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 들지 않아서 부터
선천적 후천적으로
토착 반일 무장 정신으로 잘 교육되고 세뇌된 탓이었던지
일본 게다짝 알기를 무조건 우습게 알고 터부시했었다. 멸시는 기본~! ㅎ
나의 인생 하반기에
우연히 접한 일본 노래 엔카 가락이 좋아서 즐겨 듣다가 가사의 그림이 궁금해졌다.
'가'자 뒷다리도 모르는 처지에 사전을 찾아가면서 일본어를 자습하다가 가사를 해독하고 음미하니 그 서정적인 시들이 아름답고 좋아서~...
선율이 아름답고 시가 잘 지어진 엔카를 접하면 반가운 줄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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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접한 野菊むすめ~
미소라 히바리가 노래한 '들국화 처녀(野菊むすめ)'는
그 가사가 이상하게도 인터네트에는 나와 있지를 않아서
화면의 가사를 보고 일본어 한 글자 글자를 찾아 ㅎ 가사를 완성하였것다.
우리말로 알아야 시원할 테이나 ... 해독이 또 장난이 아닌지라.
특히 관용구는 해석이 난해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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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을 우리말로 옮기고 나면 무언가 어색하고 잘 못된 거 같기만 하다...
* 일본어에 능통하거나 번역에 일가견 있는 선지식이 그립다
.
.
화려한 금불초 (金佛草, Ragwort ) ㅎ~
들국화 처럼 보이는 [ Ragwort 금불초, Ragwort 개쑥갓] 이다.
아일랜드,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에서는 독성의 잡초로 간주하여
토지 소유자에게 뤡워트를 (약제 살포 등) 제거할 의무를 법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野菊むすめ / 唄 :美空ひばり
https://www.youtube.com/watch?v=e8OjDuqELng
作詞=米山正夫 作曲=米山正夫 昭和34年 (1959年) 発売曲です。
미소라 히바리 (당시 22세)~
わたしゃ 野に咲く 菊の花 おまえ浮氣な 赤とんぼ
나는야 들에 핀 국화 그대는 떠다니는 고추잠자리
咲いた 花ゆえ 噂ゆえ 止まって おくれよ 赤とんぼ
피어난 꽃 때문에 소문 때문에 멈춰다오 고추잠자리
知らぬ 素振りは 罪つくり 秋風そよそよ とんぼはスイスイ...
모른 척은 죄짓는 일 가을 바람 산들산들 잠자리는 유유히
わたしゃ 內氣な 菊の花 おまえ 小粋な 赤とんぼ
나는야 수줍은 국화 그대는 멋있는 고추잠자리
赤い 帶など チヨンとしめ 乙にすまして 居ける れど
빨간 띠 등 잠시 쉬면서 잘 난체 하고 있지만
羽根に 力が あるものか 秋風そよそよ とんぼはスイスイ...
나래에 힘이 남았을까 가을 바람 산들산들 잠자리는 유유히
わたしゃ 生娘菊の花 お前きらいな 赤とんぼ
나는야 숫처녀 국화 그대는 미운 고추잠자리
逢えぼ ほんとうに つら憎いだけど 別りゃなんとなく
만나면 정말 미워죽겠지만 이별은 어쩐지
こころ淋しい 今日 の空 秋風そよそよ とんぼはスイスイ...
외로운 맘 오늘의 하늘 가을 바람 산들산들 잠자리는 유유히
미소라 히바리(美空 ひばり, 1937년 5월 29일 ~ 1989년 6월 24일) ,본명은 가토 가즈에(加藤 和枝).
일본의 쇼와 시대를 대표하는 쇼와(昭和)의 가희(歌姫)이자 배우로 가요계의 여신(女神).
1937년에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 이소고구 에서 생선가게를 하는 아버지 카토 마스키치(加藤增吉)와 어머니 카토 키미에(加藤喜美枝) 사이에서 태어났다.
.
세이카 학원(精華学園) 고등부를 졸업했으며, 1949년 7월에 《갓파 부기우기(河童ブギウギ)》를 통해 가수로 데뷔했다.
가수로 1,200여 곡의 노래를 취입하였고 배우로서 166편 영화에 출연하였으며 그녀의 노래는 5편의 일본 영화에 등장한다.
52세로 일찌기 폐렴으로 타계. 사후 일본 여성 최초로 국민영예상을 수상했다.
대표곡
-川の流れのように(1989年) - 205万枚
-柔(1964年) - 195万枚
-悲しい酒(1966年) - 155万枚
-真赤な太陽(1967年) - 150万枚
*누적 음반 레코드 판매량 8,000만장 이상으로 (비공식) 일본가수 음반 판매량 1위다.
