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장자 변론의 상대를 잃어버렸도다

Jimie 2024. 5. 16. 04:33

장자

변론의 상대를 잃어버렸도다

출생  BC 365경,  사망 BC 270경

 

 

중국 전국시대의 송나라 철학자. 산문가. 제자백가 중 도가 사상의 중심인물로 자연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했다. 맹자와 비슷한 시대에 활동한 것으로 전하나 정확한 생몰년은 알려져 있지 않다. 천지 만물의 근원을 도라고 보았고,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양혜왕의 재상을 지낸 혜시와 우정이 두터웠고, 그와 변론을 즐겼다. 혜시가 죽은 후에는 변론의 상대를 잃었다며 한탄했다. 10만여 자로 쓰인 그의 저서 《장자》는 우화 중심으로 쉽게 쓰였고, 도가의 경전이 되었다. 그중 장자가 스스로 나비가 되어 노닐다가 자신이 장자라는 사실도 잊고 말았다는, 자신이 나비인지 나비가 자신인지 구별할 수 없다는 〈나비와 장주〉의 예화가 유명하다.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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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주검 앞에서 노래를 부르다

장자의 이름은 주(周)이고, 중국 송나라의 허난성 상추 근처에서 태어났다. 본래 이곳은 호수와 숲이 많고 경치가 아름다우며 기후 역시 온화하여, 그의 정신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추측된다. 장자는 처음에 공자의 제자인 전자방(田子方)에게서 배웠다고 하는데 확실하지 않다. 장자는 남에게 배우기보다는 스스로 책을 읽으며 자신의 독자적인 사상 체계를 형성해 나간 듯하다.

 

장자의 아내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죽고 말았다. 이때 친구 혜시1) 가 조문을 왔는데, 장자는 두 다리를 뻗고 앉아 물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를 보고 혜시가 말했다.

 

"그대는 지금까지 아내와 잘 살아왔고 그래서 애정도 두터울 터인데 노래를 부르고 있다니, 이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이에 장자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이 아닐세. 나도 처음에는 놀라고 슬퍼서 소리내어 울었다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가소롭기 짝이 없지 않은가? 왜냐하면 그녀는 본래 삶도 없고, 형체도 없고, 그림자조차 없었지 않은가? 그러다가 어느 날 큰 혼돈 속에서 음양의 두 기(氣)가 일어나 형체를 이룸으로써 그녀에게 비로소 삶이 주어졌네. 그리고 이제 삶에서 다시 죽음으로 돌아갔거늘, 이것은 춘하추동의 변화와 똑같은 것이 아니겠는가? 아마 내 아내는 지금쯤 천지(天地)라고 하는 한 칸의 큰 거실 안에서 단잠을 자고 있을 걸세. 그런데도 내가 소리를 치고 통곡을 하며 운다면, 천지간에 얼마나 불행한 사람이 되겠는가?"

흙탕물 속에서 살겠다

장자는 젊은 시절에 잠시 하급 관리 노릇을 한 적이 있는데, 경제적으로 아주 어려웠다. 끼니를 굶을 지경이 되자, 치수(治水, 물을 관리하는 일)를 담당하는 관리에게 쌀을 좀 빌리고자 했다. 그러나 그 관리는 "내가 수확기에 전세(田稅, 밭을 빌려주고 받는 세금)를 받으면 그 자리에서 삼백 냥을 빌려주겠소" 하는 것이었다. 이 말에 불쾌해진 장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리로 오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러 사방을 둘러보았더니, 시궁창의 붕어 한 마리였소. 그 붕어가 나에게 하는 말이 '나는 동해의 파신(波臣)이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나에게 한 말의 물을 주어 제발 살려주십시오' 하는 것이었소. 그래서 나는 '내가 남쪽의 오나라와 월나라의 군주를 만나 큰 강의 물을 끌어다가 당신을 환영하도록 청하리다'2) 하였소."

 

장자는 이 비유를 통해 사람이 급할 때 조금만 도와주어도 될 것을 허무맹랑한 말로 희롱만 하는 것에 대해 준엄하게 꾸짖고 있는 것이다.

장자는 아내가 죽은 뒤 관리직을 그만두고 여러 곳으로 유랑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의 권세나 부귀를 우습게 여겼다. 언젠가 초나라의 위왕이 장자의 명성을 듣고 그를 재상으로 등용하기 위해 천금(千金)의 선물과 함께 대부 두 사람을 보내 초빙해오도록 했다. 대부들은 3개월을 헤맨 끝에 장자를 찾았다. 그는 물가에서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장자는 낚싯대를 잡은 채 돌아보지도 않고 대부에게 물었다.

