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v and Arts

무엇을 남기고 떠날까?

Jimie 2024. 5. 3. 06:14

무엇을 남기고 떠날까? [신동욱 앵커의 시선]

https://www.youtube.com/watch?v=LrMv1H0WesY 

조회수 22,263회 2023. 9. 16. #재벌 #장학생 #앵커의시선

 

미국 석유 #재벌 존 록펠러가 아흔한 살에 처음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 주변 사람들에게 인사합니다. "제 첫 체험입니다. 신의 가호각 있기를" 그러고는 5센트 동전을 꺼내 건넵니다. 노년의 그는 동전을 넣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나눠주곤 했지요. 그가 기독교 선교단체에 10만 달러를 기부했을 땐, 교계에서 '더러운 돈' 논쟁이 불붙었습니다. 냉혹한 독점 기업가의 돈을 받아야 하느냐는 것이었지요.

 

그는 인류 최고의 부자이자 자선가였습니다. 쉰 중반에 희귀병을 앓아 살 날이 얼마 안 남았을 때, 한 목사의 인도로 자선에 눈을 떴지요. 그리고 40여 년을 더 살아 아흔일곱에 눈을 감았습니다. "악과 선은 신의 오른손과 왼손" 이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삶이 그랬습니다.

 

"나는 똥돼지처럼 돈을 벌었다"고 말한 기업인이 있었습니다. "천사처럼 벌지는 못했어도, 천사처럼 쓰겠다" 고 했지요. 이종환 삼영그룹 명예회장입니다.

 

그는 "만인 대 만인의 경쟁시대에 돈을 버는데 거칠 수밖에 없었다"고도 했습니다. "록펠러처럼 내 인생에도 선악의 양면이 있겠지만, 남은 생은 선으로 악을 씻으며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평생 모은 재산 1조7천억 원을 털어 넣어 아시아 최대 개인 장학재단을 세웠습니다. 과학 인재를 중심으로 장학생 만2천 명, 박사 7백 쉰 명을 키워냈습니다.

 

그리고 백 살에 떠났습니다.

그는 점심에 짜장면을 즐겨 '짜장면 회장님' 으로 불렸습니다. 식당 메뉴판 왼쪽은 안 보고, 오른쪽 가격만으로 주문하곤 했습니다. 평생 이면지를 썼고, 해외 출장도 이코노미석을 고집했습니다.

 

그러다 미국에 유학 보낸 둘째 아들이 심한 자폐에 빠진 것을 알고 자책에 휩싸였습니다. 같은 처지의 부모들 마음을 헤아려 큰 병원을 지으려다 눈을 돌린 게 장학사업이었지요. 구순에 서울대 도서관 신축비 6백억 원을 내놓으면서는 "내가 더 벌어봤자 재벌밖에 더 됐겠느냐"고 했습니다.

 

그의 휴대전화에는 저장된 번호가 없었습니다. 필요한 번호는 모두 머리에 담아뒀습니다. 그는 작고하기 3주 전까지 지방 공장들을 돌아다닌 백 세 CEO 였습니다. 록펠러처럼 만년에 나누고 베푸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었을까요?

 

그는 일본 유학시절 마음에 새겼던 구전소설 첫머리를 읊곤 했습니다.

 

'교만한 자 오래가지 않으니 봄밤의 꿈만 같고, 용맹한 자도 마침내 사라지니 가을 바람 앞의 티끌 같구나'

 

그렇게 절간 종소리에 세상사 무상함을 노래하던 계절, 이 가을에 빈손으로 돌아갔습니다. 손에 가득 쥐었던 것들을 다 털어버리고 티끌처럼 날아갔습니다.

 

노벨상을 받는 #장학생 이 나오기를 이제는 하늘에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9월 15일 #앵커의시선 은 '무엇을 남기고 떠날까?' 였습니다.

 

[Ch.19] 사실을 보고 진실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