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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이 외친 ‘유검무죄 무검유죄’... 감옥에서 나온 말이었다

Jimie 2023. 2. 24. 05:50

이재명이 외친 ‘유검무죄 무검유죄’... 감옥에서 나온 말이었다 [유석재의 돌발史전]

그 원전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1950년대 이후 교도소의 유행어

입력 2023.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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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검무죄(有檢無罪) 무검유죄(無檢有罪).’

정치권에서 최근 종종 들리는 이 말에 대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 이것은 여러 사람들이 한동안 많이 쓰던 토사구팽(兎死狗烹)이나 읍참마속(泣斬馬謖)이나 고육지책(苦肉之策)처럼 고전을 원전으로 한 고사성어가 아닙니다. 그냥 만들어 낸 말입니다. 무슨 깊은 뜻이 함축돼 있는 조어(造語)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말이 자꾸 나오고 여러 차례 재탕됩니다. 지난 22일엔 더불어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도대체 이재명 의원이 뭘 잘못했나. 검사독재 윤석열 정권이 없는 죄를 만들어낸 것 아닌가”라며 “‘유검무죄 무검유죄’ 그들만의 원칙에 따라 창조된 혐의”라고 했습니다.

 

최근 들어 이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였습니다. 지난해 11월 19일 정진상 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소환되자 “유검무죄 무검유죄다. 조직의 칼날을 아무리 휘둘러도 진실은 침몰하지 않음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관련 2차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2023.2.10/뉴스1

 

그런데… 이게 과연 무슨 뜻일까요? 검사(검찰)가 있으면 죄가 없고, 검사(검찰)가 없으면 죄가 있다? 죄(혐의)를 찾아내 기소를 하는 사람이 검사 아니었나요? ‘유검유죄 무검무죄’라 해야 오히려 그나마 이해가 되는 말이 아닐까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지난해 11월 23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였을 것입니다.

 

한 법학 전문가는 언론 기고에서 이런 해석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검찰이 하면 모든 게 무죄, 검찰이 아니면 모든 게 유죄라는 말이다.”

………?

더더욱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자, 이 말의 해석에서는, 이것이 원래 있던 이런 말을 패러디 또는 비튼 것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

돈이 있으면 무죄가 되고, 돈이 없으면 유죄가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유전(有錢)’은 ‘돈을 가진다’ ‘돈을 소유한다’는 의미니 이 말을 변형한 ‘유검무죄 무검유죄’에서 ‘유검(有檢)’은 ‘검사를 가진다’ ‘검사를 소유한다’는 뜻이 됩니다. 다시 말해 여기서 ‘유(有)’는 ‘있다’는 뜻이지만 ‘(스스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그것을) 소유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검사를 가지고 있으면(=검사가 자기 편이면) (=검사와 우호적인 관계이면) (=검찰 조직을 가지고 있는 권력, 즉 현 정부 세력이면) (=검찰 조직이 내 손 안에 있다면) 무죄가 된다는 것이죠.

반대로 검사가 없으면(=검사가 자기 편이 아니면) (=검사와 적대적인 관계이면) (=검찰 조직을 가지고 있지 않는 권력, 즉 야당 세력이면) (=검찰 조직이 내 손 안에 없다면) 유죄가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해선 민주당 이용빈 의원이 라디오에 나와서 ‘검찰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죄가 없고, 검찰 권력이 없으면 죄가 있는 것’이라고 명백히 설명했고,(http://www.ikbc.co.kr/article/view/kbc202301190066) 이에 대해 당 차원에서 오해가 있었다는 말을 한 적도 없으니 맞는 해석으로 봐야 합니다.

(최근 곽상도 전 의원 아들에 대한 판결에 대해 ‘유검무죄 무검유죄’란 말을 쓰기도 합니다만, 그러면 윤미향 의원에 대한 판결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유검무죄, 어? 그런데 무검무죄’인가요.)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청년위원회 관계자들이 20일 전북 전주시 전주지방검찰청 앞에서 곽상도 전 의원 아들 50억 퇴직금 무죄 판결에 대한 규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3.2.20/뉴스1

 

하지만 ‘유검무죄 무검유죄’라는 말 자체는 무척 어색하고 억지스러운 문장일 뿐입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원래 말을 알아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할 근거라도 생긴다는 점에서 말이죠. 차라리 ‘친검무죄(親檢無罪) 소검유죄(疏檢有罪)’라 한다면 뜻은 훨씬 잘 통했겠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리드미컬한 패러디와 유·무의 대비에서 오는 잔재미는 없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유검무죄 무검유죄’란 말이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검사나 검찰이 마치 지갑 속의 돈처럼 최고 권좌에 오른 권력자가 손 안에 쥐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말을 뒤집어보면 이런 의미를 읽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대통령에 당선됐더라면 무죄가 됐을 텐데!’

 

이보다 작지 않은 문제가 그 오리지널 텍스트에 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누구 때문에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는지 기억하십니까? 여기서 우리는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게 됩니다.

 

지강헌.

1988년 10월 8일 영등포교도소에서 공주교도소로 이감되던 중 12명과 함께 집단 탈주하고 서울 시내로 잠입, 10월 15일부터 16일까지 북가좌동에서 공범 3명과 함께 인질극을 벌이다 경찰에게 사살당한 탈주범이자 인질범이었습니다. 이 인질극 장면은 TV로 생중계돼 큰 충격을 던져줬습니다.

 
1988년 10월 16일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가정집에서 인질극을 벌이던 탈주범 지강헌이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겨누고 있다.

