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은 25일 경남 양산 자택 인근에서 서점 ‘평산책방’ 현판식을 열었다. 그는 퇴임 전부터 ‘잊힌 사람’이 되고 싶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런데 퇴임 만 1년도 안 된 시점에 책방 영업을 시작하면서 사실상 현실 정치에 개입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정치권 안팎에서 나왔다.
문 전 대통령은 아내 김정숙 여사와 이날 오후 5시 5분쯤 자택에서 170m 떨어진 평산책방에 모습을 드러냈다. 백발에 수염을 기른 문 전 대통령은 청바지에 남색 재킷 차림이었다. 주민 40여 명이 문 전 대통령 부부를 환영했다. 문 전 대통령은 ‘평산책방’ 한글 현판을 만지며 웃었다. 현판 디자인은 이철수 판화가가 했다.
주민들과 막걸리와 수육, 다과를 나누면서 문 전 대통령은 개점 소감을 밝혔다. 그는 “평산책방이 드디어 문을 열게 돼 무척 기쁘다”며 “책방이 명소가 돼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 인사말에선 자신을 ‘책방지기’로 지칭했다. 그는 이날 책방을 찾은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 일행에게 “내일 오셨으면 책을 하나씩 사셔야 했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책방 영업은 26일부터 시작한다. 문 전 대통령은 하루 한 번 방문객을 맞이한다고 한다. 27일에는 첫 초대 작가로 소설가 정지아(58)씨를 부를 예정으로 알려졌다. 실제 남로당에서 활동했던 빨치산 아버지의 일대기를 다룬 정 작가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2021)는 최근 25만부 넘게 팔렸고 동인문학상 후보작에 올랐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트위터에서 이 책을 추천하며 “해학적인 문체로 어긋난 시대와 이념에서 이해와 화해를 풀어가는 작가의 역량도 감탄스럽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곳을 거점으로 온라인 북클럽도 운영할 계획이다. 그는 이날 인사말에서 “책방의 중심은 북클럽 ‘책 친구들’”이라며 “함께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나누며, 저자와의 대화 같은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은 현직 때부터 SNS에서 책을 자주 추천했다. 퇴임 이후에도 20권 넘는 책을 소개했다. 출판계에선 ‘문재인이 소개하면 팔린다’는 속설이 나돌 정도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도 일단은 출판·문화 영역에서 활동하지 않겠느냐”며 “정치 현안에 대해 발언하는 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고 했다. 문 전 대통령 역시 “책방 수익은 전액 재단(평산책방)에 귀속되고, 이익이 남으면 공익 사업에 사용할 계획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전후해 문 전 대통령이 어떻게든 현실 정치에 영향을 끼칠 것이란 전망도 만만찮다. 최근 민주당이 돈 봉투 사태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로 위기에 빠진 상태에서 평산책방이 친문(親文) 세력의 결집지가 될 수도 있다고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현판식 안내지에서 “책의 힘을 믿습니다. 책은 더디더라도 세상을 바꿔 나간다고 믿습니다”라고 썼다.
평산책방은 문 전 대통령 장서 1000권을 비롯, 3000여 권 규모로 개점했다. 하층 노동자의 삶을 그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 5·18의 상흔을 담은 ‘소년이 온다’(한강) 등이 눈에 띄었다. ‘문재인이 추천합니다’ ‘문재인의 책’ 같은 코너도 있었다. 이날 비가 오는 데다 현판식이 비공개였음에도 많은 시민이 찾았다. 부산에서 왔다는 40대 박모씨는 “대통령이 계시는지 궁금해서 왔다”고 했다. 주민 신한균씨는 “이곳을 잘 가꾸자고 한마음 한뜻으로 결의했다”고 했다. 이날 평산마을 입구에선 보수 유튜버들이 시위를 했다. 일부 주민은 서점 개점 이후 집회 소음 피해가 커질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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