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汲水歸來忽回首 靑山無數白雲中

Jimie 2021. 2. 11. 17:39

2021년 새해를 맞는

섣달 그믐날 밤이다. 

 

속세를 떠도는 미련이 세상 살다 어이타, 이역땅 이방인

절해고도에서 조차 오로지 혼자서 설을 맞고 보낸다.

 

절대고독이란 이런 것인가 알듯~ 모를듯~

황천길도 어차피는 혼자일 텐데...

스스로를 달래어 보기는 한다만...

 

준선자에게(俊禪子)-

 

비환일침몽(悲歡一枕夢) 슬픔과 기쁨은 한 베개 꿈이요

취산십년정(聚散十年情) 만남과 헤어짐은 십 년의 정일레

무언각회수(無言却回首) 말없이 고개 돌리니

산정백운생(山頂白雲生) 산꼭대기엔 흰구름만 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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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허휴정((淸虛休靜 1520~1604) 묘향산에 오래 주석하여 서산대사(西山大師)라 하였다.

아명 운학(雲鶴) .

1520년(중종 15) 평안도 안주(安州)에서 태어난 최여신(崔汝信)은 9세에 어머니를, 10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양아버지 밑에서 자랐는데...

 

서울 성균관에 들어가 공부하던 중 1534년 진사 시험에 떨어진 뒤 지리산에 들어가 숭인(崇仁)을 만나 머리를 깎았고, 21세에 부용영관(芙蓉靈觀)에게 인가를 받고 남원 어느 마을을 지나다 낮닭우는 소리를 듣고 대오(大悟)하였다.

 

 

 

성균관에서 유학을 공부하던 18살의 유학도 최여신이 불법을 접하고, 문자를 떠난 오묘한 경계를 깨달아

승려 휴정으로 거듭나면서 읊었다는 오도송(悟道頌)이다.

 

汲水歸來忽回首 (급수귀래홀회수) 물 길어 오는 길에 문득 머리 돌리니

靑山無數白雲中 (청산무수백운중) 수많은 청산이 흰구름 속에 솟았네”

 

33세 되던 해(1552년, 명종 7년)에 선과(禪科)에 급제하여 대선(大選)이 되었고, 3년 만에 선교양종판사(禪敎兩宗判事)가 되었으나 2년 후에 그 직책을 사양하고 금강산으로 들어갔다. 임진란(壬辰亂)이 일어나자 전국 사찰에 서신을 보내어 73세의 나이로 승병(僧兵)을 일으켰고, 서울 환복(還復) 후 제자 사명(四溟)과 영규(靈圭)에게 승군을 맡기고 묘향산으로 들어갔으며,

 

산세가 기묘하고 향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산- 묘향산(妙香山)

 

 

선조 37년(甲辰, 1604) 1월 23일, 휴정스님은 묘향산 원적암(圓寂庵)에서 조용히 열반을 준비하였다.

이날 따라 눈은 하염없이 내렸다. 휴정은 눈발 속에 견여를 타고 가까운 산내 암자들을 두루 찾아 다니며

부처님께 절한 뒤 방장실로 돌아왔다. 목욕재계하고 가사장삼을 수한 뒤 부처님전에 향을 사른 다음 스님은

법상에 올라 마지막 설법을 했다.

 

설법을 마친후 붓을 가져오게 하여 자신의 모습을 그린 영정(影幀)에 시 한 수를 쓴다.

 

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전거시아) 80년 전에는 저것이 나 이더니

八十年後我是渠 (팔십년후아시거) 80년 뒤에는 내가 저것이 고녀

 

 

유정과 처영에게 보내는 글을 남기고 가부좌를 한 채 입적하니 누려온 나이 85세, 법랍 나이 67세였다.

기이한 향내가 방 안에 가득하여 사라지지 않더니 삼칠일(21일) 뒤에 비로소 그쳤다.

 

제자 원준(圓俊), 인영(印英)등이 다비한 뒤 영골 한쪽과 사리 2과를 습득하여 보현사와 안심사에 봉안했다. 또 정골 한 조각은 제자 유정(惟政), 자휴(自休) 등이 봉산(蓬山:蓬萊山)으로 받들고 가 그에서 사리 몇 과를 수습하여 유점사 북편언덕에 봉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