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왜 더러운 사람 만드냐” 검사 면전서 서류 확 밀쳤다 [박근혜 회고록34]
2023.12.19
박근혜 회고록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흘렀고,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선고일이 다가왔다. 나는 당시 청와대 관저에서 생중계를 지켜보며 담담히 결과를 기다렸다. 사실 마음속으로는 헌재 심판도 결국 큰 틀에서 정해진 각본대로 흘러갈지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었다.
이정미 재판관은 20분 넘게 탄핵심판 결정문을 낭독했다. 중계를 지켜보는 내내 마음을 다스리려고 했지만, 이 재판관이 전혀 사실이 아닌 부분을 마치 사실인 것처럼 확정적으로 발언할 때는 어이가 없었다. “피청구인의 행위는 최서원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이라거나 “피청구인은 최서원의 이권 개입에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줬다. 최서원의 사익 추구에 관여하고 지원했다”는 대목이 특히 그랬다.
이런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 최서원 원장은 나를 속였다. 그리고 그의 위법행위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데 대해서는 내게 큰 책임이 있으며, 지금도 국민께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최 원장에게 어떤 이익을 줄 목적으로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적은 결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최 원장의 이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했다는 헌재의 결정문은 납득할 수가 없었다.
헌재가 “피청구인은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했으나 검찰과 특검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며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판단한 대목도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특검 조사 거부? 靑에 검사 흡연실까지 설치했다
2017년 3월 10일 이정미 헌법재판소 소장 권한대행은 서울시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서 탄핵을 인용했다. 중앙포토
원래 나는 당시 적극적으로 특검 조사를 받으려고 했다. 박영수 특검은 당시 윤석열 수사팀장을 통해 유영하 변호사와 조사 일정을 조율했다. 처음에는 전화로 조율하다가 2017년 2월 초순경 두 사람이 직접 만나서 조사와 관련된 사항을 협의하고 합의했다. 유 변호사는 윤석열 팀장을 만난 다음 날 내게 윤 팀장과의 합의 내용을 설명해 주었다. 유 변호사는 “윤 팀장과 조사 일시만 미정으로 둔 채 나머지는 다 합의를 했다. 조사 장소는 청와대 비서동(위민2관)으로 하고, 특검보 2명과 부장검사 2명, 검사 1명이 조사에 참여하기로 했다. 조사 형식은 참고인 조사로 진행하며, 조사 내용에 대해서는 녹음, 녹화는 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해 주었다.
또한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은 조사가 시작되기 전에는 비공개로 하되,
조사 당일 오후 10시 이후에는 조사 중인 사실이 공개되더라도 청와대에서 양해하기로 했다”고 합의 내용을 설명했다.
나는 보고를 받은 후 유 변호사에게 특검조사팀이 조사 도중 쉴 수 있는 휴게실을 마련하고
다과 및 음료도 제공하도록 준비해 불편함이 없도록 하라고 말했다.
그 후 특검 측에서 검사 중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다고 전해 와, 그 직후 청와대 내부에 임시 흡연 공간을 마련하기까지 했다.
며칠 후인 2월 7일 나는 유 변호사에게 ‘2월 9일에 조사를 받겠다’고 특검에 전달하라고 말했다.
유 변호사는 그 자리에서 바로 윤석열 팀장에게 조사 날짜를 통보했다.
그때 시간이 2월 7일 오후 5시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그날 저녁 8시가 되기 전에 유 변호사가 내게 전화를 했다.
조금 전 윤석열 팀장이 유 변호사에게 전화해서
“SBS 8시 뉴스에 ‘2월 9일 청와대 위민관에서 대통령을 직접 조사한다’는 내용이 보도된다고 해서
지금 특검사무실로 들어가고 있다.
나중에 보도를 보고 난 뒤 다시 전화하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나는 SBS 뉴스를 본 후 유 변호사에게 전화해서
“조사받는다는 내용이 보도됐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정확한 경위에 관해 확인하라”고 말했다.
