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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 주민들 “고마해라! 대통령도 사람보다 공항이 먼저더라”

Jimie 2021. 3. 6. 12:25

가덕도 주민들 “고마해라! 대통령도 사람보다 공항이 먼저더라”

[아무튼,주말]
선거용 공항 논란
가덕도를 가다

조선일보 권승준 기자

입력 2021.03.06 03:00 | 수정 2021.03.06 03:00

 

이슬비가 내리던 지난 1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 예정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대항전망대. 가덕도 주민이 내건 공항 건설 반대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기자

 

“가덕공항 고마해라! 가덕 주민 신물 난다!”

 

지난 1일, 부산 강서구 가덕도의 대항전망대엔 거센 비바람이 불고 있었다. 전망대 곳곳에 붙은 가덕도 신공항 건설 반대 현수막이 격렬하게 나부꼈다. 길가에 세워둔 차가 흔들릴 정도였다. 곳곳에 안개도 자욱했다. 전망대를 지키던 한 가덕도 주민은 “여기는 비가 조금만 와도 태풍 같은 바람이 불고 안개가 메뚜기 떼처럼 깔리는 동네”라며 “이런 데서 비행기가 뜨고 내릴 수 있겠느냐”고 했다. 대항전망대에선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가덕도 신공항 예정 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공항이 들어서면 통째로 없어질 대항마을이 거기 있었다. 인구 400명 남짓의 작은 어촌 마을 주민 대부분이 여기서 나고 자란 이들이다. 대구와 숭어가 이 대항마을 특산품이다. 대를 이어가며 어부를 하고 있다는 대항마을 주민 김상수씨는 “대항 대구는 조선시대부터 임금님 수랏상에 올리던 대구”라며 “태풍과 싸워가며 대구와 숭어를 잡아 부산 사람들 저녁 반찬 책임지고 번 돈으로 자식들 대학까지 보냈다”고 말했다. 부산 시민들은 신공항을 반기지만, 대항마을 주민들은 평생 일궈온 삶의 터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지난 한 달간 문재인 대통령은 물론, 이낙연 민주당 대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등 정치인들이 앞다퉈 가덕도를 찾았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추문으로 사퇴한 뒤 오는 4월 치러지는 보궐선거에서 가덕도 신공항 문제가 최대 이슈가 된 탓이다. 선거 승리에 혈안이 된 여야가 합심해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까지 통과시켰다. 10여년 넘게 말만 무성하던 공항이 성큼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은 물론, 가덕도에 온 여야 정치인 중 누구도 대항전망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대항마을은 찾지 않았다. 공항이 들어서면 살아온 마을은 물론 평생 직업까지 그만둬야 할 사람들에게 위로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대항마을 주민 황영우씨는 “한 달 동안 정치인 코빼기도 못 봤다”며 “그 사람들한테야 공항이 먼저지 여기 사람이 먼저겠냐”고 말했다.

 

가덕도 공항 부지로 포함된 대항마을 전경./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민주당 행사 방해할까 양동작전?

 

2일 오후 2시, 대항마을 북쪽에 있는 천성항(港)에서 민주당은 부산시장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대회를 열었다. 천성항은 공항 건설 부지에 포함되진 않았지만 배후지로 개발될 거란 기대로 땅값이 들썩이는 곳이다.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는 물론, 이낙연 대표까지 경선대회 현장을 찾았다. 이 대표는 “부산의 역사는 신공항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며 “8년 안에 공항을 완공시킬 것”이라고 했다. 김영춘·변성완·박인영 등 경선에 나선 후보들도 입을 모아 신공항 이야기만 했다.

