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s

海燕이, 울어예는 저 바다 하늘~

Jimie 2020. 6. 13. 05:11

이해연 李海燕, (1924년 6월 13일 ~ 2019년 12월 10일)은 황해도 해주 출생으로

일제 강점기인 1941년에 <白蓮紅蓮>으로 데뷔하여 1960년대까지 활동한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白蓮紅蓮>은 가수 李海燕님이 1941년 10월에 콜럼비아레코드에서 전속가수로 데뷔한 곡이다.<浦口의 女子;C.40876/金英椿노래>와 같이 발매된 이 노래는, 李嘉實(본명;趙靈出,타명;趙鳴岩)作詩/古賀政男(코가 마사오) 作編曲의 작품으로, 1940년에 개봉된 映畵 "熱沙の盟誓"主題歌,<紅ぃ睡蓮/李香蘭노래>을 飜案한 작품이다.

 

또 다른 主題歌 <熱沙の盟誓>,역시 李嘉實님이 飜案하여,가수 李圭南님이 1943년 1월에 <熱沙의 盟誓>라는 제목으로 취입하게 된다.


1940년대부터 1960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곡들을 불러 오랜 기간 사랑을 받았던 이해연의 1950년대 말의 모습

 

한국전쟁 이후인 1956 626 전쟁의 비극적인 아픔을 그린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의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불러 대히트를 기록했다. 1984년 언론에서 6.25 노래에 대한 대중들의 선호곡 통계를 내었을 때 ‘단장의 미아리고개’는 1위에 선정될 정도로 이미 민족의 노래가 되어 있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 이해연님, 돌아가시다…향년 95세

 

 

1956년 공전의 히트곡인 ‘단장의 미아리고개’ 를 부른 원로가수 이해연,

 

1960년대 미국으로 이주하여 시애틀에서 거주해온 가수 이해연은

2019년 12월 2일 뇌출혈로 쓰러진 뒤 치료를 받아 오다 12월10일 오전 5시 타계. 향년 95세.

 

장례는 남편 베니 김이 묻힌 라스베이거스 채플에서 19일... <2019.12.17 | 미주한국일보 >

 

 

이해연(李海燕)은 콜럼비아레코드에서 1942년 12월에 이가실 작사 [백련 홍련](일본곡 번안가요)으로 데뷔하였다.

그후 손목인 작곡의 [뗏목 이천리](1942), [소주 뱃사공](1942), 의 히트로 인기 가수가 되었다.

작곡자 손목인은 이해연을 발탁하여 이 두 노래를 시켜 보면서 크게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지금 들어도 청아한 목소리는 가히 보석처럼 빛난다.

 

이해연의 음색과 창법이 유난히 구성지고 감기며 휘어지는 맛이 마치 바람에 사운대는 버들가지처럼 요염한 맛이 있음은 확실하다. 그의 이름 해연(海燕)처럼, 바다제비의 유연한 날갯짓과 지저귐이 그대로 눈과 귀에 들어오는 듯하다.

 

마치 흐느끼는 듯 슬픔을 안으로 안으로 응축하면서도 기어이 조금씩 가슴의 틈을 비집고 터져 나오는 신음은 아리고 아픈 가슴속 설움과 한맺힌 검붉은 피멍을 터뜨려 내는 듯~ 통절하는 곡소리 수준이다.

 

나는 이해연님의 "영춘화(1943)"를 2000년대에 처음 접한후 그녀의 음색에 매료되어 특별히 좋아하게 되었는데... "백마(白馬)는 우네(1965)"도 2020년 6월,지금 처음 접하지만 금세 님의 음색에 깊이 빨려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침 존경하고 사랑하는 님께서 이젠 더 이상 이승에 계시지 않는다는 부음을 접하자니 ...백마(白馬)는 우네...수십차례 듣고 또 들으며 그리운 님을 만나서 백마(白馬)와 함께 고달픈 인생 나그네 설움을 설워 함께 우오니다....나도 모르는 눈물을 하염없이 쏟고 있음이다.

