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미 2023. 12. 26. 09:27
시인 서정주
봉암초등학교 선운 분교를 개보수하여 2001년 11월 3일 개관한 미당 시문학관
시인의 고향마을이며 마을 뒷산 소요산이 솟아 있고 좌우로 생각와 묘소가 있다.
서정주(徐廷柱, 1915 ~ 2000)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서당에서 공부를 하다가 1924년 인근의 줄포로 이사하여 줄포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 1929년 졸업했다.
시인. 전북 고창 출생. 호는 미당(未堂). 1936년 “동아 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초기에는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으로 인간의 원죄 의식을 주로 노래하였으나, 후에 불교 사상과 샤머니즘 등 동양적인 사상을 노래한 작품을 썼다. 시집으로 “화사집”(1941), “신라초”(1960), “질마재 신화”(1975) 등이 있다.
작품
이 시는 시인이 초기에 쓴 시로 강렬한 생명 의식과 원시적 관능성이 잘 드러나 있다. 제목 ‘자화상’이 보여 주듯 자신의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며 자아의 존재 의미를 탐구해 나가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자는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종의 아들로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살아 왔음을 토로한다. 그리고 이런 삶을 ‘바람’에 비유한다. 이는 바람처럼 일정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뿌리 뽑힌 삶을 살아왔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화자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후회하지 않고 극복하려는 의지를 나타낸다. 삶의 시련과 고통은 오히려 화자에게 더욱 굳세게 살아갈 힘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 힘은 찬란히 틔어 오는 아침에 그의 이마에 얹힌 ‘시의 이슬’로 나타난다.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는 ‘시의 이슬’은 삶의 고통을 이겨냄으로써 얻은 정신적 · 예술적 결정체로 볼 수 있다.
*수록교과서 : (문학) 상문/(화작) 지학
이 시는 일 년에 단 하루, 칠월 칠석에만 재회하는 ‘견우직녀’ 설화를 배경으로 하여, 화자인 견우가 청자인 직녀에게 말을 건네는 형식으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이 시에서 전제하고 있는 바는 견우와 직녀의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 이별이다. 견우는 이러한 운명적 이별을 수용하고 있다. ‘물살’, ‘바람’, ‘은핫물’과 같은 장애물은 단순히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더욱 성숙한 사랑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들로 형상화되어 있다. 또한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라는 역설적 표현을 통해 이별의 아픔을 수용할 때 사랑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인식을 드러내고, 견우는 암소를 먹이고 직녀는 비단을 짜며 만날 날을 기다림으로써 만남의 순간을 위해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는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태도는 설화의 견우와 직녀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사랑에 대한 보편적인 태도라 할 수 있다.
*수록교과서 : (국어) 천재(박영목)
고전 소설 ‘춘향전’을 모티프로 삼아 새로운 시적 해석을 시도하고 있는 이 시는, ‘춘향의 말’이라는 부제가 붙은 세 작품 중 마지막 작품이다. 제목의 ‘유문(생전에 남긴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옥에 갇힌 춘향이 죽음을 앞두고 이몽룡에게 남긴 유서의 형식으로 각색되어 있는데, 시적 화자인 춘향은 세속적 차원을 넘어선 영원한 사랑을 추구하는 인물로 나타난다.
1~2연에서는 죽음을 눈앞에 둔 화자 춘향이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작별 인사를 하고 있는 상황이 제시되고 있다. 3~4연에서는 화자가 소망하는 영원한 사랑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3연의 ‘저승(=죽음)’, 4연의 ‘천 길 땅 밑(=저승)’과 ‘도솔천(兜率天)의 하늘(=극락)’ 조차 결국은 도련님의 곁이 아니겠느냐는 반문은 시간과 공간, 생과 사의 경계를 넘어선 화자 춘향의 영원한 사랑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5연에서 화자는 영원한 사랑 속에서 임과의 새로운 만남을 꿈꾼다. 이러한 화자의 사랑에 대한 믿음은 불교의 윤회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검은 물 → 구름 → 소나기’로 연결되는 자연 현상을 통해 이러한 불교적 상상력을 구체화하고 있다. 화자는 ‘천 길 땅 밑’을 흐르는 ‘(검은) 물’을 거쳐 ‘도솔천의 하늘’을 나는 ‘구름’이 되고, 그 ‘구름’이 다시 ‘소나기’가 되어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에 비를 퍼붓는, 오랜 윤회의 과정을 통과하여 사랑하는 임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있다. 이런 사랑이기에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수록교과서 : (문학) 천재(정재찬)/(국어) 교학
이 시는 국화가 개화하는 자연 현상과 국화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성숙한 삶의 아름다움과 연관지어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1, 2, 4연에서는 한송이 꽃이 피어나기까지의 아픔과 온갖 어려움을 노래한다. 생명 탄생의 힘든 과정을 상징하는 봄에 처절하게 우는 소쩍새, 여름의 천둥, 가을밤의 무서리는 화자 자신의 잠 못 이룸과 더불어 한 송이 국화꽃과 신비스런 인연을 맺으며, 국화꽃이 피어나는 데 영향을 미친다.
