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놈 배격 기운 고조되게...” 제주간첩단에 보낸 北지령 보니
김정은을 총회장님 지칭하고
“흠모심으로 대중투쟁력 높여라”
“反보수 투쟁에 촛불단체들 내와라”
“노조들 참가시켜 전투력 높여야”
전국 규모의 북한 간첩단이 적발됐다. 당초에는 제주의 ‘진보 정당’ 간부 등이 2017년 캄보디아에서 북한 문화교류국의 대남 공작원 김명성을 만나 “제주도 내 ‘ㅎㄱㅎ’이라는 지하 조직을 설립하라”는 지령을 받은 뒤 반(反)정부 및 이적(利敵) 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안 당국이 수사를 확대하면서 제주뿐 아니라 경남권(창원·진주), 호남권(전주), 수도권(서울) 등에 포치된 전국 규모 간첩단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이에 대해 당사자들은 ‘공안탄압’이라며 반발하는 한편, 국정원장 등을 ‘피의사실공표죄’로 고발하고 나섰다.
《월간조선》은 ‘ㅎㄱㅎ’이 북으로부터 받은 지령문 일부를 입수했다. 북한은 ㅎㄱㅎ를 ‘대학원’으로, 조직원은 ‘대학원생’으로, 제주는 ‘ㅈㅈ’으로, ㅎㄱㅎ 총책인 강모씨는 ‘원장님’으로, ㅎㄱㅎ 조직원 이름은 초성을 반대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표기했다. 만일 ‘김철수’라면 ‘ㅅㅊㄱ’이 되는 식이다. 북한문화교류국은 ‘연구원’이고 김정은은 ‘총회장님’이다.
[2021년 10월 19일 자(字) 지령문]
대학원(제주 지하조직-편집자 주)에서는 진보당 ㅈㅈ(제주-편집자 주)도당과 민주노총 ㅈㅈ본부 4.3 통일위원회, 전농 ㅈㅈ도연맹을 비롯한 영향 하에 있는 단체들, ㅈㅈ 지역 안의 반전평화옹호단체들을 발동해 바이든 행정부가 떠드는 <외교적 관여>와 <전제 조건 없는 대화>의 기만성을 낱낱이 폭로단죄하면서 <합동군사 연습중단> <한미일군사동맹해체> <미국산첨단무기도입반대> 등의 구호를 들고 항의 집회, 농성시위와 같은 반미투쟁들과 <5.24 조치> 해제 등 남북관계개선을 요구하는 서명운동, 결의대회, 항의방문과 같은 대중투쟁을 연속 전개해 압박의 도수를 높여야 할 것입니다.
[2022년 3월 29일 자 지령문]
이를 위해 우수한 핵심들과 군중적 지반이 좋은 진보 운동가들로 선거운동본부를 구성하며 대학원에서 장악하였거나 영향 하에 있는 <민주노총 4.3 통일위원회>와 <민주일반노조연맹 제주본부> <학교비정규직 노조 제주 지부> <건설노조 제주지부>를 비롯한 노조단체들과 <전농 제주도연맹> <전녀농제주도연합> <서귀포시민연대>와 같은 각계 층 진보운동 단체들을 발동해 진보당 후보들을 밀어주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지지선언운동을 벌여나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중략) 민주노총 4.3 통일위원회와 6.15 ㅈㅈ(제주)본부와 같은 통일운동단체들을 총동원해 한미합동군사연습을 반대하는 대중투쟁을 집중 전개하여 취임을 앞둔 윤석열은 물론 미국과 군부에도 강력한 압박공세를 들이대야 합니다.
[2022년 4월 19일 자 지령문]
대학원에서는 영향 하에 있는 민주노총 ㅈㅈ본부 4.3 통일위원회와 6.15ㅈㅈ본부와 같은 통일운동단체들을 발동해 보수집권 세력의 사대매국적이며 반통일정책을 반대하는 다양한 실천투쟁들을 광범위하게 조직 전개하는 것과 함께 북침전쟁 연습의 철회와 미군기지 철폐, 북남선언이행을 내들고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대중투쟁들을 전개해 윤석열놈을 규탄 배격하는 사회적 기운이 지속적으로 고조되게 하는데 힘을 넣어야 합니다.
