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투사 노산 이은상(鷺山 李殷相)시인의 일대기
1932년 1월 이은상이 서울에서 쓴 작품. 10수 연작으로 된 시조
1933년 김동진이 만 20세가 되던 해에 시조의 일부로 작곡
1932년 1월 8일 동아 일보
가고파 - 테너 박인수
김동진곡, 이은상 시
https://www.youtube.com/watch?v=lB7wRTbrxME
~내 마음 가 있는 그 벗에게~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디 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고 보고파라 보고파.
나는 왜 어이타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내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저
그 날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가자 찾아가.
물 들면 뱃장에 누워 별 헤다 잠들었지
세상 일 모르던 날이 그리워라 그리워.
내 몫엔 즐거움은 아무데도 없는 것을
두고 온 내 보금자리에 가 안기자 가 안겨.
인생의 가는 길이 나뉘어 이렇구나
잃어진 내 기쁨의 길이 아까와라 아까와.
그 바다 물소리를 밤낮에 듣는구나
벗들아 너희는 복된 자다 부러워라 부러워.
한바다 물을 따라 나명들명 살까이나
맛잡고 그물 던지며 노래하자 노래해
찬 얼음 센 바람은 들지 못하는 그 나라로
돌아가 알몸으로 살꺼니아 깨끗이도 깨끗이.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노산 이은상 (鷺山 李殷相 1903~1982)
필명 : 남천(南川)·강산유인(江山遊人)·두우성(斗牛星)
1903년 10월 12일 경상남도 창원군 부내면 상남리(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 태생
1982년 9월 18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별세(향년 78세)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시인, 사학자, 교육자이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초기에는 동양적 인생무상과 관조의 정신을 담은 자유시를 창작했으나 곧 시조시인으로 전향했고 1920년대 시조부흥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했다. 유명한 가곡인 '가고파'의 시인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한편 친독재 전력으로 논란의 대상에 놓여 있다.
이은상 선생의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호는 노산(蘆山)이다.
조선 제2대 정종 임금의 열번째 서자였던 덕천군 이후생의 직계 후손인 그는 1903년 10월 12일 경상남도 창원군 부내면 상남리(현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상남동)에서 이승규(李承奎)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918년 마산 성호리교회(현 문창교회) 장로였던 아버지가 설립한 마산 창신학교 고등과를 졸업하였고, 1923년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하였다가 중퇴하고 1925년 도일하여 와세다대학 사학과에서 수학하였다.
1922년 조선문단을 통해 시조 '아버님을 여의고', '꿈 깬 뒤' 등을 발표하여 등단한 후 자유시를 창작하다가 1926년 이후 카프의 계급주의 문학의 반동으로 일어난 시조부흥운동의 영향으로 조국의 전통 문학과 국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시조시인으로 전향하였다.
1931년부터 1932년까지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1932년 노산시조집을 간행하였고 여기에 수록된 '가고파 ', ' 성불사의 밤' 등은 지금도 가곡으로 애창되고 있다. 1930년대 이후 가람 이병기와 함께 한국의 대표적 시조시인으로 자리를 굳히면서 민요적 리듬을 살린 작품들을 많이 썼다.
1932년 10월 동아일보사에 입사하여 1935년 4월까지 신동아 기자, 신가정 편집인 등으로 근무했다.#
1935년 6월에는 조선일보사로 이직하여 1938년까지 편집국 고문 및 출판국 주간 등을 역임했다.
그러다가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일제에 의해 홍원경찰서와 함흥형무소에 구금되었다가 이듬해인 1943년 기소유예로 불기소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1945년 사상범 예비검속으로 광양 경찰서에 구금되었다가 광복과 함께 풀려났고 광복 후 이충무공기념사업회 이사장, 안중근의사숭모회 이사장, 민족문화협회장, 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 통일촉진회 최고위원, 한국청년운동협의회(현 대한민국통일건국회) 회장,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이사, 문화보호협회 이사,전두환 정부 국정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언론, 사학, 문학 쪽에서 다양한 저술을 남겼으며 난중일기를 초역하는 등 충무공 이순신 연구자로서도 명성이 높다.
1949년 동국대학교 교수에 부임하였고 이후 청구대학, 서울대학교 교수를 재직하기도 했다.
1970년 경희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1974년에는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 문학 활동
저서 '노산시조집'
1921년 두우성이라는 필명으로 ‘아성(我聲) 4호’에 ‘혈조(血潮)’라는 시를 발표는 했지만 본격적인 문학 활동은 1924년 ‘조선문단’의 창간 무렵이다.
노산은 이 잡지를 통해 평론·수필·시 들을 다수 발표했고 당시 그는 국학이나 시조는 거의 등한시하고 서구의 자유시 쪽에 기울어 있었다.
당시에 발표한 자유시는 30편을 헤아리고 있고 시조는 단 한편 밖에 불과했다.
이후 1926년 후반에 이르러 시조 부흥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시조를 비롯한 전통문학과 국학쪽으로 활동을 시작한다.
시가 분야에서는 1929~1930년에 민요조의 리듬을 살린 ▲새타령 ▲매화동(賣花童) ▲조선의 꽃 ▲말몰이 ▲님 향한 생각이야 ▲남산에 올라 ▲말노래 등을 발표한다.