3연은 이렇게 피어난 국화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국화의 아름다움은 젊음의 시절을 다 지나 보내고, 거울 앞에서 자신을 돌이켜 보는 누님의 모습과 일치된다. 이 부분에 나타난 누님의 모습은 그리움, 아쉬움 등과 같은 온갖 젊음의 시련을 거쳐 지니게 된 성숙한 삶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국화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은 곧, 이러한 성숙한 삶의 아름다움인 것이며, ‘국화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화자가 지향하고자 하는 삶의 이상이기도 한 것이다.
*수록교과서 : (문학) 미래엔/(국어) 신사고
이 시는 외할머니의 집 뒤안에 있던 툇마루를 매개체로 하여 어린 시절 외할머니와의 추억과 외할머니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앞부분에서는 외할머니의 집 뒤안에 있던 먹오딧빛 툇마루의 의의가 제시된다. 일상적 삶을 공유하며 세대 간의 교감이 이어져 오는 공간이라는 툇마루의 상징적 의미는 ‘손때’라는 시어를 통해 형상화된다. 툇마루를 문지르는 행위는 자연스레 툇마루가 번질번질하게 닦여 거울과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툇마루를 거울에 비유하여 화자가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의 속성을 지닌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즉, 툇마루는 화자의 어린 시절 모습을 비추는 매개체의 역할을 하게 된다.
뒷부분에서는 툇마루에 얽힌 외할머니와의 추억이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툇마루에서 외할머니가 주신 오디 열매를 먹으며 숨을 바로 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한 장의 그림처럼 머릿속에 그려진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어린 시절 화자의 얼굴이 나란히 비치는 장면은 세대 간의 교감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 시의 주제 의식을 구현하고 있다.
*수록교과서 : (국어) 비상(우한용)
이 시는 앉은뱅이인 ‘재곤이’를 보살피는 ‘질마재’ 공동체 구성원들의 따뜻한 마음을 그린 작품이다. 장애를 가진 ‘재곤이’를 배려하고 끼니와 추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주는 마을 사람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재곤이’가 없어진 이후 천벌을 받을까 봐 걱정을 한다. 질마재 마을의 인정이 바닥난 것으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선도에 지식이 있다는 ‘조 선달’ 영감이 ‘재곤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신선살이’를 하러 하늘에 갔다며 마을 사람들의 긍정적 인식을 이끈다. 이러한 ‘조 선달’ 영감의 말에 마을 사람들은 신화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재곤이’의 죽음을 ‘신선살이’를 간 것으로 여기게 된다. 이는 바람직한 귀결을 바라는 선인들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서정주의 시 속에서는 초월적 존재의 신뿐만 아니라,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신적인 속성을 가지고 신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독특한 시각이 반영되어 있다. 이는 서정주가 세계와 우주를 범신론적, 범재신론적 차원에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수록교과서 : (문학) 천재(김윤식), 비상(우한용)
이 시는 “시인 부락” 2호에 실린 작품이기도 하지만, 그의 첫 시집 “화사집”(1941)의 제목으로 이름 붙여진 작품이기도 하다. 그만큼 이 작품은 서정주 초기 시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서정주 시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서정주의 초기 시풍은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아 악마적이며 원색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시풍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데, 인간의 원죄 의식과 원초적 생명력을 통한 관능적 욕망과 원죄적 세계관을 형상화하고 있다. ‘화사’는 원죄 의식을 느끼게 하고 저주스러우며 징그러운 동물임과 동시에 한편으로 ‘꽃대님’보다 아름다운 빛을 지녔고,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을 지닌 아름다움의 대상이기도 하다. 심지어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화사’를 화자의 젊은 날 추억인 ‘우리 순네의 고양이 같은 입술’과 동일시하기까지 한다. 유혹적인 뱀의 고운 입술을 통해 ‘우리 순네의 입술’을 연상하고 있을 만큼 다분히 관능적이다.
