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영국 보수당 : 유럽의 현존 정당 가운데 가장 성공한 정당

Jimie 2024. 5. 16. 04:30

 

‘통치에 적합한 당’이라는

영국 보수당은  현존하는 유럽의 모든 정당 가운데 가장 성공한 당이라는 평을 듣는다.

보수당의 경이로운 점은 특권층만이 정치적 권력을 누리던 시대에 만들어진 정당이 21세기까지 존속하고 있다.

 

보수당은 실천에서는 유연성을 보여왔지만 일관된 원칙은 고수한다.

보수당 의원들은 '선거에서 지는 한이 있더라도 원칙을 고수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한다.

 

보수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중히 여기면서 동시에 개인의 책임과 의무, 공동체적 연대, 애국심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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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여행가들이 흔히 그렇듯이,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보았고,
내가 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다."                  
                                    벤자민 디즈레일리 
 
19세기 영국의 정치인. 현 영국 보수당의 대부격 되는 인물로, 빅토리아 여왕 시기 적극적인 제국주의 정책을 펼쳐 당대 영국의 패권을 유지시킨 총리이다.그러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개혁가들이 주창한 정책을 부분적이나마 반영시켜서 새로히 유권자가 된 중산층과 노동자들을 보수당 지지층으로 적극적으로 포섭시키는 이른바 일국 보수주의를 주창하여, 영국식 온건 보수주의의 초석을 닦기도 하였다. 동시대 라이벌이자 자유당의 리더였던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과의 평생에 걸친 경쟁 관계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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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ervative and Unionist Party[1]
한국어명칭
보수연합당
창당일
1834년 (보수당)
당명 변경
1912년 (보수연합당)
전신
통합한 정당
자유연합당 (1912년 흡수합당)
중앙당사
 
영국 잉글랜드 런던
매튜 파커가 4, SW1H 9HQ
이념
스펙트럼
대표
리시 수낙 / 3선 (56-58대)
서민원 원내대표
서민원 원내총무
사이먼 하트 / 4선 (55대-58대)
귀족원 원내대표
트루 남작 / 귀족원
서민원 의원
350석 / 650석 (53.8%)
귀족원 의원
245석 / 786석 (31.6%)
당색
국제 조직
청년 조직
젊은 보수당 (Young Conservatives)
성소수자 조직
성소수자 보수당 (LGBT+ Conservatives)
정당원 수
172,437명 (2022년 기준)

개요

Long-Term Decisions for a Brighter Future
더 밝은 미래를 위한 장기적인 결정

2023년 슬로건
영국 보수주의 정당. 2023년 기준 영국의 여당으로서 국왕 폐하의 정부(His Majesty's Government)라고 불리기도 한다.

1832년 토리(Tory)당이 당명을 바꾸면서 탄생한 유서 깊은 정당으로, 전신인 토리당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정당으로 평가받기도한다. 또한 전 세계의 '보수당'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정당으로, 많은 이들이 당명으로서의 '보수당'을 이야기하면 흔히 이 당을 떠올린다.

당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보수주의 성향을 띤다. 노동당, 자유민주당과 함께 영국의 3대 정당이다. 당헌에 기재된 정식 명칭은 Conservative and Unionist Party(보수연합당  또는 보수통합당이나 보수통일당)이다. 현대에 잉글랜드·웨일스의 구 보수당과 스코틀랜드의 통일당이 합당해서 현재의 보수당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풀네임을 일일이 쓰는 경우보다 Conservative Party 또는 Conservatives로 쓰는 경우가 더 많다. 아니면 옛 이름을 따서 Tory Party, Tories라고 쓰는 경우도 있다.

참고로 2016년 3월 기준 영국 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서 검색해 보면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의 정당 명칭 모두 Conservative and Unionist Party로 등록돼 있다.  # # 영국 선관위는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의 정당을 따로 등록해서 관리하고 있다. 따라서 그레이트 브리튼과 북아일랜드 양 지역에서 모두 활동하는 정당은 각각 따로 등록한다.
 

 역사

3.1. 창당

기원으로 따지자면 1780년대에 小 윌리엄 피트를 중심으로 한 휘그당의 탈당파들로 올라갈 수 있다. 1832년 로버트 필이 토리로 불리던 정당의 이름을 보수당으로 바꾸면서 현재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참고로 1678년부터 1760년대까지 존재했던 토리당과는 이름만 빼고 아무런 관련이 없다.

경쟁 정당이었던 휘그에 비해서 딱히 보수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1840년대 자유무역 역사의 큰 사건으로 불리는 곡물법 폐지 논란을 기점으로 경제적으로 보호주의(보수당) vs. 자유주의(휘그당) 구도가 만들어졌다. 사실 근대 정치가 갖추어진 후에도 크게 정치적 논점이 차이가 난 것은 아니었으며,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입장이 정리되곤 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당이 집권할 때 자유당보다 더 큰 개혁이 이루어지곤 하였다.