다음 날 청와대로 들어온 유 변호사는 내게
“SBS 보도 후 저녁 8시45분경에 윤석열 팀장이 전화해서
‘특검팀에 확인했더니 특검에서 조사 날짜가 유출된 것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유 변호사가 이름을 밝힐 수 없는 SBS 관계자에게 보도 경위를 확인해 보니 그 인사는
“특검에서 조사 사실을 확인해 주었고, 취재원은 일반 수사관이 아닌 검사 이상의 고위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유 변호사에게 특검에 연락해서 조사 일시를 비보도하기로 해놓고 사전에 언론에 유출한 것은 신뢰를 깬 것이므로
예정된 2월 9일 조사는 연기하고 다시 날짜를 조율하자고 통보하라고 지시했다.
그 후 특검팀에서는 윤석열 팀장이 아닌 박충근 특검보를 협상 당사자로 지정하고 조사 일시와 장소, 방법 등을
다시 협의하자고 통보해 왔다.
유 변호사는 윤석열 팀장과는 예전부터 잘 아는 검찰 선배이기 때문에 편하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기 합의도 큰 이견 없이 했는데, 갑자기 상대가 바뀌는 게 조금은 걱정된다고 했다.
청와대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당초 2017년 2월 9일에 하기로 합의했던 박근혜 대통령 대면조사는
녹음, 녹취를 둘러싼 이견으로 연기됐고, 끝내 무산됐다.
사진은 청와대 비서동의 모습. 중앙포토
유 변호사를 만난 박 특검보는 당초 윤 팀장과 합의한 내용과는 달리
“대면조사를 비공개로 하기가 어려워졌으므로 조사도 청와대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진행하고,
청와대에서 대면조사를 할 경우 조사 내용을 녹음·녹화해야 한다”고 새 제안을 냈다고 한다.
이에 유 변호사는
“특검이 조사 일시를 사전 공개하길 원하면 그 문제는 전향적으로 검토하겠다”면서도
“조사 장소를 청와대 경내로 한다는 점과 녹음·녹화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합의된 사항으로 변경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특검의 명확한 입장을 밝혀 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후 특검에서는 ‘조사의 공정성, 투명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라도 녹음·녹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반면에 유 변호사는
“조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조사받는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지, 조사자가 제기할 사안이 아니다”며
“특검 조사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해 어떤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으며,
앞으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이미 공문을 통해 수 회에 걸쳐 특검에 전달했으므로 수긍할 수 없다”고 회신했다.
그 후 특검은 대면조사 시 녹음·녹화를 요구했으나 대통령 측에서 이를 거부해 대면조사가 무산된 것으로 언론을 통해 주장했지만,
그 내막은 이런 과정을 거친 것이다. 결국 이런 신경전이 계속 이어지다가 특검 조사는 무산되고 만 것이다.
갑자기 녹음 고집한 특검, 지금도 의문
박영수 특검은 2017년 3월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서 국정농단 의혹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앙포토
지금 돌이켜봐도 왜 특검에서 갑자기 녹음·녹취를 하겠다고 고집했는지 의문이다.
굳이 녹음이나 녹취를 하지 않아도 조사는 충분히 진행될 수 있었다.
의무 사항이 아니었고, 내게는 이를 거부할 권리가 있었다.
주변에서는 내가 특검 조사를 거부한 것 같은 모양새를 만들기 위해
특검 측에서 무리한 요구를 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올 정도였다.
실제로 헌재는 내가 특검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헌법 수호 의지가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기회를 통해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다.
결국 헌재는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어느 정도는 각오한 상태였지만, 이 짧은 문장은 관저에서 생중계를 지켜보던 내 가슴에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아프고 참담했다.
내가 헌재의 결정을 지금에 와서 받아들이지 못하겠다고 할 수는 없다.
헌재의 결정으로 나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그런 역사적 사실은 흘러간 강물처럼 되돌이킬 수 없다.
하지만 나를 파면시키기 위해 헌재가 제시한 논거에 대해선 여전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먼 훗날에 역사가 탄핵의 정당성에 대해 평가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탄핵심판 당일 발생한 안타까운 일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다.