이 시는 전통적 소재를 빌려 떠나간 임에 대한 화자의 애틋한 마음을 표현한 시이다.
‘귀촉도’란 흔히‘ 소쩍새’, ‘접동새’로 불리는 새로, 이 작품에서는 사랑하는 임의 죽음에 대한 한(恨)을 상징하고 있다. 화자가 사랑하는 임은 다시 오지 못하는 저승길, 즉 ‘서역 삼만 리’, ‘파촉 삼만 리’로 떠나 버렸다. 화자와 사랑하는 임과의 거리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퍼 눈물이 아롱아롱 맺힐 뿐이다. 차라리 사랑하는 임이 살아 계실 때 ‘머리털을 엮어 신이나 삼아 줄걸’이라며 지극한 정성을 쏟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의 정서를 내비치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한(恨)으로 승화되어 ‘목이 젖은 새’, ‘제 피에 취한 새’인 ‘귀촉도’로 귀결된다. ‘하늘 끝 호올로 가신 임’이기에 화자의 그리움은 응어리져 피맺힌 눈물을 이루게되는 것이다.
이 시는 화자인 춘향의 말을 통해 현실의 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노래한 작품으로, 그네 타는 행위를 지상적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려는 고뇌의 상징적 표현으로 형상화하고있다.
1연에서 춘향은 향단에게 '머언 바다로/배를 내어 밀듯이' 그네를 밀라고 말하는데, 이를 통해 화자인 춘향이 그네 타는 행위를 땅 위의 인연을 끊어버리고 저 높은 하늘로 오르려는 상징적 행동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연에서는 춘향이 지상 세계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하는 아름다운 존재들이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네를 밀어 달라고 말하는 것은 이들을 포함한 현실의 세계가 자신의 소망을 실현할 수 없도록 답답하게 가로막혀 있어서 탈출하고 싶기 때문이다.
3연에서 그녀가 가고자 하는 곳은 '산호(珊瑚)도 섬도 없는 하늘'로 표현된다. 이곳은 1연의 '바다'와 의미가 통하는 초월적 이상 세계이다. 춘향은 자유롭게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처럼 이 세상을 벗어나 하늘 속의 존재가 되도록 자신을 밀어 올려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은 이 세상의 인연에 얽매여서 땅을 디디고 살아갈 운명이다.
따라서 4연의 독백 '서(西)으로 가는 ~ 갈 수가 없다' 라는 시구는 인간의 이러한 운명적 한계에 대한 깨달음을 보여 준다. 아무리 높이 하늘을 향해 차고 올라도 그네는 다시 떨어지고 마는 것이다.
5연에서 그네의 이러한 움직임은 춘향이 가진 간절한 초월 의지와 그 필연적인 좌절을 상징한다. 그럼에도 춘향은 자신을 밀어 올려 달라고 말한다. 파도가 어쩔 수 없이 다시 떨어져 내려오듯이 자신의 소망도 끝내 달성될 수는 없지만, 이 지상적 인연을 벗어나려는 괴로운 노력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시는 완숙한 경지에 이른 화가가 그려 낸,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시 전체가 5행, 3음보 율격의 한 문장으로 된 이 작품은 고도의 상징적 표현을 통해 삶의 본질과 관련된 주제를 간결한 형태 속에 깊이 있게 녹아 내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려지고 있는 풍경은 한겨울의 춥고 어두운 밤 하늘에 초승달이 떠 있고, 한 마리 매서운 느낌을 주는 새가 날고 있는 것이 전부이다. 그러나 이 풍경에서 시인은 그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 초승달은 그의 마음 속에서 아주 오랜동안 그리움으로 맑게 씻어 낸 님의 고운 눈썹이며, 하늘의 새는 그것을 아는 듯 시늉을 하며 비끼어 날아간다는 것이다.
이같이 달과 새가 함께 있는 ‘동천’은 이 시의 공간적 배경으로 정중동(靜中動)의 역설과 고도의 긴장을 보여 준다. 또한, 추운 겨울 밤 하늘에 투명하게 떠 있는 달(절대적 생명의 가치)과 그것을 알고 비껴 날아가는 매서운 새(영원과 무한의 절대적 가치를 동경하는 인간)의 거리는 천상과 지상, 절대성과 유한성 사이의 숙명적 단절을 상징한다. 이러한 상극의 두 요소가 ‘동천’이란 공간적 배경 속에서 함께 배치됨으로써 생명의 초월적 경지를 추구하는 시인의 시적 태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이 시는 시집 “질마재 신화”의 맨 첫머리에 실린 작품으로, 한국 여인의 매서운 절개를 짧은 이야기체로 형식으로 엮어 놓고 있다.
