

한국과 중국,

그리고 미국이나 유럽, 전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시대인들 누구나 "료마"를 바람은 같지 않을 수가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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