 

"천금이라면 대단한 돈이며, 재상이라고 하면 고관 중의 고관이지요. 그런데 듣자니 초나라 조정에는 죽은 지 삼천 년이나 지난 신령스런 거북이 있다지요? 왕은 그것을 비단으로 잘 싸서 종묘3) 에 모셔두고 길흉을 점친다고 들었소. 그 거북이 정말로 신령스럽다면 죽어서 그 껍질로 사람의 존경을 받겠소, 아니면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치며 살겠소?"

 

"그야 이를 말입니까? 흙탕물 속에서 자유로이 꼬리를 치며 사는 편이 좋겠지요."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장자가 말했다.

"그럼 어서 돌아가시오. 나도 살아서 흙탕물에 자유로이 꼬리를 젓고 싶은 사람이오."

 

권력에 아부하여 일시적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죽임을 당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욕심 없이 유유자적하며 사는 편이 더 낫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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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슬 욕심을 버리다

장자는 혜시가 양나라의 재상이 되자 그를 만나러 갔다. 어떤 사람이 이 사실을 미리 알고 혜시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당신보다 재주가 훨씬 뛰어난 장자가 곧 찾아올 텐데, 그러면 아마 당신의 재상 자리도 보전하기 어려울 것이오."

 

이 말을 들은 혜시는 불안하여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장자를 만나 그 속내라도 알고 싶었다. 부하들을 죄다 풀어 장자를 찾아오도록 했는데, 꼬박 3일간을 수색했는데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장자가 스스로 찾아와 혜시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남쪽 지방에 봉황새4) 의 일종인 원추라는 새 한 마리가 있었는데, 이 새는 남쪽 바다에서 북쪽 바다로 곧장 날아간다네. 그 새는 먼 여행길에도 불구하고 오동나무가 아니면 쉬지를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를 않으며, 영천의 물이 아니면 마시지를 않지. 그런데 어느 날 그 새의 아래를 지나가던 솔개 한 마리가 썩은 쥐 한 마리를 물고 있다가 혹시 그 원추가 자기의 먹이를 빼앗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급히 머리를 쳐들고 '끼-' 하고 크게 울었다고 하네. 지금 그대도 이 솔개처럼 양나라의 재상 자리를 놓칠까봐 큰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원추는 장자 자신을, 솔개는 혜시를, 썩은 쥐 한 마리는 재상 자리를 의미한다. 결국 이 말은 '네가 썩은 쥐와 다름없는 알량한 벼슬자리를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양인데, 나는 그런 것에 관심도 없으니 너나 실컷 해라!'는 야유인 셈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 말에 부끄러워하든지 화를 내든지 할 텐데, 혜시는 벼슬자리에 눈이 먼지라 도리어 안도했다. 즉, 혜시는 장자의 마음에 욕심이 없음을 알아차린 까닭에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를 왕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주었다.

양혜왕은 거친 베로 만든 누더기를 걸치고 다 떨어진 신을 끈으로 묶어서 신고 있는 장자의 초라한 몰골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당신은 어째서 그런 모습으로 굴러다니시는가?"

 

이 말에 장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옷이 해지고 신발이 떨어졌다고 하여 굴러다닌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오히려 도덕을 알면서도 행할 줄 모르는 사람이 굴러다니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모습을 하고 다니는 것은 불행한 시대에 태어나 성군을 만나지 못하여 그런 건데 어쩌겠습니까?"

 

장자의 조롱 속에는 양혜왕에 대한 통렬한 질타가 들어 있었다. 양혜왕은 화가 나서 얼굴이 창백해졌으나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또 송나라에 가난한 선비 조상5) 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왕명을 받고 사신으로 진나라에 다녀왔다. 떠날 때는 불과 몇 량의 수레를 몰고 갔지만, 돌아올 때는 진시황제의 환심을 사서 100여 량의 수레에 선물을 가득 싣고 왔다. 그는 장자를 찾아가서 자랑했다.

 

"나는 본래 가난하여 누추한 집에서 기거하며 얼굴이 누렇게 뜨고, 목뼈가 앙상히 드러났었소. 그러나 한마디 말로 군주를 기쁘게 하여 백 량의 수레를 끌고 왔으니, 나도 이제 영화를 누리게 되었소."

 

이에 장자는 큰소리로 호통치며 말했다.

 

"진나라 왕이 언젠가 병이 들어서 의사에게 고름이 가득 찬 종기를 손으로 터뜨려 주면 한 량의 수레를 주고, 입으로 빨면 다섯 량의 수레를 준다 했소. 당신이 그토록 많이 얻어온 것을 보면 종기 자리를 많이 빨아준 모양이구려. 어서 가시오. 나까지 더러워지기 전에!"