한동안 자유시와 시조의 창작을 병행하다가 1930년대 후반부터 시조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히고 그는 시조를 쓰는 한편 ‘당시(唐詩)’를 시조형식으로 번역하기도 하고 시조에 관한 이론을 전개한다.
1932년에 나온 그의 첫 개인 시조집인 ‘노산시조집(鷺山時調集)’은 향수·감상·무상·자연예찬 등의 특질로 집약된다.
이 중 ▲고향생각 ▲가고파 ▲성불사의 밤 등 많은 시조의 평이하고 감미로운 서정성이 가곡에 걸맞아 노래로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광복 후 그의 시조는 국토예찬, 조국분단의 아픔, 통일에의 염원, 우국지사들에 대한 추모 등 개인적 정서보다는 사회성을 보다 강조하는 방향으로 기울어갔다.
시조집 ‘노산시조선집’(1958년)을 비롯해 ‘푸른 하늘의 뜻은’(1970년)과 마지막 작품집인 ‘기원(祈願)’에서 정확히 표현을 했다.
▲ 생애 후반
사학가이자 수필가이기도 한 그는 해박한 역사적 지식과 유려한 문장으로 국토순례기행문과 선열의 전기를 많이 써서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1982년 국정자문회의 자문위원에 임명되었으나 1982년 9월 18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자택에서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사후 문화훈장 1등급 금관문화훈장에 추서되었고 국가 지원 사회장으로 그의 유해는 1982년 9월 22일 국립서울현충원 제1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었다.
마산에 그의 시조를 새긴 ‘가고파 노래비’가 세워졌다.
1990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저서로는 ‘노산 시조집’, ‘민족의 맥박’, ‘조국 강산’, ‘이 충무공 일대기’ 등이 있으며 기행문 ‘피어린 육백 리’가 있다.
이은상의 시조에 홍난파가 가락을 붙인 노래들
(고향 생각) 어제 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 하기
(그리움) 뉘라서 저 바다를 밑이 없다 하시는고
(금강에 살으리랏다) 금강에 살으리랏다 금강에 살으리랏다
(봄 처녀)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옷을 입으셨네
(사랑) 탈 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대 마소
(성불사의 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 소리
(옛 동산에 올라) 내 놀던 옛 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장안사) 장하던 금전 벽우 찬 재 되어 남은 터에
현대 시조를 가사로 쓴 가곡들
<장안사>(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
<별>(이병기 작사, 이수인 작곡)
어제 온 고깃배가 고향으로 간다 하기
소식을 전차하고 갯가으로 나갔더니
그 배는 멀리 떠나고 물만 출렁거리오
고개를 수그리니 모래 씻는 물결이오
배 뜬 곳 바라보니 구름만 뭉기뭉기
때 묻은 소매를 보니 고향 더욱 그립소
1.뉘라서 저 바다를 밑이 없다 하시는고
백천길 바다라도 닿이는 곳 있으리만
임그린 마음이야 그릴사록 깊으이다
2. 하늘이 땅에 이었다 끝 있는양 말지마소
가보면 멀고멀어 어디 끝이 있으리오
임 그린 저 하늘해 그릴사록 머오이다
3. 깊고 먼 그리움을 노래위에 얹노라니
정회는 끝이 없고 곡조는 짜르이다
곡조는 짜를 찌라도 남아 울림 들으소서
금강(金剛)에 살으리랏다 금강에 살으리랏다 금강에 살으리랏다
운무(雲霧) 데리고 금강에 살으리랏다 홍진(紅塵)에 썩은 명리(名利)야 아는 체나 하리오
이몸이 싀어져서 혼이 정녕 있을진댄 혼이나마 길이길이 금강에 살으리랏다
생전에 더럽힌 마음 명경같이 하고저
봄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하얀 구름 너울 쓰고 진주 이슬 신으셨네
꽃다발 가슴에 안고 뉘를 찾아오시는고
님 찾아가는 길에 내 집 앞을 지나시나
이상도 하오시다 행여 내게 오심인가
미안코 어리석은 양 나가 물어볼까나
탈대로 다 타시오 타다 말진 부대(부디)마소
타고 다시 타서 재 될 법은 하거니와
타다가 남은 동강은 쓰올(쓸) 곳이 없느니다
반타고 꺼질진대 애제(아예) 타지 말으시오
차라리 아니타고 생남(생나무)으로 있으시오
탈진대 재 그것조차 마저 탐이 옳으니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윽한 풍경소리
주승은 잠이 들고 객이 홀로 듣는구나
저 손아 마저 잠들어 혼자울게 하여라
댕그렁 울릴제면 더 울릴까 맘 졸이고
끊일젠 또 들리라 소리 나기 기다려서
새도록 풍경소리 들리고 잠 못이뤄 하노라
내 놀던 옛동산에 오늘 와 다시 서니
산천의구(山川依舊)란 말 옛 시인의 허사(虛辭)로고
예 섰던 그 큰 소나무 버혀지고 없구려
지팡이 던져 짚고 산기슭 돌아서니
어느 해 풍우(風雨)엔지 사태(沙汰) 져 무너지고
그 흙에 새 솔이 나서 키를 재려 하는구려
장하던 금전 벽우 찬 재 되고 남은 터에
이루고 또 이루어 오늘을 보이도다.
흥망이 산중에도 있다 하니
더욱 비감하여라
<가람 이병기 '별' >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마루의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 게요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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