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고운봉(高雲峰, 1920년 2월 9일 ~ 2001년 8월 1일)님이 1941년에 불러 공전의 인기를 기록한 / 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의 노래 ' 선창 (船艙)' 첫소절이다. * 이봉룡 작곡...
선창 - 고운봉 / 1941 (가사)
https://www.youtube.com/watch?v=MyyPzD9z6-U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엔
이슬 맺힌 백일홍
그대와 둘이서
꽃씨를 심던 그 날도
지금은 어데로 갔나
찬비만 내린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울어 본다고 다시오랴
사나이의 첫순정
그대와 둘이서
희망에 울던 항구를
웃으며 돌아가련다
물새야 울어라
(3절)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을려고 왔던가
추억이나마 건질손가
선창아래 푸른 물
그대와 둘이서
이별에 울던 그 날도
지금은 어데로 갔나
파도만 스친다
고운봉님이 사망하기 1년 전인 2000년 6월에 그의 고향 예산 덕산온천에 선창 노래비가 세워졌다.
노래비 제막식에서 〈선창〉을 부르는 등 말년까지도 활동을 계속했다.
고운봉高雲峰고명득, 高明得
본명은 고명득(高明得). 일제 말기에 발표한〈선창〉을 대표곡으로 하는 가수로, 김정구·현인·남인수 등과 더불어 서민의 애환을 달래온 대중가수 1세대이다.
1937년 예산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당시 유명 가수들이 소속해 있던 태평레코드 전속가수로 채용되어 악극단에서 활동하였다.
1939년 일본에서 〈국경의 부두〉로 데뷔하였고, 1941년 비 내리는 쓸쓸한 부두를 배경으로 이별의 정한을 구성진 멜로디에 담은 〈선창〉으로 이름을 알렸다.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친일적 성향의 노래도 불렀으며, 광복 후 일본에 건너가 재즈와 록, 칼립소 등 미국 대중음악을 공부하다 1958년 귀국하여 〈명동블루스〉를 발표하였다.
남자 가수임에도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애잔한 느낌을 주는 창법을 구사하여 '순정가수'로 불렸다. 짙은 우수를 바탕에 깔고 있으면서도 깔끔하고 점잖은 창법으로 깊은 호소력을 발휘한다는 평을 받았다. 〈남강의 추억〉·〈홍등야곡〉·〈명동블루스〉·〈백마야 가자〉·〈인생은 육십부터〉 등 200여 곡을 불렀고, 많은 노래가 큰 인기를 얻었다. 밝은 인상에 유머 감각이 뛰어나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했으며 말년까지 악극 〈그때 그 쇼를 아십니까〉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대중문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8년 옥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00년 6월에 고향인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온천지구 안에 〈선창〉 노래비가 세워졌다. 매년 4월, 그의 업적을 재조명하고 장래성 있는 신인가수와 전통가요 발전을 위해 〈고운봉 가요제〉가 개최되고 있다.
백마야 가자 1963 고운봉
https://www.youtube.com/watch?v=pRgojCg-5gY
- 고운봉이 1920년생이고, 현인은 1919년 12월생으로 고운봉과 3달 밖에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친구로 지낸 듯 하다. 예전에 가수 현인이 가요무대에서 말하기로 고운봉이 길에 지나가면 사람들이 "선창 지나간다."라고 말했다.
- 후배 가수 조영남은 고운봉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웃음을 참기 힘들어서 곤란했단다. 가수 장례식에서는 고인의 대표곡을 조문객들이 함께 부르는 관례가 있어서 조문객들이 '선창'을 불렀다. 곡 자체는 헤어진 옛 연인과의 추억을 회상하는 내용이라서 장례식 때 불러도 무난한 노래이지만, 하필 첫 소절의 가사가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엔~"였다.
- 거기에다 조문객 중 블루벨스의 박일호가 헌화하는 걸 보고 코미디언 남보원이 "너 죽으면 장례식 때 (블루벨스의 대표곡인)잔치 잔치 벌렸네 불러줄께."라고 하는 바람에 조문객들이 폭소를 터뜨렸다고...
- 그리고 조영남은 이 일에 대해 남의 일이 아니라는 심각성을 깨달았는데, 조영남의 대표곡은 화개장터이기 때문이다.