토리를 근대적인 정당으로서 보수당으로 변화시킨 로버트 필이 막상 자유무역 문제로 수상 임기 말년에 당을 쪼개자 20년 동안 휘그, 그리고 후신인 자유당에 정권을 내주게 된다.

3.2. 디즈레일리의 개혁과 20년간의 장기집권

이 와중에 보수당을 변화시킨 것은 벤저민 디즈레일리 수상이였다. 그는 이른바 진보적 보수주의, 일국 보수주의(one-nation conservatism) 노선을 견지하여 보수주의를 근대적인 관점으로 끌어올렸으며 민주주의의 개념도 수용하였다. 그의 집권 기간에 보수당은 전통적 젠트리뿐 아니라 부르주아지 중간 계급과 노동 계급에게도 지지를 끌어올린다. 반면 디즈레일리 수상의 사후 보수당(제3대 솔즈베리 후작)과 번갈아 집권한 자유당(글래드스턴 수상)이 아일랜드 자치법안을 강행하자 당내에서도 반발이 생겼다. 자유당 내 아일랜드 자치 반대론자들은 1886년 자유통일당(Liberal Unionist Party)을 창당하여 보수당과 공조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 20년 동안 보수당이 정권을 독점하게 된다.

3.3. 자유연합당과의 합당

1912년에는 보수당과 자유연합당이 공식 합당하면서 현재의 보수연합당이라는 당명이 확정되었다. 하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Conservative Party라는 당명에 거부감을 느끼는 유권자가 많아 이 해부터는 자유통일당 노선을 따라 연합당(Unionist Party)라는 스코틀랜드만의 정당이 자매 정당으로서 조직돼 활동하게 되었다. 이로써 스코틀랜드에서는 연합당이 유일한 '토리당'으로서 수십 년 간 활동하게 되었다. 스코틀랜드의 연합당은 1965년까지 존속됐다가 보수연합당에 완전히 흡수된다.

3.4.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실각과 재집권

2차대전 직후에는 잠시 노동당에게 정권을 내준다. 2차대전 종전까지 보수당 소속의 처칠의 주도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음에도 영국 유권자들은 냉정하게 노동당을 집권시킨 것. 이후 무리한 복지정책으로 노동당이 국민적 반발을 사자 보수당의 처칠이 다시 집권하게 된다. 보수당은 노동당 정권이 추진했었던 주요 산업들의 국유화를 중단하고, 법인세 소득세 등 각종 세금들을 감면한다. 하지만 NHS(국민건강서비스)와 같은 핵심적인 보건 복지 정책들은 큰 틀에서 기존의 기조를 이어나간다. 아무튼 정권을 탈환한 처칠은 조지 6세의 마지막 총리이자 엘리자베스 2세 재위기의 첫 총리가 되었다.

3.5. 마거릿 대처 내각 시기

보수당의 뚜렷한 정책 변화는 1970년대 후반기에 나타났다. 당시 영국은 감당하기 어려운 정부지출, 낮은 생산성, 강성노조들의 잦은 파업으로 인해 영국병이라 명명된 경제위기를 겪고 있었고, 보수당과 노동당 그 어느 측도 이를 해결하기 어려웠다. 그러한 와중에 1978년 연말부터 1979년 연초까지 영국 사회를 강타한 불만의 겨울로 인하여 노동당 집권세력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고, 신자유주의를 주창하던 미들 잉글랜드 출신의 여성 정치인 마가렛 대처가 보수당을 단독 과반으로 이끌며 총리가 되었다.

전통적인 상류층 출신도 아니고, 더군다나 최초의 여성 총리라는 점에서 그녀의 집권은 영국 사회의 변화를 암시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정부지출 축소, 중산층에 대한 감세, 국영기업 민영화, 각종 규제 완화 등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을 추진한 것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케인즈주의적 경제정책과 복지국가형 사회보장체제에 익숙해져 있던 영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정치적 타협을 중시하는 당의 전통과 달리 비타협적이고 과격하게 자신의 정책을 관철했기 때문에 좌파 진영으로부터 더욱 미움을 받았다. 포클랜드 전쟁에서의 승리와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정책의 성과 덕분에 장기 집권을 했지만 비타협적인 정책이 타협적으로 변모한 것은 아니어서, 1990년에 이르면 인두세를 도입하려다 트라팔가 광장에서 대규모 시위대가 폭동을 일으키는 등 엄청난 반발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대처는 보수당에서의 당권을 잃고 실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