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경성]‘사랑의 전령사’ 메신저를 아십니까
소설가 이태준이 1940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청춘무성’은 여자고보 교목으로 일하는 치원과 여학생 은심, 득주와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장편소설이다. 은심 친구인 득주는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명치정(明治町·지금의 명동 일대)의 빠 ‘마이 디어’에서 여급으로 일한다. 득주에게 눈독을 들인 한량 윤천달이 환심을 사기 위해 돈 300원과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한다.
‘득주가 집에 와서 다시 한잠을 자고 목욕을 하고 오니까 ‘멧센쟈’가 막 들어와 섰다. ‘뭐냐?’ 명함과 무슨 물건 싼 것을 내민다. 윤천달에게서였다. ‘도장 받아오랬어요.’ 득주는 ‘십만원꿈’이 꽃피듯 전개된다. 손이 후둘후둘 떨린다. 방으로 뛰어들어가 도장을 찍어주고 ‘미스꼬시’ 종이에 싸인 것을 허둥허둥 끌른다. 할머니가 기웃거리는 것을 들어가시라고 소리쳐버린다. 이중 봉투가 나온다. 반지갑이 하나 나온다. 우선 봉투부터 뜯는다. 백원짜리 석장, 삼백원, 득주는 봉투속을 들여다본다. 다른 아무 것도 없이 그뿐이다. 한참 피가 머리로 쏠려 현기를 느끼며 꼼짝 못하고 앉았다가 반지갑을 집어 열어본다. 금강석, 그리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다. 오마쓰의 육백원짜리라는 것보다 약간 클 듯하다.’(’청춘무성’110, 조선일보 1940년7월20일)
이태준이 1940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장편소설 '청춘무성'. 여주인공 득주에게 300원이 든 봉투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메신저'를 통해 전달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메신저는 연인간의 편지나 물건을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맡았다. 조선일보 1940년 7월20일.◇유명 다방,식당에 상주
소설 속 ‘멧센쟈’는 ‘메신저’다. ‘사랑의 메신저’같은 은유가 아니라 100년 전의 신종 직업이다. 연인들의 편지나 약속 메시지를 전달하는가 하면 돈이나 물건도 배달했다. 종로와 본정, 명치정 등 도심에서 활동했는데, 유명한 다방이나 식당에는 메신저가 거의 상주했다.
영화감독 겸 평론가 서광제가 쓴 수필에도 메신저가 등장한다. ‘K군은 내가 돈 이십원 있다는 바람에 별안간에 기운이 나서 전화실로 가서 용달사에 전화를 걸고 멧쎈저-뽀이를 불렀다. 한 10분 후에 멧쎈저-뽀이가 왔다. K군은 편지 한장을 써주며 ××정(町)××번지(番地)에 갔다주고 회답을 맡아오라고 하였다. 그 편지가 무엇이냐 물었더니 자기와 요사이 좋아하는 여성이 있는데 군자금이 없어서 사오일째 못만났다고 하며 얼굴은 절세미인이며 보통때 같으면 위험해서 나에게 소개를 아니하여 주려고 하였는데 연애 군자금까지 내주는 씸파에게 인사쯤이야 안시켜줄수있는가 하고 의기충천하야 비둘기같이 날아들어올 자기의 애인을 기다리고 있었다.’(‘봄의 탄식’3, 조선일보 1937년4월2일)
다방에서 용달사에 전화를 걸어 메신저를 부르고 회답까지 받아오게 하는 식으로 운영한 모양이다.
◇동업조합 결성하기도
1930년대 후반 등장한 메신저는 급성장했다. ‘대경성도시대관’에는 1937년 자전거를 앞에 둔 채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단체로 찍은 사진이 실려있다. 앵정정(櫻井町) 1정목 57번지에 있는 이 메신저사는 종업원만 15명으로 사업이 꽤 잘 됐던 모양이다.