그날 탄핵 반대 집회에 참석한 분 중 네분이 사망하고,
한 분은 의식불명 상태로 고생하다가 후에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사람이 여러 명 사망했는데도 당시엔 언론에 사건 경위 등이 제대로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지금도 그 일만 생각하면 심경이 무거워진다.
유족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빨리 靑 비워라” 민주당 압박, 참모진 힘들었을 것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만장일치로 탄핵 인용을 결정했다.
헌재의 탄핵심판 인용 속보가 이어지는 가운데, 적막한 청와대가 뒤편에 보인다.
중앙포토
탄핵 결정이 난 뒤 얼마 안 있어 강석훈 경제수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강 수석은 무거운 목소리로 한광옥 비서실장 등 참모진과 함께 관저에 들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굳이 안 오셔도 됩니다.
오셔도 별로 할 말이 없지 않으시겠어요?”
하지만 오후에 다시 꼭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다시 거절하는 것은 도리가 아닌 것 같아서 자리를 마련했는데, 다들 침통한 표정으로 누구 하나 말을 잇지 못했다.
침묵은 오랫동안 이어졌고, 무거운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내가 부드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보세요.
제가 오셔도 별로 할 말이 없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무거운 분위기는 여전했다.
나는 안타까워하는 수석들을 위로하고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이후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청와대를 떠나기 위해 이삿짐부터 정리했다.
일부 비서진이 짐 정리를 도왔는데,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일하느라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없었어요.”
이삿짐을 싸는 대로 청와대를 떠나려고 했는데, 간단치가 않았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가 내게 이렇게 알려왔다.
“삼성동 사저의 보일러가 고장 났는데, 수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입니다.
당장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사정은 이랬다. 사저를 몇 년간 빈집으로 놔뒀으니 자연히 보일러가 고장 난 지는 오래됐는데,
실무진 입장에서는 탄핵이 결론 나기도 전에 미리 보일러를 고치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보일러를 수리한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마치 청와대가 탄핵을 기정사실화한 것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수리가 늦어졌다는 것이다.
불편한 마음으로 수리가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데, 민주당은 지금이라도 당장 청와대를 비우라고 압박해 왔다.
온몸으로 민주당의 공격을 방어한 청와대 참모진은 참 힘들었을 것이다.
참모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조금이라도 빨리 나가야겠다 싶어 준비를 서둘렀다.
3월 12일 강석훈 수석으로부터 직통 전화로 연락이 왔다.
전화를 받았는데, 수화기 너머로 침묵만 이어졌다.
강 수석은 나를 생각하는 마음에 총대를 메고 전화를 한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를 빨리 떠나야 한다는 얘기를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강 수석이 민망할 것 같아서 내가 먼저 농담 투로 이야기했다.
“지금 빨리 나가 달라는 이야기지요?”
강 수석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강 수석을 진정시키고 서둘러 준비를 마쳤다.
그날 오후 청와대를 떠나는데, 관저 주방 등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응접실에 모여 작별인사를 했다.
“여러분이 잘해 주신 덕분에 건강하게 지내고 갑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인용 사흘 만인 2017년 3월 12일 청와대를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왔다.
중앙포토
관저를 나서니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비서진과 참모 등 수백 명이 배웅을 위해 나와 있었다.
지나가면서 얼굴을 보니 한 사람 한 사람 다 소중한 기억이 났다.
“여러분 그동안 참 고생이 많았습니다.
여러 가지로 수고해 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일부 비서진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며 내 마음도 편치 않았다.
그렇게 차를 타고 청와대를 떠나 삼성동 사저로 이동했다.
삼성동 사저에는 새누리당 의원 10여 명과 지지자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의원들과 따로 만난 자리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소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모든 결과는 제가 안고 가겠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사저에 도착하니 보일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몹시 추웠다.
거실에 장작을 때는 벽난로가 있어 임시방편으로 장작을 땠다.
하지만 오래된 벽난로라 연기가 제대로 빠지지 않아 집 안이 온통 메케한 연기로 가득 찼다.
하지만 집 밖에는 내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는 취재진이 가득해 함부로 창문이나 커튼을 열 수도 없었다.
