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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Jimie 2020. 4. 19. 15:14


류희관   조회 179 16.07.07 11:54         


플라톤의 행복론 

  

 플라톤의 행복론은 그리스 고유의 전통적 세계관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것으로 온갖 다양한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몫을 누리면서 다른 것들과 조화와 공존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이 하늘의 모습이고 사람이 또 본래 살아야 할 모습이며 나라가 추구해야 할 가장 올바른 상태이다.

 이러한 모습을 플라톤은 정의로운 상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정의롭다는 것과 행복하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같은 의미를 갖는다.

정의롭고 올바르고 도덕적인 사람은 받으시 행복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행복한 그리스 공동체란 발칸반도 곳곳에 산재한 각각의 도시국가들이 제 나름의 특징과 역할을 가지고 다른 이웃 도시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고, 행복한 나라라 함은 한 도시국가에 속하는 여러 다른 계층, 즉 통치자 계층, 전사 계층, 생산자 계층들이 서로 상대방의 역할을 간섭하거나 침해하지 핞고, 그들 각자의 본성과 소질에 맞게 자기 역할을 최고의 상태로 수행하면서 서로 조화와 공존을 이루면서 그 나라 전체의 평화와 평온을 이룩하며 사는 것이다.


 요컨데 사람이 사회적으로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여러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역할을 잘하고 자기가 누려야 할 것을 잘 누리고, 동시에 다른 사람의 것도 침해하지 않으면서 서로 조화와 질서를 이루고 공존해 가는 것이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그런데 플라톤은 이러한 원리에 의해서 인간 각각의 내면의 행복한 상태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즉 개인적으로 행복하다는 것은

인간 내면의 세 가지 측면,

즉 냉철한 이성의 측면과

자존심과 명예를 중시하는 기개의 측면,

리고 감각적인 욕심과 충동에 따라 살려는 욕망의 측면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상태를 말한다.


 플라톤은 이런 세 가지 서로 다른 부분이 인간 영혼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들 가운데 어떤 한 부분이 나머지 부분을 억누르거나 지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플라톤이 이성주의자라고 해서 개인 내면의 이성이 나머지 기개나 충동을 억눌러서 금욕적으로 사는 것을 플라통이 말하는 행복한 삶이라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신나게 노는 자리에 가면 욕망의 측면이 조화를 이끌어 가면서 잘 놀아야 하고 자존심 내세우거나 용기를 발휘해야 할 곳에서는 기개의 측면이 그렇게 해야 한다.


이처럼 개인적으로행복하다는 것은 인간 내면의 영혼의 세 부분이 각각 훼손됨이 없이 각각의 부분이 마치 오케스트라가 조화를 이루면서 때로는 빠른곡, 때로는 평정한 곡을 연주하듯 내적인 조화를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톤에 의하면 제멋대로 본능을 충족시키거나 금욕주의자처럼 일체의 본능을 따르지 않거나 하는 것은 모두 행복한 삶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플라톤의 행복론은 인간의 다층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하고 있는 매우 균형잡힌 행복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1. 먹고 살만한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2. 모든 사람에게서 칭찬받기에는 약간 처지는 용모

3. 자신이 자만하는 것에서 사람들이 절반 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4.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어 사람에게는 질 정도의 체력

5. 연설을 듣고서 청중의 절반 정도만 손뼉을 쳐주는 말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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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윤리학적 관심은 '좋음'이다.

그리고 이 '좋음'을 이전까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이 언급한 '선'이 아닌, 각자가 추구하고 각자가 욕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은 또 무엇인가?

사람은 그 누구도 스스로 불행해지기를 원치 않는다.

그런면에서 '행복'은 궁극적 목적이 될만하다.

행복이란 다른 어떤 것을 위하여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추구되는 좋은 것이다. 이는 '최고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개념은 윤리적 이상으로서의 가치가 아닌 인간의 자연적 욕망의 실현의 가치이다.

따라서 그는 플라톤과 같이 이념세계와 자연현실을 구분짓지 않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존재하고 있는 하나의 자연세계밖에 없으며 이념이든 감각사물이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자연 욕망과 욕구는 인정되며, 욕망을 채우는 것 또한 바람직한 일이다. 다만 문제는 욕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욕구에 질서와 통일을 부여하는 것이다.

행복이란 우리의 모든 욕망에 질서와 통일을 부여하는, 욕망의 궁극적 대상이다. 이 궁극목적이 없다면 욕망은 맹목과 무질서에 빠진다.


그런데 행복이란 무엇일까?

각자가 생각하는 다양한 행복이 있겠지만, 참된 행복이란 인간에게 고유한 능력인 '이성'이 탁월함을 실현할 때 즉, '덕에 따른 정신의 활동'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는 플라톤, 소크라테스에게 있어서의 '영혼의 탁월함'으로 결국 인간은 정신적 존재이기에 영혼의 온전한 상태를 통해 행복을 이룬다는 생각은 세 철학자에게 공통적이었다.)


그런데 영혼의 덕이 여러 가지 일때에는 가장 훌륭하고 궁극적인 영혼의 활동을 최고선이라 하는데,

그에 따르면 순수한 이성의 관조적 활동이야말로

정신의 모든 활동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삶의 다른 요소들을 배척하지는 않는다.

참된 행복을 위해서는 정신적 선(좋음)뿐 아니라 신체적 선(건강, 외모)이나 외부적 선(재산, 명예, 권력)또한

모두 필요하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는다. 어차피 우리는 현실에 뿌리내린 삶을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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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幸福,幸せ,Happiness) & 격언(格言,Prover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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