조영남은 이때를 대비해 자신의 노래 모란동백을 불러주길 바란다고 가요무대에서 언급했다.
모란 동백
작사/작곡: 이제하 (2001)
https://www.youtube.com/watch?v=dQQ49IjrdKY
그리움이란 옛시절 추억의 언덕에 언제나 나타나는 신기루 같은 것.
울려고 내가 왔던가 - 박재란
백 호 작사 / 박춘석 작곡
(1960년 映畵 '울려고 내가 왔던가' 主題歌)
https://www.youtube.com/watch?v=TxUoxPsziKQ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이슬비 오는 그 언덕에 홀로 핀 백일홍
지나간 옛날 그려보니 사랑도 허무한 꿈이런가
지금은 어데로 갔나 행복의 파랑새
울려고 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꽃구름 한 송이
바람에 불려 정처 없이 산 넘고 물도 건너야 하나
지금은 어데로 갔나 행복의 파랑새
박재란(朴載蘭, 본명: 이영숙 , 본명 한자: 李英淑, 1940년 12월 16일 ~ )은 대한민국 여성 가수 겸 작사가이며 영화배우, 뮤지컬배우이다.
1938년 12월 16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천안여자중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1957년에 KBS 4기 전속가수에 합격하며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이후 작곡가 박태준에게 박재란이라는 예명을 받으며 가수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녀가 발표한 곡들 중 산 너머 남촌에는, 코스모스 사랑,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 등의 노래가 히트를 치면서 대중들에게 많은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현재는 원로가수격으로 가요무대 등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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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성공하고 한참 후 거의 20년 만인 1960년 김화랑감독이 도금봉, 김진규,엄앵란, 최봉,최남현 등 출연진과 "울려고 내가 왔던가"라는 멜러영화를 감독해 명보극장에서 개봉하여 5만여 관객이 들어 흥행에도 성공했다.
줄거리는 이북에서 월남하다 공산군에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도 헤어진 채 고아로 자란 태현(김진규)은 자신을 형처럼 따르는 윤식(황해)과 함께 어둠의 세계를 전전하다 손을 씻는다.
기생인 윤식의 누나 성실(도금봉)의 도움을 받으며 생활하던 태현은 성실과 사랑에 빠진다.
성실은 태현의 장래를 위해 자신을 사모하는 윤사장에게 태현을 부탁하고 윤사장은 태현을 아들삼아 자신의 집에서 살게 한다. 성실은 태현의 장래를 위해 감정을 속이고 태현에게 헤어지자고 한다. 성실이 윤사장과 만나는 것을 본 태현은 실의에 빠져 자신을 사랑하는 윤사장의 딸 옥경(엄앵란)과 결혼한다.
태현과 헤어지고 방황하던 성실은 우연히 태현의 어머니(황정순)를 알게 되어 그녀를 결혼식장으로 인도하고, 모자는 감격적인 상봉을 한다는 내용의 신파조의 멜로 로맨스물이었다
영화음악은 박춘석이 맡았고 영화 중에 고운봉의 선창이 삽입되었고
박춘석 작곡 주제가 "울려고 내가 왔던가"는 박재란이 불렀는데 영화와 "선창"의 인기를 따르지는못했다.
1960 제작
감독김화랑
출연김진규, 도금봉, 엄앵란, 황정순
북한에서 월남하던 중 공산군에게 아버지를 살해당하고, 어머니와도 헤어진 채 남한에서 고아로 자란 태현(김진규)은 자신을 친형처럼 따르는 윤식(황해)과 뒷골목 생활을 하다 이에 염증을 느끼고 일을 청산한다. 어린 시절부터 외롭게 자란 태현은 기생인 윤식의 누나 성실(도금봉)의 따뜻한 마음씨에 반해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성실은 태현의 장래를 위해 그와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윤사장(최남현)에게 태현을 소개한다. 윤사장은 태현을 아들삼아 경영 수업을 시킨다. 성실과의 이별로 괴로워하던 태현에게 윤사장의 딸 옥경(엄앵란)이 구애하고 태현도 그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그러던 중 성실은 우연히 태현의 어머니(황정순)를 만나고, 그녀를 태현과 옥경의 결혼식장에 모시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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