유 변호사가 변론 준비 때문에 삼성동에 왔을 때 뿌연 연기 때문에 힘들어하던 기억이 난다.
“왜 더러운 사람 만드나” 테이블 서류 밀쳤다
2017년 3월 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에 출두했다.
중앙포토
사저에 갇힌 듯한 삶이 이어졌다.
사저에 도착한 지 3일 뒤인 3월 15일, 검찰은 21일까지 서울중앙지검으로 출두하라고 통보했다.
6일간 짧은 준비를 마치고, 3월 21일 오전 서울중앙지검에 도착하니 취재진 등 인파로 붐볐다.
조사가 시작되기 전 노승권 중앙지검 1차장의 방에서 어색한 티타임을 가졌다.
찻잔에는 입도 대지 않았다.
1차장 방을 나선 뒤 유영하, 정장현 변호사와 함께 조사실에 들어섰고, 검찰 측에서는 한웅재, 이원석 부장검사가 조사를 담당했다.
21시간에 걸친 밤샘 조사였다.
두 분 부장검사는 최대한 예우를 갖춰 조사를 진행했고, 태도도 깍듯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다른 것은 몰라도 마치 내가 뇌물을 받은 사람처럼 질문하는 것은 도저히 견디기 힘들었다.
최서원 원장의 비행(非行)을 인지하지 못하고 막지 못한 것은 내 책임이 분명했지만,
나를 뇌물을 받아먹은 사람으로 비치게 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순간적으로 참았던 분노가 치밀었다.
8시간쯤 조사가 진행됐을 때 나도 모르게 손을 뻗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서류와 필기도구를 확 밀쳐내며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이런 더러운 짓을 하려고 대통령을 한 줄 아십니까.
왜 이렇게 있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서 사람을 더러운 사람으로 만드십니까.”
서류 일부가 바닥에 떨어졌다.
내가 격한 감정을 표출하자 검찰 측도 당황한 것 같았다.
조사가 중단됐다.
곁에 있던 유 변호사는 내게 마음을 진정하라고 조언했다.
약 30분간 조사실 옆에 있는 공간에서 휴식을 취한 후 조사실로 돌아가, 수사 검사에게
“흥분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다시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조사 열람을 마치고 새벽 6시쯤 검찰청을 나와 귀가했다.
장시간 조사로 심신이 지쳐서 사저에 도착한 뒤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2017년 3월 30일,
동생 박지만 EG 회장은 박 전 대통령의 서울 삼성동 자택을 방문했다.
중앙포토
결국 검찰은 3월 27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3월 3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두하기 전에 동생 박지만 EG 회장이 올케와 함께 삼성동 집으로 왔다.
대통령 취임 뒤 한 번도 만나지 못하다가 탄핵으로 물러난 후 영장심사를 앞두고서야
동생의 얼굴을 처음 보는 내 마음은 뭐라 형언할 수 없었다.
정말로 아끼고 사랑하는 동생인데 내가 대통령으로 있을 당시 보지 않았던 것은 대통령 주변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고
어떻게든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재직 중에는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무거운 분위기를 풀기 위해 박 회장이 “구치소 식사가 입에 맞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할 때는 잠시나마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박 회장을 바라보니,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흘렀나 싶었고, 뒤이어 아버지와 어머니 생각이 났다.
덩달아 내 눈시울도 붉어졌다.
박 회장의 배웅을 받고 사저를 떠나 서울중앙지법으로 이동했다.
8시간 40분에 걸쳐 영장실질심사를 받았다.
당시 영장심사에는 유 변호사와 채명성 변호사가 참여해 검사들과 치열하게 공방을 벌였다.
영장실질심사가 끝난 뒤에 나는 검찰 수사관들과 함께 서울중앙지검 10층에 위치한 조사실로 돌아왔고,
유 변호사는 영장전담판사가 요구한 구두 변론한 내용을 추가 의견서로 작성해 법원에 제출한 후 저녁 9시쯤 조사실로 들어왔다.