1939년 경성에선 메신저들이 동업 조합을 결성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종래로 이 직업은 간편하고 신속하여 여러가지로 좋은 점이 많기는 하면서도 허가제가 아직도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간판만 내어걸고 주문이나 받아서 돈벌이를 하려드는 엉터리도 적잖이 생겨나게 되어 폐단이 적지 않았었는데, 이번에 이 점을 걱정한 부내 유력 용달사 70명이 발기하여 가지고 동업 조합을 조직하여 엉터리 업자를 일소하기로 결의하고 그 창립총회를 작15일 오후1시부터 부내 황금정 아서원에서 열고 ….’(‘거리의 사절 멧센저, 동업조합을 결성’, 조선일보 1939년6월17일)
기사에 따르면, 경성엔 200명의 메신저가 영업중이었다.
◇'연애편지의 전서구’
‘작금 장안 명물의 하나는 무슨 용달사 무슨 ‘메센쟈’하는 장안 ‘심부름꾼’이라할까 최신 서사(書使)라 할까 하는 용달사라는 새로운 명물이 두각을 나타나 번영하는 것일것이다.’ ‘장안의 명물’로 손꼽힌 메신저의 주업(主業)이 연애편지 전달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종로 네거리 용달사의 한달 통계를 집계했더니, 전체 307건 중 남녀사교문(연애편지)배달이 190건으로 단연 1위였고 물품 배달이 54건으로 2위를 차지했다는 것이다. (‘염서의 전서구’, 동아일보 1939년11월12일)
◇돈 떼먹고 달아나는 메신저
메신저 중엔 부탁받은 물건이나 돈을 떼먹고 달아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경성역전 멧센저 김원준(18)은 19일 오후3시경 경성역에 내린 재령군 재령면 유화리 장인섭이가 성북정 175~2호 그 아우 장봉섭에게로 보내는 이불, 사과, 엿 등 100여원어치를 맡아 가지고, 이불은 잡히고 엿과 사과는 그대로 집어 먹었다가 21일 오전 용산서에 붙들렸다.’(‘엿단지 들이킨 멧센저 검거’, 조선일보 1940년2월21일)
메신저가 부탁받은 물건이나 돈을 횡령했다는 기사가 간간이 보도됐다. 그런가하면 메신저를 이용한 신종 사기도 발생했다. ‘4일 본정서에서는 신내천현 출생 대총가성(大塚嘉誠, 26)을 붙잡아다가 취조중인데 그는 지난달 26일 경춘철도회사의 암영(岩永)이란 사람의 이름을 써서 용달사 편으로 암영의 친구인 장곡천정 판본관일(坂本寬一)에게 돈 30원을 보내달라고 하여 이것을 사취하고 다음날에는 뱃심좋게 암영의 인장을 위조하여 찍은 다음 같은 방법으로 60원을 사취한 뒤 그간 명치정 모 여관에 잠복하여 있다가 본정서원에게 체포된 것이다.’(‘용달사 악용한 사기한 피체’, 조선일보 1939년7월5일)
◇메신저 대항 자전거 경주대회
메신저는 ‘대경성도시대관’에서 보듯, 자전거로 편지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자전거 경주 대회에 백화점 배달부와 함께 메신저 대항 경주도 있었다. 중앙신문사가 1940년 4월27일, 28일 이틀에 걸쳐 경성운동장에서 주최하는 전조선남녀자전거경기대회는 참가선수 120명 중 백화상(百貨商) 대항, 메신저 대항 등의 종목이 있었다고 보도했다.(‘남녀자전차대회 明27일부터 거행’,조선일보 1940년4월27일) 이 대회엔 엄복동, 조수만 등 노장선수까지 출전한다고 소개됐다.
연서(戀書)나 쪽지를 날라주던 ‘메신저’는 사라진지 오래다. 카톡이나 문자, 인스타그램처럼 빛보다 빠른 속도로 연결된 세상에서 이 무슨 고릿적 얘기인가 싶기도 하다. 연인에게 쪽지를 보내놓고 답신을 기다리며 애태우는 풍경은 이제 옛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세상이다.
◇참고자료
박현수, 경성 맛집 산책, 한겨레출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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