 

지난 2일 부산 가덕도 천성항의 한 카페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자 선출 경선대회 현장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방문한 모습. 이 대표와 시장 후보자들은 대회 내내 신공항 이야기를 강조했지만, 정작 공항 건설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주민들을 방문하진 않았다./ 김동환 기자

 

같은 시각 대항마을 어촌계 사무실을 민주당 부산시당 소속 고위 간부 2명이 방문했다. 당 대표까지 참석하는 시당 차원의 중요 행사가 치러지고 있을 때 고위 간부 2명이 이곳을 찾은 일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대항마을 주민들의 공항 건설 반대 여론을 청취한다는 명분이었다. 대항마을 어촌계·청년회 등 주민 대표들이 민주당 측에 끈질기게 면담을 요청해 이뤄진 것이다. 한 주민대표는 “지난달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가 대항전망대에 왔을 때 우리가 시위하겠다고 하니까 민주당 사람들이 ‘시위를 자제해주면 면담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해서 만들어진 자리”라고 했다.

 

주민 대표들은 이 간부들에게 “우리 주민들은 공항 건설에 결사 반대한다” “공항 건설을 추진하는 민주당 정치인들 중 책임 있는 사람 누구도 우리 마을에 찾아온 적이 없다”, “몇십 년간 살아온 곳을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됐는데 보상 몇 푼 쥐여 주면 끝이냐”는 등 불만을 쏟아냈다. 민주당 간부들은 “여러분 이야기를 충분히 전달하겠다” 정도의 대답 외엔 별다른 말 없이 1시간 정도 있다가 돌아갔다. 비슷한 시각 민주당 경선대회가 끝났지만 이 대표와 시장 후보들 모두 이번에도 대항마을을 찾지 않았다. 뒤늦게 경선대회가 열렸다는 사실을 안 주민 이모씨는 “우리가 경선대회장 찾아가서 ‘깽판’ 놓을까 봐 미리 양동작전 쓴 것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공항 건설에 반대하는 대항마을 주민들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대항마을과 함께 공항 부지에 포함된 외양포항(港)에 사는 한 주민은 “찍소리라도 내야 보상 한 푼 더 받을 수 있을 거란 속셈이니 저러는 것 아니냐”며 “어민 몇 명이서 온 나라와 부산 시민들이 바라는 수십조짜리 사업을 무슨 수로 막느냐”고 했다. 기자가 만난 가덕도 주민 중에는 “보상 문제만 해결되면 공항이야 무슨 상관이냐”는 식의 말을 하는 이도 여럿 있었다.

 

가덕도 수달을 위한 투쟁은 없다?

 

정치인만 무관심한 건 아니다. 이런 유의 대형 개발 사업이 시작되면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에 나서는 각종 시민단체들도 이번에는 잠잠한 편이다. 보수 정권 때 벌어진 각종 건설 사업마다 반대에 앞장서던 환경단체들이 대표적이다. 가덕도 공항 예정 부지는 현행 환경법상으로는 개발이 불가능한 곳이다. 생태자연도 1등급 지역 6곳, 녹지자연도 8등급 이상 지역 3곳이 있다. 특히 천연기념물 179호인 철새도래지가 포함돼 있고, 곰솔군락, 동백군락 등 자연적 가치가 높은 지역이 대부분이다. 가덕도 일대는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 330호 수달이 출몰하는 서식지이기도 하다. 대구와 숭어, 쥐치 등 어족 자원도 풍부하다. 공항이 들어서면 이 모든 자연 자원이 파괴될 수밖에 없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도 환경영향평가 절차는 면제하지 않았다. 그만큼 환경적 가치를 무시할 수 없는 곳이다.

 

가덕도 곳곳에 공항 건설 반대 현수막이 붙어있었지만, 환경단체에서 내건 현수막은 보이지 않았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하지만 2일 현재까지 대항마을 주민들로 꾸려진 ‘가덕도 신공항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측에 연대 투쟁을 제의해온 단체는 한 곳도 없다고 한다. 실제로 기자가 가덕도 전체를 차로 둘러봤지만 환경단체에서 만든 공항 건설 반대 현수막이나 대자보는 발견하지 못했다. 지난달 25일 환경운동연합 등 부산·경남지역 환경단체 회원들이 부산시청 광장에서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에 반대하는 집회를 연 것이 전부였다.