[2022년 6월 9일 자 지령문]
노조단체들을 4.3과 8.15를 비롯한 여러 계기들에 반미 자주화를 위한 대중투쟁에 적극 참가시켜 조직력과 전투력을 부단히 높여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ㅇㅎㅂ(ㅎㄱㅎ 조직원 박모씨의 초성을 반대로 쓴 것-편집자 주)가 지도하고 있는 민주노총 ㅈㅈ본부 4.3 통일위원회를 중심으로 전국민주 일반노조 제주본부와 전국건설노조 제주지부를 비롯한 영향 하에 있는 노조단체들을 결속시켜 노동자통일선봉대를 조직하고 반미자주화를 위한 대중투쟁에서 선봉적 역할을 해나가야 하겠습니다.(중략)
진보운동권에서 조직력과 단결력, 전투력과 완강성이 강한 노동자들을 조직화하여 대중운동의 앞장에 내세워야 다른 모든 계급계층의 선두에서 지역대중을 통일운동에로 견인해나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원장님(총책 강모-편집자 주)이 ㅇㅎㅂ(박씨)에게 먼저 노동자들을 조직화하는 사업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해 옳게 인식시켜야 할 것입니다.
[2022년 8월 19일 자 지령문]
연구원(북한 문화교류국)에서는 첫 상봉(2017년 7월 29일)시 우리 위업의 승리를 위해 굴함 없이 투쟁할 의지를 가다듬던 그날의 활기에 넘친 원장님(총책 강씨)의 모습을 항상 그려보며 반드시 건강이 회복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2022년 10월 31일 자 지령문]
ㅈㅈ후원회와 민주노총 4.3 통일위원회, 민주일반노조연맹 ㅈㅈ본부,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ㅈㅈ지부, 전국건설노조 ㅈㅈ지부를 비롯한 노조단체들과 전농 ㅈㅈ, 전여농 ㅈㅈ도연합, 서귀포시민연대 등 진보운동 단체들을 내세워 지역 안의 반보수투쟁 단체들을 재정비하고 확대 개편하는 방법으로 초불(촛불의 북한식 표기-편집자 주)투쟁 단체들을 내오고 여기에 지역 내 중도 층을 가능한껏 망라시켜 투쟁동력을 부단히 확보해나가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총책 강씨, 2017년 北에 ‘충성맹세’
지령문을 보낸 북한 문화교류국은 노동당 직속 대남 공작 조직이다. 북한 정권 수립 초기부터 대외연락부, 사회문화부, 225국 등으로 이름을 바꿔가며 간첩 남파 등의 임무를 수행해왔다. 1992년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1994년 구국전위, 1999년 민족민주혁명당, 2006년 일심회, 2011년 왕재산 등 각종 간첩 사건에 개입했다.
시작은 2017년 7월 29일이다. 제주 출생으로, 제주 진보정당 핵심 간부인 ㅎㄱㅎ 총책 강모씨는 이날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대남공작원 김명성을 접선했다. 이들은 시엠레아프 소재 아파트형 숙소에서 이틀간 회합(會合)했다. 이 과정에서 강씨는 “조국통일 위업의 승리를 위해 굴함 없이 투쟁하겠다”고 ‘충성맹세’(2022년 8월 19일 자 지령문 참조)를 하고 암호 프로그램 사용법에 대한 간첩통신 교육도 받았다.
암호장비를 수수한 후 귀국한 강씨는 2017년 8월부터 문화교류국에서 요구한 전송 방법에 따라 수차례 대북 통신 문건을 주고받았다. 방첩 당국에 따르면 압수수색이 시작된 지난 2022년 11월 9일 직전인 2022년 11월 4일까지도 북측과 연락했다.