앞서 검찰 조사와 법원 심문 과정을 거치며 구속이 불가피하다는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에,
구속에 대해서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다. 새벽이 다가왔지만, 눈을 붙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새벽에 날아든 구속 소식…화장 지우고 머리 풀었다
2017년 3월 31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검찰 차량을 타고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서울 구치소로 이동했다.
중앙포토
3월 31일 새벽 3시가 조금 지났을 때였다.
유영하 변호사가 굳은 표정으로 조사실로 들어와서 말했다.
“대통령님, 영장이 발부된 것 같습니다.”
예상하던 일이었다.
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유 변호사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밖으로 나서기 전에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요.”
나는 화장실로 가서 화장을 지우고 머리핀도 빼서 머리를 풀었다.
나는 그렇게 구치소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 준비를 했다.
노승권 차장이 입감 절차에 관해 설명했는데,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중앙지검 청사에서 새벽 4시 30분쯤 차를 타고 나와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구치소 정문 앞에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구치소 인근에는 이미 취재진이 몰려 있었고, 곳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나는 그렇게 구속됐고, 구치소 생활이 시작됐다.
내가 구속된 후 일각에서는 변호인이 대응을 잘못해서 내가 구속된 것이라고 변호인들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있었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당시 변호인으로 구속영장을 막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던 유 변호사와 채 변호사의 노력을 알고 있다.
사실 탄핵 결정 전에 나는 주변의 조언을 받고 변호인단을 보강하기 위해 다양한 법조인과 접촉했다.
먼저 청와대 관저에서 우리 정부의 국무총리였던 정홍원 전 총리를 만나 변호를 부탁했는데 개인 사정이 있어 곤란하다며 고사했다.
또 재임 당시 검찰 고위직에 있던 A 변호사에게도 부탁했지만,
당시 그는 퇴임 후 법무법인에 몸담은 직후라, 법무법인의 허락 없이 개별적으로 움직이기 힘들다고 했다.
한번은 유 변호사를 통해 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B 변호사에게 변호를 부탁한 적이 있다.
B 변호사는 자신이 변호하고 싶지만 그러려면 팀을 만들어야 하는데 상당한 비용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충분히 이해됐다.
당시 삼성동 집을 팔고 난 뒤 돈이 있었지만,
앞으로 항소심이나 대법원까지 재판이 진행되려면 그 돈을 1심 재판에만 사용할 수는 없었다.
결국 그분을 선임할 수 없었다.
자칫 특정인에 대한 구설이 될까 봐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나와 가깝다고 생각했던 고위급 법조인 중 상당수가 부탁을 외면했다.
정계나 법조계가 원래 냉혹한 곳이라지만, 연이어 거절당할 때는 씁쓸했다.
“내가 이미 죽은 사람 취급을 당하는구나”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를 탓하고, 잘못을 다른 곳으로 돌리자면 한도 끝도 없을 뿐 아니라 무의미하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대통령에서 구속자 신분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구속 후 검찰에서 4회에 걸쳐 구치소에서 추가조사를 했고 그때는 유 변호사 홀로 입회했다.
유 변호사는 내게 “앞으로 재판이 진행되면 변호사가 많이 필요한데 부탁을 해도 모두 거절한다”며 많이 걱정했다.
나는 구치소에서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유 변호사와 채명성 변호사만 제외하고 나머지 변호인들을 해임했다.
처음부터 유 변호사와 채 변호사는 특검에 대비해 선임했던 변호인이고,
다른 분들은 탄핵 변론을 담당했던 분들이었는데 그분들께 더 신세를 지는 것은 미안했다.
그래서 사임을 부탁드렸는데 여러 사정상 해임해 달라고 해서 해임계를 제출한 것이다.
서울구치소에서 기나긴 재판의 막이 오르기를 기다리던 중 유 변호사가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에
소속된 변호사들이 돕겠다는 연락이 왔다고 전해 주었고, 그분들을 선임했다.
제일 먼저 도움을 준 것은 이상철, 이동찬, 김상률 변호사이고, 그 후 도태우 변호사가 변호인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아무런 대가 없이 기록을 검토해준 몇 분의 변호사도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그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2017년 봄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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