 

비대위원장을 맡은 황영우씨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아직 ‘도와주겠다’고 제안해 온 곳은 없다”며 “부산 강서 지역은 철새도래지나 늪지 같은 환경 자원이 많아서 강성 환경 단체가 많은데 우리에겐 왜 이리 무관심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 이모씨는 “천성산에 터널 지을 땐 도롱뇽 하나로 그 난리가 났고, 제주도엔 안보에 필요한 해군 기지 짓는다는데도 구럼비 바위 지킨다며 구름떼처럼 몰려갔던 사람들이 이번엔 다 어디 갔느냐”고 말했다.

 

전국철거민연합회 등 재개발 사업 현장에 개입해 원주민들의 생존권 등을 명분으로 투쟁을 벌이는 소위 ‘전문시위꾼’들도 조용하다. 부산 강서경찰서 관계자는 “현재로선 시위 현장에 자주 등장한다는 외부 단체들이 가덕도 주민들과 접촉한다거나 뭔가 행동 준비를 한다는 동향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가덕도 토지거래 7배 폭증

 

기자가 만난 대항마을 주민 몇몇은 “나라에서 저렇게 밀어붙이는데 우리가 뭘 할 수 있겠느냐”는 말도 자주했다. 비대위 역시 꾸려졌지만 아직 구체적인 투쟁 계획은 마련하지도 못한 상태다. 같은 가덕도라도 공항 부지에 포함되지 않은 천성항 등 다른 지역 주민들은 비대위 참여를 약속했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고 있다.

 

속도가 느린 공항 반대 투쟁과 반대로 발 빠르게 잇속을 챙기는 외지인들도 있다. 대항마을로 들어서는 길목 곳곳엔 공사판이 벌어져 있었다. 대부분 주택 공사였다. 여기저기 자재가 쌓여 있고 굴착기와 트럭, 크레인도 여러 대 서 있었다. 하지만 완성된 건물은 하나도 없었다. 공사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곳이란 뜻이다. 작년 말부터 가덕도 신공항 논의가 불붙으면서 공사판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게 주민들 전언이다.

 

공항 건설에 탄력이 붙으면서 가덕도 곳곳에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 가덕도 원주민들은 "보상을 노리고 들어온 외부인들"이라고 말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곧 사라질 마을인데 가구 수가 늘어나는 ‘기이한’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항마을 통장 허섭씨는 “1년 전만 해도 마을 가구 수가 230가구 정도였는데 지금은 350가구까지 늘었다”고 했다. 대부분 공항 부지가 수용되고 이주 계획이 나오면 마을 주민들에게 주어질 보상을 기대하고 들어왔을 가능성이 큰 사람들이다. 전입 신고는 했지만 얼굴도 못 본 이들도 있다고 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2월 두 달간 가덕도 천성동·대항동 일대 토지 매매 건수는 무려 44건이었다. 작년 1~2월에 거래가 6건에 불과했던 것에 비하면 7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거래 가격도 평당 400만~500만원 수준으로 2~3배가량 뛰었다. 부산시는 뒤늦게 지난달 15일 가덕도 공항부지 일대를 5년간 토지거래허가지역으로 지정했다. 가덕도 주민 조모씨는 “집 하나 대충 지어 놓고 소파랑 가재도구 몇 개만 갖다 놓아도 여기 산 것으로 쳐주고 보상금이 나간다”며 “결국엔 다 ‘딱지(토지보상으로 받는 이주권을 뜻하는 은어)’ 받아 한몫 챙기려는 속셈일 것”이라고 말했다.

 

가덕도 곳곳에 펼쳐진 공사판 모습.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가덕도 곳곳에 펼쳐진 공사판 모습.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가덕도 곳곳에 펼쳐진 공사판 모습.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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