 

이것은 후안무치(厚顔無恥, 얼굴이 두껍고 뻔뻔스러워 부끄러움을 모름)한 행위로 명예와 부귀를 바꾸어온 데 대한 통렬한 비난이었다.

 

장자는 세상 사람들과 논쟁을 하지는 않았으나 친구인 혜시를 만나면 통쾌한 논전을 벌였다. 그런 혜시가 일찍 죽자, 장자는 그와의 옛정을 못 잊어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초나라에 사는 어떤 사람이 자기 코에 파리 날개처럼 얇게 횟가루를 묻히고는 그것을 석수장이에게 정으로 쳐서 떨어내라고 했다. 석수장이는 정을 코에 대고 망치로 쳐서 횟가루를 떨어냈으나 코는 전혀 다치지 않았다. 송나라 왕이 그 말을 듣고 석수장이를 불러다가 자신의 코에 횟가루를 묻혀 그것을 떨어내도록 했다. 그러나 석수장이는 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재주를 펴볼 수 있는 상대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석수장이는 바로 나이고, 그 상대자는 혜시이다. 나는 변론의 상대를 잃어버렸도다!"

 

장자는 혜시와 만났다 하면 서로 입씨름을 하며 으르렁댔으나, 그가 막상 이 세상에 없고 보니 그동안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든 친구였음을 깨달았을 것이고, 그런 친구를 잃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으리라 짐작된다. 어떻든 이 대목에서는 장자의 인간적인 면모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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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은 하나

장자가 죽어갈 때 그의 제자들은 스승의 안장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상의했다. 이를 보고 장자는 "염려하지 마라. 나는 천지를 관으로 삼고, 해와 달을 벗으로 삼으며, 별들을 보석으로 삼고, 만물을 휴대품으로 삼으니 모든 장구(葬具)는 갖추어진 셈이다. 여기에 무엇을 더 좋게 하겠느냐?"고 했다. 이에 제자들이 "선생님! 관이 없으면 까마귀나 독수리 떼들이 뜯을까봐 걱정이 됩니다"고 하자, 장자는 다시 말했다.

 

"노천(露天)에 버리는 것은 까마귀나 독수리 떼에게 뜯어먹도록 주는 것이며, 땅에다 묻는 것은 개미 떼나 땅강아지가 먹도록 주는 것이니 이 둘이 무엇이 다르겠느냐? 이것은 이쪽에서 식량을 빼앗아 저쪽에 보내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냐?"

장자가 언제 태어나 언제 죽었는지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그는 철학자이자 탁월한 산문가로서, 1000여 년 동안 그의 문학을 모방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그의 문장은 모두 우화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내용이 대부분 허구적이기는 하지만 무궁무진한 의미가 들어 있다.

철학 속으로

장자에 따르면 본체로서의 무, 즉 도는 우주 내의 어떤 사물에든지 존재한다. 만물은 도에서 생겨나고, 다시 도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진정 도를 깨닫는 사람은 삶을 기뻐하거나 죽음을 싫어하지 않으며, 성공을 과시하거나 실패를 탓하지 않으며, 억지로 일을 꾸미지도 않는다. 사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한쪽의 완성은 한쪽의 파멸을 뜻하기 때문에 전체적 질서에는 변함이 없다. 사정이 그러하거늘 인간의 생사화복에 그토록 집착할 필요가 있겠는가?

 

윤리학적인 면에서 장자는 무엇보다 유가의 인위적인 도덕에 반대한다. 도덕을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은 마치 땅에 금을 그어놓고 달리게 하는 일처럼 위험하고 답답한 일이라는 것이다. 둘째, 생명존중의 윤리를 주장한다. 이 세상에서 생명을 지키고 몸을 보존하는 일보다 더 위대한 도덕은 없는 것이다. 셋째, 장자는 본성에 따라 사는, 분수의 윤리를 주장한다. 물오리는 비록 다리가 짧지만 그것을 이어주면 도리어 괴로워하고, 학의 다리는 길지만 그것을 잘라주면 오히려 슬퍼한다. 그러므로 자연적인 본분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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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와 묵자, 노자와 장자는 혼란한 세상에서 백성을 불쌍히 여기고 세상을 바로잡아보자는 생각은 같았다. 그렇지만 그 방법은 서로 달랐다. 공자와 묵자는 직접 사회 개혁에 뛰어들어 문제를 해결하려 했고, 노자와 장자는 자연적으로 치유되고 미화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좀더 살펴보면 노자와 장자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노자가 정치와 사회의 현실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던 반면, 장자는 개인의 안심입명(安心立命, 아무것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완전히 평정한 마음의 상태)에만 몰두했다. 노자가 혼란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 무위자연에 처할 것을 가르쳤던 반면, 장자는 속세를 초탈하여 유유자적(悠悠自適,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삶)하고자 했다. 노자가 자연의 원리와 그 응용을 가르쳐주었다면, 장자는 천지와 하나가 되는 원리를 설파했다. 노자의 《도덕경》이 깊은 사색을 필요로 하는 철학적 작품이라면, 장자의 《남화경》(《장자(莊子)》의 다른 이름. 유려한 문체로 유명하다)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도취의 망아(忘我) 상태로 빠져들게 하는 문학적 작품이다.