이 시는 내용상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 산문시이다. 전반부는 순간적인 오해로 인해 첫날밤 신부를 버리고 달아난 신랑의 이야기로, 행위의 초점이 신랑에게 맞추어져 있다. 신랑은 옷자락이 돌쩌귀에 걸린 것을 신부가 음탕해서 잡아당기는 것으로 오해하고 달아나 버린다. 신랑의 조급한 성질과 지각 없는 판단이 비극의 원인으로 제시되고 있다.
후반부는 40~50년이 지나, 신랑을 기다리다 매운 재로 변한 신부의 이야기로 신부의 모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40~50년이 경과한 뒤, 생명이 없음에도 신부가 고스란히 제 모습대로 앉아 '매운 재'가되어 버렸다는 것은 일부종사하는 열부(烈婦)로서의 매서운 신념을 암시하면서, 유교적 이념의 정신 세계를 나타낸다. 그리고 ‘초록 재, 다홍 재’는 그 현세적 가치를 뛰어넘어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되어 하나의 신화(神話)로 우리에게 나타난다. 신부는 ‘초록 재와 다홍 재’가 되어서도 예전의 모습 그대로 남음으로써,이 이야기 속의 신부는 현실적인 열녀(烈女)의 세계를 뛰어넘어 육신의 세계를 초월한 영적인 세계로 존재하게 된다.
이 시는 한국 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든 1952년 시인이 광주로 내려가 조선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지낼 때, 굶주림에 시달리는 비참한 현실과 창 너머로 보이는 의젓한 무등산의 모습이 너무나 대비가 되어 썼다고 한다. 눈부신 햇빛 속에서 우뚝 서 있는 무등산의 꿋꿋하고 의젓한 모습을 보면서, 물질적인 궁핍이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기는 하지만 사람의 타고난 본성까지 가리지는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여유 있고 넉넉한 태도로 가난을 극복하자는 지혜를 읽어 내고 있다.
1연에서는 가난이 우리들의 타고난 본성까지 가릴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눈부신 햇빛 속에 갈매빛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 있는 무등산을 바라보며 가난이란 한낱 우리 몸에 걸친 헌 누더기 같은 것이어서, 우리의 '타고난 마음씨'는 물질적인 궁핍으로 인하여 찌들기는커녕 오히려 그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2연에서는 푸른 산이 그 기슭에 기품 있는 향초(香草)를 기르듯이, 아무리 궁핍하더라도 자식들을 소중하고 품위 있게 기를 수밖에 없다는 의연한 긍정의 자세를 취한다. 3연과 4연에서는 서로 기대어 의지하고 있는 산처럼 때때로 힘겹고 괴로운 삶의 시련이 닥치더라도 지애비와 지어미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그것을 극복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5연에서는 물질적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자세로 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삶의 지혜를 형상화하고 있다. 가시덤불 쑥구렁과 같은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옥돌처럼 묻혔다고 생각하는 여유 있고 넉넉한 삶의 자세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시적 화자의 생각이다.
이 시는 '사소 설화'를 모티프로 인간 세계의 유한성과 인간 본질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구도(求道) 정신을 보여 주는 작품이다. 시인 자신이 원문에 덧붙여 기록한 바 있듯,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인 '사소'가 처녀의 몸으로 잉태하여 산으로 신선 수행을 가기 전 그녀의 집 꽃밭에서 한 독백을 가정하고 있다. 화자는 '구름'과 '바닷가'를 통해 넘어설 수 없는 경계를 경험하고, '산돼지'나 '산새' 같은 인간 세계의 그 어떤 것에도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던 중 '개벽하는 꽃'이 화자의 눈에 띄게 된다.
하지만 화자는 헤엄칠 줄 모르는 아이가 수면에 자신의 얼굴이나 비춰 보듯, 그렇게 꽃의 '닫힌 문'을 뚫어져라 바라만 본다. 묵묵히 바라보기만 하던 화자는 결국 '꽃'을 향해 애타게 소리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벼락과 해일' 같은 형벌과 고통을 만난다 할지라도 감내하겠다는 것은, 상처를 입더라도 경계를 넘어서겠다는 뜨거운 열망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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