悲しい酒 - 美空ひばり
1966
作詞:石本美由起, 作曲:古賀政男。
https://www.youtube.com/watch?v=DBpqqhORgYQ
ひとり酒場で 飲む酒は
別れ涙の 味がする
飲んで棄てたい 面影が
飲めばグラスに また浮かぶ
(セリフ)ああ 別れたあとの心残りよ
未練なのね あの人の面影
淋しさを忘れるために
飲んでいるのに
酒は今夜も 私を悲しくさせる
酒よどうして どうして
あの人を
あきらめたらいいの
あきらめたらいいの
酒よこころが あるならば
胸の悩みを 消してくれ
酔えば悲しく なる酒を
飲んで泣くのも 恋のため
一人ぼっちが 好きだよと
言った心の 裏で泣く
好きで添えない 人の世を
泣いて怨んで 夜が更ける
美空 ひばり [ みそら ひばり 芸名 美空ひばり 本名 加藤和枝(かとう かずえ), 1937年(昭和12年)5月29日 - 1989年(平成元年)6月24日]は、日本の歌手、女優。
数々のヒット曲を歌い、銀幕スターとして 多数の映画に出演した。 昭和の歌謡界を代表する歌手、女優である。 横浜市磯子区滝頭出身。横浜市立滝頭小学校、... 経歴 9歳でデビュー(1946年) 年齢 52歳にて永眠(1989年) 生涯レコーディング数 1500曲 オリジナル楽曲数 517曲 美空 ひばり (1937年(昭和12年)5月29日 - 1989年(平成元年)6月24日)は、 数々のヒット曲を歌い、銀幕スターとして多数の映画に出演した。 昭和の歌謡界を代表する歌手、女優である。
横浜市磯子区滝頭出身。横浜市立滝頭小学校、精華学園高等部卒業。 女性として初の国民栄誉賞を受賞した。愛称は御嬢(おじょう)。身長147cm。
デビ
ュー 終戦間もない1945年、喜美枝がひばりを引き続き歌わせるために八方手を尽くし、 私財を投じて自前の「青空楽団」を設立。近所の公民館・銭湯に舞台を作り、 ひばり8歳のときに「美空」和枝(母の提案)の名で初舞台を踏む。 1946年、NHK「素人のど自慢」に出場し、 予選で『リンゴの唄』を歌いひばり母子は合格を確信したが鐘が鳴らない。 審査員は「うまいが子供らしくない」「非教育的だ」「真っ赤なドレスも よくない」という理由で悩んだ挙句、合格にできないと告げた。 1946年9月、横浜市磯子のアテネ劇場で初舞台を踏む。 翌年の春、横浜で行われたのど自慢大会終了後、 審査員をしていた古賀政男のもとにひばり母子は駆けつけ、 「どうか娘の歌を聴いてください!」と懇願する。 ひばりはアカペラで古賀の「悲しき竹笛」を歌った。
데뷔
종전 얼마되지 않은 1945 년 어머니 키미에喜美枝는 ひばり가 계속 노래할 수 있도록 팔방 손을 다 쓰고 사재를 들여 자기 부담으로 "청공 악단"을 설립.
이웃 공민관 목욕탕에 무대를 만들고 ひばり가 8 살 때 "미소라"카즈에 (어머니의 제안) 이름으로 첫 무대를 밟는다.
1946 년 NHK "아마추어 노래 자랑 '에 출전해 예선에서 "사과의 노래 '를 불러 ひばり 모녀는 합격을 확신했지만 종이 울리지 않는다. 심사 위원은 "노래는 잘 하는데 아이 같지 않다" "비 교육적이다" "새빨간 드레스도 좋지 않다 "는 이유로 고민 끝에 합격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1946 년 9 월, 요코하마시이 소고의 아테네 극장에서 첫 무대를 밟는다.
이듬해 봄, 요코하마에서 열린 노래 자랑 대회 종료 후 심사 위원을하는 古賀政男곁에 ひばり 모녀는 달려와 "여하튼 딸의 노래를 들어주세요!"라고 호소한다. ひばり는 아카펠라로 고가(古賀)의 '슬픈 대나무 피리 "를 불렀다.
古賀はその子供とは思えない才能、度胸、理解力に感心し 「きみはもうのど自慢の段階じゃない。もう立派にできあがっている」、 「歌手になるなら頑張りなさい」とエールをもらった。 1947年、横浜の杉田劇場に漫談の井口静波、俗曲の音丸の前座歌手として出演。 以来、この一行と地方巡業するようになる。 高知県に巡業した際、現在の大豊町でひばり母子が乗っていたバスが 前方からのトラックを避けようとした際に崖に転落。 そのまま落ちれば穴内川で全員死亡だったが、運よくバンパーが 一本の桜の木に引っかかりとまった。 ひばりは左手首を切り、鼻血を流し気絶、瞳孔も開き仮死状態だったが、 たまたま村に居合わせた医師に救命措置をしてもらい、その夜に意識を取り戻した。 家に戻った後、父は母に「もう歌はやめさせろ!」と怒鳴ったが、 ひばりは「歌をやめるなら死ぬ!」と言い切った。
고가(古賀)는 그 아이 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재능, 배짱, 이해력에 감탄 "너는 이제는 노래 자랑 단계가 아니다. 이미 훌륭하게 완성되어 있다" "가수가 된다면 노력하라"고 성원을 받았다.
1947 년 요코하마 스기타 극장 만담의 井口静波, 俗曲 의音丸의 오프닝 가수로 출연. 이후 이 일행과 지방 순회를 하게된다. 고치현에 순회 공연했을 때, 현재의 大豊町 마을에서 ひばり 모녀가 타고 있던 버스가 전방의 트럭을 피하려고했을 때 절벽으로 전락 。
그대로 떨어지면 穴内川에서 전원 사망했지만, 운이 좋게 범퍼가 한 그루의 벚꽃 나무에 걸려 띄었다. ひばり는 왼쪽 손목이 짤리고 코피를 흘려 기절, 동공도 열려 가사 상태 였지만, 우연히 마을에 마침 의사에 구명 조치를 받고, 그 밤에 의식을 되찾았다.
집에 돌아온 후,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이제 노래는 그만 시켜라!"라고 고함 쳤다, ひばり는 "노래를 그만 두느니 차라리 죽겠다!"라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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