◇제주간첩단 규모, 최소 17명
강씨는 2017년 7월 접선 이후 북한의 지령에 따라 고모씨, 박모씨와 함께 ㅎㄱㅎ를 구성했다. ㅎㄱㅎ는 노동부문(한길회), 농업부문, 진보정당 및 여성부문으로 편재된다. 노동부문은 박모씨, 농업부문은 고모씨, 진보정당과 여성부문은 총책 강씨가 책임지도를 맡았다.
각 부문 아래에는 책임지도 아래 각각 2명(노동), 3명(농업), 7명(진보), 2명(여성)의 지도성원을 뒀다. 이에 따라 제주간첩단은 확인된 것만 17명 규모다. 이들 지도성원들이 다시 포섭한 하위 조직원들이 있다면, 그 수는 훨씬 많을 것으로 보인다.
방첩 당국에 따르면 문화교류국이 ㅎㄱㅎ에게 내린 지침은 이렇다.
“‘총회장님(김정은)에 대한 흠모심과 한국사회 변혁의 필요성을 정확히 인식하는 학습체계’로 대중투쟁 지도 능력을 높이라. 간결한 조직과 지휘통솔 체계를 갖고 지도부와 지도성원 간 단선(單線) 연계로 조직 활동 비밀을 목숨으로 지키라. 비합법의 활동을 반합법과 합법으로 잘 위장하라.”
‘ㅎㄱㅎ’의 정확한 의미는 현재까지 파악 중이다. ‘한길회’의 초성이라 추정할 수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ㅎㄱㅎ 하부 박씨가 이끄는 노동부문의 이름이 이미 한길회이기 때문이다. 이는 ‘조국통일의 한 길을 가겠다’는 의미다.
◇‘ㅎㄱㅎ’의 8가지 활동
방첩 당국은 ㅎㄱㅎ가 북한의 지침에 따라 총 8가지 활동을 추진했다고 보고 있다. 우선 ▲ 민노총 제주본부 4·3 통일위원회 장악을 통해 반미(反美) 자주화 투쟁을 확대했다. 2022년 6월 9일 자 지령문에서 보듯 북한은 ㅎㄱㅎ에 민노총 제주본부 4.3 통일위원회 등 노동 분야에 대한 조직화를 계속적으로 요구했으며, 방첩 당국은 이들이 ‘노동자통일학교’ 및 ‘노동자통일선봉대’를 결성해 소위 ‘반미자주화 대중투쟁’을 확대하고 있는 사실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 진보당 제주도당 장악과 제주 지역 진보운동 세력의 통합도 추진했다. 정치권에 따르면 실제로 강씨 등은 진보당 제주도당 요직에서 활동했고, 주요 당직(當職)에 이번 사건과 연계 혐의가 있는 인물들을 배치했다.
최근 북 지하조직들은 노조, 정당 등 합법적인 단체에 침투해 조직을 장악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데, ㅎㄱㅎ는 전국회의 제주지부, 민주노총 제주본부, 진보당 제주도당,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제주본부 등을 대상으로 삼았다. 북한은 이를 통해 ‘지역 진보 운동의 정치적 구심체’로의 역할을 강조하고 선거 시기 ‘반(反)보수 투쟁’을 할 것을 지령했다. 2022년 6·1 선거를 앞둔 2022년 3월 29일 자 지령문에서 보듯 북한은 “각계 층 진보운동 단체들을 발동해 진보당 후보들을 밀어주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지지선언 운동을 벌여 나갈 것”을 지령하기도 했다. 실제로 2022년 5월 17일 민노총 제주본부는 제주도청 앞에서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출마자 중 진보 진영 후보들을 지지한다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反윤·反보수·反정부·反미 투쟁 추진
▲ 반윤·반보수·반정부·반미 투쟁을 결부시켜 지속적으로 불법 집회·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박씨가 활동 중인 민노총 제주본부는 ‘4·3 통일위원회’를 중심으로 반미투쟁, 통일전선투쟁, 한미군사훈련 반대 투쟁을 했다. 박씨는 또한 제주촛불문화제(2022.11.5), 윤석열 퇴진 제1차 제주촛불행동(11.12), 윤석열 퇴진 제2차 제주촛불행동(11.19), 윤석열 퇴진 제3차 제주촛불행동(11.26) 등의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22년 8월 22일 진보당 제주도당은 ‘민생에도 평화에도 도움 되지 않는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하라’ 제하의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촉구 성명을 발표했다. 강씨는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연합훈련 중단 등을 주제로 언론 기고도 했다.