그가 포위된 상태에서 사람들을 향해 외친 말이 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였습니다. 수많은 권력자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검거되고 나서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것을 본 사람들은, 비록 지강헌을 동정하는 것은 아니라 해도 이 말만큼은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당시 어린 나이였던 저는 뭔가 이상했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란 말을 지강헌이 처음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분명히 저는 그 말을 그 사건 전에 본 적이 있었습니다. 집 근처 도서관의 4층 복도 벽에 누군가 쓴 낙서에서였습니다. ‘그럼 그걸 지강헌이 썼나?’ 잠시 섬뜩했습니다만 그는 교도소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새로 지은 그 도서관에 들어갔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된 것인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옛 기사를 검색해 봤습니다.

놀랍게도 신문에서 그 말이 처음 확인되는 것은 지강헌 사건 때가 아니었습니다!

 

1955년 7월 22일자 경향신문 3면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문답 형식으로 구성된 세태 풍자 코너 ‘경향쌀롱’의 ‘죄수들의 한탄’이었죠. 내용은 이랬습니다.

<문=형무소 속에 있는 죄수들이 이즘 신세타령을 할 때에 어떻게 하는지 아시는지요.

답=무전유죄(無錢有罪) 유전무죄(有錢無罪)라고 중얼거리면서 한숨을 푹 내어쉽니다.>

이 말이 이미 지강헌보다 33년 전에 교도소의 재소자들 사이에서 신세타령용으로 쓰였던 것입니다.

 
경향신문 1955년 7월 22일자 3면 기사. '무전유죄 유전무죄'란 말이 '죄수들이 신세한탄하는 말'로 등장한다. 지금까지 확인된 이 말이 등장한 기사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그 다음, 1964년 11월 21일자 동아일보 1면 ‘팔각정’ 코너의 ‘무전은 유죄, 유전은 무죄’에서는 우리에게 무척 익숙한 인물이 이 말을 인용합니다.

 

<김대중(金大中) 의원은 “감옥에 가 보면 무전(無錢)이면 유죄(有罪)고 유전(有錢)이면 무죄(無罪)라는 말이 있으니 판·검사 및 교도관들의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재소자의 인권 개선이 아니라 ‘판·검사와 교도관의 처우 개선’을 앞세운 것이 좀 의외긴 합니다.

 
동아일보 1964년 11월 21일자 1면 ‘팔각정’ 코너. 맨 왼쪽에 김대중 의원의 멘트 중 "감옥에 가 보면 무전이면 유죄고 유전이면 무죄라는 말이 있다"는 내용이 있다.

 

1970년 7월 17일자 조선일보 1면 ‘만물상’에서는 이런 말도 나옵니다.

<흔히 쇠고랑을 찬 잡범배들이 “유전(有錢)이면 무죄(無罪), 무전(無錢)이면 유죄(有罪)”라고 붉은 집 담벼락에다 새긴다고 들었다.>

 

지강헌 사건이 일어난 1988년 이전까지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에서 검색된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등장하는 기사는 모두 27건입니다. 종합해 보면 교도소를 둘러싼 부조리 때문에 재소자들이 넋두리로 하는 1950년대 이래의 유행어였고, 한편으로는 재소자들이 자신의 죄를 뉘우치지 않고 변명하기 위해 쓰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그 말을 이곳저곳에 낙서하는 일도 생긴다고 했습니다(이로써 도서관 낙서가 과연 누구의 소행이었는지 대략 짐작하게 됐습니다). 탈주범 지강헌은 자신이 그 말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오랜 옥중 생활로 인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 말을 인질극 중 뱉어냈던 것입니다. 다만 이 말이 감옥 밖에서도 유명하게 된 것은 분명 지강헌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유검무죄 무검유죄’라는 희한한 신조어의 원 텍스트는 감옥에서 유래된 말이었습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들이 있습니다.

‘죄를 짓고서도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권력층을 질타하는’ 이 말이 과연 이재명 대표에게 어울리는 말일까요?

한편으론 ‘죄를 지은 잡범들이 뉘우치지 않고 스스로를 변명하기 위해’ 했던 말이라는 것에 비춰보면 또 어떨까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상임고문의 발언을 듣고 있다. 2023.2.22/뉴스1

 

다시 곰곰이 ‘유검무죄 무검유죄’란 말을 생각해 보면, ‘검찰을 소유하고 있던 문재인 정부 시절에는 아무리 검찰이 수사를 해도 나를 잡아가지 못했는데, 민주당이 검찰을 소유하지 못하게 됐으니 이제 나는 잡혀가겠구나’라는 의미가 읽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말의 원 텍스트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1950년대부터 내려온 고색창연한 교도소의 유행어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의외로 묘하게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네 그렇습니다. 교도소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이제 과연 어디로 돌아갈까요.

 

▶'유석재의 돌발史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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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에서 학술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유석재 기자의 돌발史전'과 '뉴스 속의 한국사'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메일은 karma@chosun.com 입니다. 언제든지 제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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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hh
 
2023.02.24 00:04:28
리재명의 활용어휘를 보면 범죄자나 깡패들이나 쓰는 말을 가져다 말함
답글작성
106
3

2023.02.24 00:15:11
자기죄 인정하고 반성하는 일반국민은 있어도 자기죄 인정하고 반성하는 정치인은 없다. 이들은 증거가 산더미처럼 나와도 죄없다고 항변한다.
답글작성
99
3

JMS
 
2023.02.24 00:35:11
재명이 힘들지 들어가서 푹 쉬어 세상 그만 어지럽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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