 

물론 장자에 대해 허무주의적이라거나 회의주의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하지만 세상사와 정치에 대한 그의 통렬한 비평은 역설적으로 그에게도 격렬한 시비(是非)의 관념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아예 세상사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면 구태여 비웃거나 비판할 필요조차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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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者莊周夢為蝴蝶,栩栩然蝴蝶也,自喻適志與!不知周也。
俄然覺,則蘧蘧然周也。
不知周之夢為蝴蝶與,蝴蝶之夢為周與?周與蝴蝶,則必有分矣。此之謂物化。

 

예전에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데, 펄럭이며 날아다니는 나비가 진실로 기뻐 제 뜻에 맞았더라! (그래서 자기가) 장자임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깨고 보니, 곧 놀랍게도 장자였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가, 알지 못하겠구나. 장자와 나비는 틀림없이 구분이 있는 것인데.
이를 일컬어 '물物이 되었다'고 한다.

 

 

 깨니 또한 꿈이런가

  • 어느 날,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었다. 훨훨 날갯짓을 하며 창공을 기분 좋게 날아다니느라 미처 자신이 장자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 홀연히 잠에서 깨고 보니 자신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윽고 장자는 기괴한 생각에 잠겼다. 내가 꿈속에서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의 꿈속에 내가 있었던 것일까. 하지만 사람들은 장자와 나비를 분명히 구별해서 장자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장자가 되는 것을 물(物)의 변화라고 말한다.

    “꿈속에서 즐겁게 술을 마셨던 사람은 아침에 깨어나면 불행한 처지를 비관하여 슬피 울고, 꿈속에서 슬피 울었던 사람은 아침에 기쁘게 사냥길에 오른다. 꿈을 꾸는 동안에는 그것이 꿈인지를 알지 못한다. 꿈속에서 좋고 나쁨을 점치다가 깨어난 뒤에야 꿈을 꾸었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스스로 깨달은 듯 잘난 체하며 떠들어 대니 한심할 뿐이다.

    우리는 모두 꿈을 꾸고 있고, 내가 그대에게 말을 건네는 이 순간도 꿈일지 모른다. 참으로 알 수 없는 이와 같은 일들을 일러 기괴하다고 한다. 만세(萬歲) 뒤에라도 성인을 만나 해답을 구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제물론(齊物論)
  •  
  • 두 편의 꿈 이야기에는 장자 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만물제동(萬物齊同),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만물제동은 크고 작음, 아름답고 추함, 착하고 악함 등의 가치 대립이 도를 도로써 인식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 것이기 때문에, 도의 관점에서 본다면 모든 사물은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물아일체는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뜻으로, 자연에 깊이 빠져든 경지를 말한다.장자가 나비가 되어 노닐었던 푸른 하늘은 자유를 상징한다. 그 어떤 구속도 그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반해 땅 위에서 인간들이 권력이나 부, 명예를 얻고자 벌이는 일들은 한낱 진흙탕에서 구르는 싸움일 뿐이다. 이를 한탄해 장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위의 글은 주변과 자신을 억지로 나누고 서로 대립하는 가운데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는 인간의 헛된 노력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장자의 심정이 잘 드러난 대목이다.모든 사물에 도가 있음을 인정하고, 고르게 대하고,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인다면 더 이상의 자유가 따로 없을 것이다.

 

  • 내가 나비 꿈을 꾼들, 나비의 꿈속에 내가 있은들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문제인가? 좋은 꿈과 나쁜 꿈의 경계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모두가 부질없는 생각이다. 꿈과 현실, 나비와 장자 사이에는 구별과 우열이 없다. 그것은 단지 물(物)의 변화일 뿐이며, 하나의 흐름일 뿐이다.
  • 평생토록 애를 쓰지만 성공을 보지 못하고, 피로에 짓눌려도 돌아가 쉴 곳이 없으니 참으로 애달프다.장자 〈제물론〉
  • 장자가 추구했던 정신 세계는 어떠한 인위적인 차별도 없는 세계다. 도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존재는 서로 다름이 없다. 또한 사물에 도가 들어 있다는 생각에서 본다면 모든 사물은 똑같이 존중되어야 한다. 이는 인간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인간관계는 물론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 그리고 이 모두를 포함한 시간과 공간에까지 적용되어야 할 원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