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울부짖는 두 여인에 "괜찮나"…박정희, 혁명가답게 떠났다

Jimie 2024. 5. 17. 01:48

울부짖는 두 여인에 "괜찮나"…박정희, 혁명가답게 떠났다

중앙일보

입력 2024.03.01 02:47

업데이트 2024.03.01 02:52

1966년 6월 8일 대전 유성만년장호텔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김종필 공화당의장이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조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더중플의 인기 시리즈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笑而不答)’이 90회를 넘기며 최종회까지 한 달 여를 앞두고 있습니다.

 

어느 시기에는 동시대인들이 체험하고 공감했던 일들이 어느 순간엔가 ‘역사’가 됩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기억이 희미해진 뒤 ‘역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담론은 어느새 전문가의 영역처럼 돼버려 생생한 체험의 색채를 잃고 쓰고 읽는 이에 따라 획일화되기도 하고 서로 전혀 다른 ‘역사’를 기억하기도 하지요. ‘획일화’도 뻔해지면 누군가 ‘창작자’가 등장해 역사를 극화합니다. ‘이야기’로서의 재미는 더해가지만, 실제 그 시대의 ‘팩트’나 동시대인이 일정하게 가졌던 공통 체험과는 점점 멀어져 갑니다.

 

그런 순간에 다시 중요해지는 것이 그 시대를 몸으로 살아낸 자의 ‘증언’입니다. 물론 증언은 주관적이고 일방적이기까지 합니다. 더구나 피해자가 아닌 권력자의 ‘증언’은 변명과 왜곡의 의도를 의심해봐야 하는 것도 상식입니다. 하지만 역사가 ‘끊임없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본다면, 그 역사의 ‘법정’에서 모든 증언은 발언권을 갖습니다. 역사의 법정이 당사자의 증언은 물론 동시대인들이 경험한 팩트마저 기각한다면 그 판결은 빈곤합니다.

 

한 번은 무력(5·16)으로 또 한번은 정치력(DJP 연대)으로, 두 번의 정권교체를 이뤄내고 결과적으로 소위 ‘좌우’ 각각의 정권에서 국무총리를 역임한 김종필(1926~2018)의 증언은 한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현대사에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더구나 그는 유력 정치인이었지만 생전에 따로 ‘자서전/회고록’을 내지 않았고, 구순의 나이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중앙일보에 자신의 증언을 남기고(2015년) 3년 뒤 세상을 떴습니다. 그의 입으로만 그 시대를 옮길 순 없지만, 그의 증언을 외면하고는 역사를 쓸 수가 없습니다.

 

최종회를 앞두고 있는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의 하이라이트를 그 자신의 육성 증언으로 소개합니다. 이번엔 1979년 10·26을 전후한 ‘박정희, 그날’입니다. 김종필은 박정희 시대의 굴곡 많았던 ‘2인자’로서, 개인적으론 그의 조카사위로서 ‘박정희’에 대한 가장 근거리 경험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170)

 

“박정희 경호 보니, 이거 참…”

# 차지철의 ‘경복궁 전차 시위’
1978년에 접어들면서 차지철 실장이 이끄는 청와대 경호실은 정상적인 궤도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대통령을 지키겠다며 상식 밖의 일을 벌였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한밤중의 전차 시위였다. 경복궁에 주둔하던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에 전차 1개 중대를 갖다 놓고 밤마다 출동시킨 것이었다.

1966년 11월 박정희 대통령이 태릉군골프장에서 티샷을 하는 모습. 박 대통령은 욕심을 내지 않고 정확하게 공을 날리는 이른바 ‘또박이 골퍼’로 보기 플레이어였다. 그린에 올라가선 퍼팅을 두 번 이상 하지 않았다 중앙포토

 

#골프장 ‘50m 경호’ 
나와 가깝게 지낸 일본 실업인 구보 마사오(久保正雄)가 79년 어느 날 할 얘기가 있다며 집으로 찾아왔다. 그는 전날 경기도 고양시 뉴코리아 골프장에 갔다가 우연히 박 대통령이 골프를 치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다. “참, 이거 안 할 말을 내가 하는데…. 경호하는 걸 보니 박정희 대통령도 끝이 보입니다.” 그의 말인즉 골프장 가는 길 양편에 50m 간격으로 경호원들이 배치돼 있고, 골프장 안에도 경호원들이 곳곳에 엎드려서 고개만 내놓고 있더라는 것이다.

박정희에 “야, 너두 죽어봐”

김종필은 생전에 10·26에 대해 “김재규는 살인망동 한 달여 뒤 재판정에서 자기가 무슨 한국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처음부터 계획적인 혁명을 일으켰다고 주장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부추기는 바람에 스스로 속아 꾸민 얘기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중앙포토

 

#김재규, 극단적인 발작 상태 
“야, 너두 죽어봐.” 대통령에게 몹쓸 욕설도 뱉었다. 그리고 또 “탕” 소리. 김재규는 극단적인 발작 상태였다. 두 발의 총탄이 날아간 뒤 권총은 작동하지 않았다. (…) 그의 말대로 미리 준비된 거사였다면 자기 권총에 탄환이 몇 발 들어 있는지, 총기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일을 감행한 것이니 말이 안 된다.