이 밖에도 이들은 ▲ 국가기밀 탐지·수집·전달 등 지령 수수 및 대북 보고를 위해 진보당의 핵심당원, 분회결성 사항, 후원회 명단을 수집해 보고했다. ▲ 주체사상·선군정치·김정은 등 위대성 선전·교양 사업도 추진했다. 2022년 6월 9일에는 핵심수련생 4명에 대한 사상교육 진행 상황, 2022년 9월 9일에는 핵심수련생의 개별교양 진행 및 학습 소모임 상황 등을 보고했다. 방첩 당국은 박씨, 고씨, 강씨가 쓰는 아지트 압수수색을 통해 ‘애국시대’ ‘녹슬은 해방구’ 등 이적표현물도 압수한 상태다. ▲ 노동·농민 생존권 및 지역현안 문제로 진보 세력 연대 추진과 ▲ 특정인물 포섭 및 정치·군중 공작도 진행했다. 그러면서 ▲ 지하조직 활동의 비밀성을 유지했다.
◇창원 거점 ‘자통’과 한 몸처럼
ㅎㄱㅎ 사건을 수사 중인 국정원과 경찰은 이들 지하조직이 경남 창원과 진주, 전북 전주 등 전국 각지에 결성된 정황도 포착했다. 이들은 ㅎㄱㅎ과 마찬가지로 문화교류국의 지령을 받아 지하조직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반정부 및 이적 활동 등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창원에 지역별 지하조직을 총괄하는 ‘자주통일 민중전위(前衛·이하 자통)’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수사 당국은 이와 관련, 지난 11월 창원에서 활동하는 진보·좌파 단체 관계자 최소 4명의 거주지 등을 압수수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2016년 무렵 창원에 ‘자통’을 설립하고 수시로 북측 지령문을 받은 뒤 반미 집회, 반보수 투쟁 시위 등을 벌여온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 당국은 자통의 거점이 방산업체가 몰려 있는 창원이라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수사 당국은 ㅎㄱㅎ와 자통의 조직원들이 상당수 겹치는 점과 북한으로부터 같은 지령을 받고 움직인 점 등을 미루어 개별 조직이 아니라, 사실상 한 몸처럼 움직인 조직으로 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두 단체가 긴밀히 연결된 가운데, 다른 지하조직이 더 있을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다.
한편 자통과 ㅎㄱㅎ 등은 “윤 정부가 실정(失政)을 덮기 위해 공안몰이를 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자통 측은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2018년 창원 세계사격선수권 대회에 참가한 북한 선수단을 응원하고, 개성공단 재가동 촉구 집회, 친일·적폐청산 집회 등 시민단체의 고유 활동을 했을 뿐”이라면서 “북한의 지령을 받거나 배후 조종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제주 지역 진보 진영 인사들도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ㅎㄱㅎ의 활동과 관련 ‘공안탄압저지 및 민주수호 제주대책위’는 지난 1월 12일 기자회견을 열고 “북측과 접촉한 사실이 없으며, 자통과도 특별한 인연이 없다”고 했다. 이들은 그러면서 “언론 보도대로라면 제주해군기지, 윤 정부 규탄 등 정부 정책을 비판하거나 진보정당을 지지하는 행위 등이 모두 북한의 지령을 받아 활동한 것이 된다”며 “기자회견 주최 등 단체들의 자발적인 활동을 북한과 연계시키려는 시도에 황당하기 그지없다”고 했다.
그러나 수사 당국 측은 “이들이 제3국에서 북한 대남공작조와 접촉하고, 지속적으로 북한 지령문을 수령한 구체적 정황을 포착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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