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현 국민의힘 의원
대통령은 왜 친하지도 않은 상대 팔을 툭툭 쳤나 [노원명 칼럼]
- 노원명 기자
- 입력 : 2021.05.30 08:10:41 수정 : 2021.05.30 08:11:28
지난 26일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 청와대 오찬 회담 분위기는 이 자리에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자격으로 참석한 김기현 원내대표 브리핑을 통해 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는데 김 원내대표에 따르면 국정 전반에 대해 야당 대표들의 질의가 쏟아졌다. 특히 김 원내대표가 작심하고 성토에 가까운 비판을 퍼부었다고 한다. "주택 문제도 지옥이고 세금 폭탄도 너무 심각하다" "집을 가진 것도 고통이고, 못 가져서 고통이고, 팔 수도 없어 고통인데 애꿎은 국민들이 투기꾼으로 몰려가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원전 해외 수출 협력에 합의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탈원전 하는데, 제대로 추진되기 어렵다" 등등.
면전에서 이처럼 날선 말이 춤춘다면 밥맛이 있었을리 만무하다. 이날 대통령은 여러번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고 하는데 대략 두 대목에서 반응이 눈길을 끈다. 김 원내대표가 내년 대선을 앞두고 선거관련 주요 보직을 중립적 인사로 교체해 달라고 하자 문 대통령은 "대통령이 특정 정당 소속이어서 불공정하게 선거 관리가 된 게 없지 않으냐"고 반문했다. 2018년 울산시장 선거 공작의혹 사건으로 청와대 출신 인사 5명이 재판을 받고 있다. 그 사건 피해 당사자인 김기현의 선거중립 요청에 대통령은 "지금까지 문제없었다"고 대답한 것이다.
대통령이 방미 기간중 받은 환대를 강조하자 김 원내대표는 "바이든이 원래 상대 띄워놓고 뒤로 빼가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그때 대통령이 김 원내대표의 팔을 툭툭 쳤다고 한다. 김 원내대표는 '그만하라'는 뜻으로 해석했고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은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는게 당혹스러워서 그랬다'는 취지로 방송에 나와 해명했다.
대통령은 그러나 나머지 질의에 대해서는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가만히 있거나 "알아보겠다"고 넘어간 정도다. 여기에 문 대통령의 '특이성'이 있다. 지난 4년간 스타일을 보고들은 느낌으로 말하자면 문 대통령은 사전에 준비된 말,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니면 상대가 도발해도 침묵을 택하는 쪽이다. 이날 김기현은 작정하고 퍼부었는데 역시 대통령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스타일은 술자리 상대로는 괜찮다. 한국 사람들이 술 먹다 정치 얘기를 하면 싸움으로 번지기 십상이다. 정견이 다른 두 사람중 한명이 대거리를 하지 않고 기껏 팔만 툭툭친다면 웬만해선 치고받을 일은 없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아닌가. 여야 대표들은 국민을 대표해서 간 사람이다. 문 대통령이 기자들을 상대로 갖는 회견에선 아주 곤란한 질문도, 답변을 놓고 캐묻는 재질문도 없다. 한국에선 여야 대표회담 정도는 돼야 미국식 기자회견에서 나오는 '뜨거운' 질의응답이 가능하다. 그런데 질문은 뜨거운데 응답이 없다. 질문만 있고 응답이 없으면 소통이 안되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중 문 대통령처럼 표현에 인색한 사람이 있었던가 싶다. 가령 야당 대표가 이번처럼 면전에서 마구 퍼부었다고 치자. YS 같았으면 "씰데없는(쓸데없는) 소리"하고 역정을 냈을 것이고 DJ였다면 "워째서 그런 말을 하시오"하고 한판 논쟁을 벌였을 것이다. 노무현은 "이쯤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하고 반격에 나섰을 것이고 이명박은 "내가 집을 지어봐서 아는데···"하고 특유의 경험론으로 돌파했을 것이다. 박근혜라면? '레이저 광선'으로 쏘아보지 않았겠나.
정치는 결국 말로 하는 업이다. 말과 말이 오가는 와중에 생각이 드러나고 밑천도 드러나고 오류도 발견된다. 그 과정에서 방향수정이 이뤄지면 좋고 안되더라도 나름의 방책을 세울수 있다. 적어도 '이 사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은 이렇다'는 건 알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소통 스타일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렵게 한다. 청와대 비서실이 만들었을 국정 통계자료가 아니라 대통령 본인의 생각을 국민들이 들어야 할때가 있는 법이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통계를 대통령을 통해 들을 필요는 없다. 다만 "부동산 문제 하나만큼은 할 말이 없다"고 본인이 얘기해놓고 왜 정책전환은 꾸물대는지, 정책을 바꿀 생각은 있는 것인지는 대통령이 말해야 한다. 미국과 원전수출 협력을 한다면 기왕의 탈원전 기조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도 설명해줘야 한다. 기존 원전은 계속 탈원전하고 소형원전만 하겠다는 것인지, 국내 탈원전과 해외수출을 동시에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대통령 본인 생각을 알고 싶은 것이다. 4년 내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실상은 중국 경도 외교)를 강조해 놓고 일순간 미국과 밀착하는 공동성명서에 서명했다. 지난 4년의 외교정책 실패를 자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째서 '가장 성공적인 회담'으로 자평하는지, 대미·대중 외교가 앞으로 어떻게 바뀌는지 대통령이 힌트라도 줘야 국민이 감을 잡을게 아닌가.
문 대통령에 비판적인 국민들은 정책 이전에 소통에 절망한다. 차라리 항변한다면 그것은 생산적인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대통령은 항변하지 않는다. 무항변은 무슨 의미인가. 잘못을 인정한다는 것인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걸로 보아 그건 아닌 것같다. 비판을 반박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따르기는 싫다는 것이라면 절망적인 고집이다. 그걸 아집이라고 한다. 혹시 '이 정부에 비판적인 세력은 적폐이고 말을 섞으면 손해'라는 의식을 반영한 것이라면 더 절망적이다. 하루키는 이런 경우를 '심연같은 우물을 사이에 두고 얘기한다' 고 표현했지싶다 아마.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매일경제 & 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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