#백운학의 불길한 예언 
불현듯 18년간 마음 깊이 간직하면서 누구한테도 꺼내지 못한 한마디가 떠올랐다. 1961년 5·16 혁명 뒤 서울 다동 한 음식점에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을 모시고 백운학을 만났을 때 얘기다. (…) 백운학은 식사를 마치고 마루 끝에 앉아 신발끈을 매던 내게 슬그머니 다가와 이랬다. “차마 본인한테 직접 말씀드릴 수 없었는데…. 각하께서 마지막은 퍽 험하게 돌아가실 명운입니다.”

 

총탄 맞고도 “자네들 괜찮나”

1961년 7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 갓 오른 44세의 박정희 육군 소장. 박소장은 5·16 거사 직후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을 최고회의 의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부의장에 내려앉았으나 7월 3일 장 총장이 반혁명사건으로 체포, 거세되자 의장직을 맡았다. 사진 국가기록포털

 

#박정희, 18년 5개월 ‘혁명 일생’
가슴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혈을 좌우의 두 젊은 여인이 손으로 막았다. 박 대통령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는 자신을 위해 울부짖는 여인들의 안전을 물었다. 18년5개월 박정희의 혁명 일생은 ‘장도영이 날 쐈어’라는 배신의 분노로 시작해 ‘자네들은 괜찮나’는 안부의 언어로 마침표를 찍었다.

#자신의 성취에 자기가 희생되는 ‘역설’
박 대통령은 자기가 이룬 성취에 의해 희생됐다. 혁명가의 비감한 역설이자 허망함이다. 70년대 들어 산업화의 결실로 두터워진 중산층이 자유와 민주의 열망을 갖게 됐다. 이들이 부마사태의 중심 세력이었다. (…) 박 대통령은 79년 10월 17일 생애 마지막 일기를 남겼다. 부마사태가 터진 날이다. “일부 반체제 인사들은 현 체제에 대하여 집요하게 반발을 하지만 모든 것은 후세에 사가(史家)들이 공정히 평가하기를 바랄 뿐.” 은인은 잊혀도 은혜는 남는다는 말이 있다.

육영수 쓰던 방에 시신 눕혔다

1977년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딸 근혜(현 대통령)가 붓글씨 쓰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중앙포토

 

#그날, 새끼 밴 어미 사슴이 죽다
한남동 음식점에서 얘기를 나누던 중 한 참석자가 묘한 말을 했다. “오늘 낮 아산 도고호텔 앞마당에 대통령 일행이 탄 헬기 세 대가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내렸답니다. 헬기가 착륙하는 소리에 놀라 사육장에서 키우던 새끼 밴 어미 사슴이 날뛰면서 헬기 뒤꼬리 프로펠러에 부딪쳐 죽었다고 하네요.” (…) 뭔가 불길한 기분에 등이 오싹했다.

#박근혜, 어머니 쓰던 방에서 아버지 시신 눕히다
박근혜 영애가 국군서울지구병원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수습해 청와대로 모셔왔다. (…)  나는 앰뷸런스에 실려온 대통령의 몸을 안아 시트에 눕혀드렸다. 1m56㎝의 키. (…) 심장의 박동이 멎은 지 7시간이 지난 시점이다. 머리 뒤쪽에선 아직도 허연 진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근혜 영애는 흰 수건으로 진물을 닦아드렸다.

겁에 질린 최규하, 전두환의 The Day

1980년 3월 1일 전두환 보안사령관(오른쪽)이 청와대에서 최규하 대통령(가운데)에게 중장 진급 신고를 하고 있다. 왼쪽은 대장으로 진급한 백석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다.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중장 진급 한달 뒤 4월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했고, 8월에는 대장으로 초고속 진급했다. 사진 국가기록포털

 

#강원 출신 최규하, 이상한 충청 말씨
최규하 대통령이 상기된 목소리로 대뜸 “아, 총재님이십니까. 저, 어젯밤에 죽을 뻔했시유”라고 말했다. (…) 최 대통령은 “전두환 합수본부장을 비롯해 장군 여러 명이 몰려와 결재해 달라고 난리를 쳤다”며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을 털어놨다. 강원도 원주 사람도 말끝을 ‘~시유’로 끝내는지 최 대통령은 그날 밤의 두려움과 흥분을 이상한 충청도 말씨로 표현했다.

#전두환이 권총을 찼는지는 모르지만…
전두환의 이런 무력시위는 항간의 소문처럼 그가 권총을 차고 들어와 최 대통령을 협박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최 대통령으로 하여금 ‘죽을 뻔했다’는 말을 남기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 사령관을 체포해야 한다면 대통령의 사전 재가를 받아야 한다. 전두환은 정승화 체포팀을 한남동 총장 공관에 보내는 것과 동시에 자신은 삼청동 총리 공관에 머물고 있던 최 대통령을 찾아갔다.

 

 

‘김종필 증언록: 소이부답’ - 더 자세한 내용은 더중앙플러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에 “야, 너두 죽어봐”…김재규 발작증 끝내 터졌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0691

총탄 맞고도 “자네들 괜찮나”…박정희, 혁명가답게 떠났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0202

육영수 쓰던 방에 시신 눕혔다…작은 육신 박정희, 거인이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19685

“저, 어젯밤에 죽을 뻔했시유” 최규하 겁에 질린 The Day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22871

 

 

배노필 기자 bae.nopi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