 

남겨주신 고운 목소리~ 감사합니다. 님이시어, 영면하소서~!

 


백마(白馬)는 우네-李海燕1965

月見草作詞 / 全吾承作曲

 

 

백마는 슬피울고 바람도 찬데
아득한 고향길에 황혼이 졌네
오늘밤 어느 곳에 쉴 곳은 어데냐
새우잠 꿈길마다 님이 그리워
백마는 백마는 고달퍼 우네

 

 

*백마가 울고가는 타관길 마다
그리운 님의 노래 불러보았소
찔레꽃 피고지는 내고향 마을은
그리고 또 그려도 길은 멀구나
백마는 백마는 고달퍼 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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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白馬)는 우네-李海燕

 

* 귀한 노래, 수이 접할 수 없음이다. 감상을 위하여 링크를 소개한다.

 

http://blog.daum.net/s4707/6114                                          http://blog.daum.net/s4707/11774

 

cafe.daum.net/kiminsernn/dxMK/4 구름산의 휴식처 cafe.daum.net/dongchun100/I827/3327 동천 산악회

 

이해연 - 백마(白馬)는 우네

(李海燕 1965年 백마(白馬)는 우네 月見草作詞 / 全吾承作曲)

https://www.youtube.com/watch?v=TB6jhnNs1x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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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연(李海燕)은 1924년 6월 13일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콜럼비아레코드의 1942년 12월 에 이가실 작사 [백련 홍련] -일본곡 번안가요로 데뷔하였다

 

그후 손목인 작곡의 [뗏목 이천리](1942), [소주 뱃사공](42), 의 히트로 인기 가수가되었다.

작곡자 손목인은 이해연을 발탁하여 이 두 노래를 시켜 보면서 크게 만족스러워 했다고 한다. 지금 들어도 청아한 목소리는 가히 보석처럼 빛난다.

 

주로 민요조풍의 노래가 호평을 받아 1943년 [ 황해도 노래] [아리랑 풍년] [영춘화]--'야래향'의 일본가수 李香蘭(山口淑子)과 부른곡-- 등이 힛트하였다.

 

해방후 악극단 무대에서 활약하였는데 1956에 6.25동란의 비극적인 아픔을 그린 반야월 작사 이재호 작곡의 [단장의 미아리고개]를 불러 대중의 가슴을 다시 울렸다 1950년대 말에 미국으로 이민갔다.

 

1955년 <황혼의 엘레지>를 부른 가수 백일희 白一姬(본명 이해주 李海珠ㆍ89)는 그의 친자매-여동생이다.

미국가수 '페기 리'를 좋아해서 예명이 백일희가 된 그는 여성 연극배우이자 1960년대까지 트로트 가수로 활동했으며 ‘황혼의 엘레지(1955)’, ‘애수의 블루스(1961)’ 등을 불렀다.

 

이해연님의 남편 故베니 김(김용순) 은 치과 의사 출신으로 1950년대 미8군 무대에서 트럼펫 연주자로 활동하면서 유명세를 떨쳤다.

장남 김경수, 차남 김 파, 삼남 김단, 장녀 김 숙, 차녀 김 선씨 등 3남2녀가 있는데 자녀들은 김트리오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1979년 <연안부두>를 불러 히트시켰다.

 

이해연님은 2019년 12월 10일 오전 5시 페더럴웨이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19일 라스베가스 팜 이스턴 장례식장에서 ...

고인은 1974년도 뉴욕으로 가족이민을 온 뒤 여러 도시를 옮겨 살다 1984년라스베가스에서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이듬해인 1985년 워싱턴주로 이주해 줄곧 페더럴웨이에서 살았다.

 

김 트리오 (Kim Trio); 김파(기타), 김단(드럼), 김선(올갠)

 

海燕이, 울며 나는 저 바다 하늘에~

남겨주신 님의 고운 목소리,

감사합니다.

 

님이시어,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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