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s

‘내 옛날 온 꿈이’ '주미옥(朱美玉)'

Jimie 2022. 11. 26. 19:11

최양숙

최양숙(1937년),함경남도 원산출생이며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1958년 '눈이 내리네'로 데뷔를 하였다. 1966년 제2회 TBC 가요대상에서 '황혼의 엘레지'로 대상을 수상하였다. 대표곡으로 황혼의 엘레지,가을편지,세노야 등 수많은 곡이 있다. 준수한 외모와 서정적인 음색으로 1960~70년대 걸쳐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최양숙(崔良淑), 본명이다. '양(良)'자는 '좋다, 뛰어나다, 또는 아름답다'라는 뜻을 갖고 있고 '숙(淑)'자는 '맑고 깊다, 혹은 정숙하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이 이름 그대로 '맑고 깊은, 그리고 뛰어난 가창력으로 아름다운 노래를 주로 부른' 가수였다.

 

한운사 작 ‘어느 하늘 아래서’의 주제가. ‘눈이 내리는데’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노래가 연속극 주제가로 방송되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최양숙은 서울대 음대 학장실에 불려간다. 그리고 당시 학장이었던 작곡가 현제명으로 부터 ‘목소리의 주인공이 아니냐?’는 추궁을 당한다. 특히 노래 중 '모두가 세상이 새하얀데...' 라는 후렴구의 고음 부분에서 최양숙의 특징이 확연히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최양숙은 서울음대 성악과에 재학 중 중앙방송국(현 KBS) 전속합창단에 들어가 활동하던 중 당시 라디오 드라마 ‘어느 하늘아래서’의 주제가인 ‘눈이 내리는데’를 첫 녹음한 이후 영랑의 시에 손석우 선생이 곡을 붙인 ‘내 옛날 온 꿈이’를 음반으로 발표했다. 가수 최양숙이 처음 음반으로 취입한 이 노래는 '주미옥(朱美玉)'이란 이름으로 표기되어 발표된다. 본인의 이름을 밝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 옛날 온 꿈이’ 

'주미옥(朱美玉)' 

김영랑  시 ,  손석우  곡

 

내 옛날 온 꿈이 _김영랑

 

 

내 옛날 온 꿈이 모조리 실리어 간

하늘가 닿는 데 기쁨이 사신가

 

고요히 사라지는 구름을 바래자

헛되나 마음 가는 그곳뿐이라

 

눈물을 삼키며 기쁨을 찾노란다

허공은 저리도 한없이 푸르름을

 

엎디어 눈물로 땅 우에 새기자

하늘가  닿는 데 기쁨이 사신다

 

내 옛날 온 꿈이

https://www.youtube.com/watch?v=IPMusWMMqko 

 

내 옛날 온 꿈이 · 앙상블 리릭
Released on: 2021-03-30

Composer: 황미래
Lyric
ist: 김영랑

 

 

[박성서의 7080 가요 X파일] '가을 편지'의 샹송가수 최양숙 (2)

입력 2006. 9. 21. 09:10 수정 2006. 9. 21. 09:10
 

[서울신문]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 목소리의 노래가 방송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학장실에 불려가 추궁까지 당했던 가수 최양숙. 당시 여건에서 명문대생이 대중가요 가수로 활동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아울러 그 무렵 연습 삼아 불러보았던 또 한 곡의 노래가 '내 옛날 온 꿈이(김영랑 시, 손석우 작곡)'. 가수 최양숙이 처음 취입한 이 노래 역시 매우 생소한 이름,'주미옥'이란 이름으로 표기되어 발표된다. 본인의 이름을 밝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양숙은 대학을 졸업한 것과 때를 같이해 방송국 합창단 활동을 접고 모교인 서울예고의 음악교사로 교단에 선다. 그러나 1년 뒤 교편생활을 접고,'최양숙'이라는 본명으로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한다. 첫 히트곡은 '황혼의 엘레지(박춘석 작사, 작곡)'. 이 노래를 시작으로 그녀는 작곡가 박춘석씨를 비롯해 손석우, 김광수, 최창권, 김호길, 김인배, 김민기 등 대부분 대중적이라기보다는 음악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작곡가들과 손잡고 분위기 있는 곡들을 주로 발표한다.

 

가창력과 표현력이 뛰어났던 그녀는 해외무대로도 진출한다.67년, 몬트리올국제박람회장의 한국관에서 공연을 갖기도 했던 그녀의 활동을 지켜본 작곡가이자 일본 NHK방송국의 합창단 지휘자 '고지 요시유키(新律善行)'에 의해 일본에서 활동할 것을 권유받고 일본 진출을 시도한 것.

 

최양숙씨가 이때 사용한 예명은 '베로니크(VERONIQUE)', 그녀의 가톨릭 본명이다. 음반 타이틀은 'MIDNIGHT SPECIAL 11 P.M'. 타이틀 그대로 '매혹적인 밤의 무드'를 달콤하게 그리고 있는 이 노래들은 '클래식과 대중가요'의 접목이라 할 만큼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세미클래식의 장르를 한껏 구사하고 있다. 정통 음악도의 길을 걷고자 했다가 대중가요가수로 전향해 활동하던 그녀가 비로소 일본무대를 통해 역행했던 자신의 길을 다시 되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듯했다.

 

'클래식 기법의 노래들을 클래시컬한 창법으로, 그리고 아름다운 노래를 아름다운 발성으로 채색해, 들을수록 여자의 사랑스러움이 배어난다.'는 것이 당시 한 일본 평론가로부터 받은 호평의 일부다. 그러나 이러한 찬사를 받을 만큼 뛰어난 음악성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들은 빛을 보지 못하고 이내 묻히고 만다.

 

"당시 일본인 매니저로부터 이전 한국에서의 활동 경력을 접고 다시 신인으로 시작해야 할 것을 요구받았고 아울러 '한국인 가수임을 가급적 강조하지 말아 달라.'는 조건을 제시해왔기 때문이었어요. 받아들일 수 없었지요." 그녀의 회고다.

 

결국 이 조건에 응할 수 없었던 최양숙은 적극적으로 활동할 의욕을 잃고 음반만을 취입한 뒤 곧바로 귀국한다.

 

70년. 다시 고국무대에 선 최양숙은 해외무대의 미련을 떨치고 새로운 음반 '꽃피우는 아이'를 발표하며 국내 활동을 개시한다. 이 음반은 당시 방송국 PD로 있던 오빠 최경식씨로부터 서울대 후배인 가수 겸 작곡가 김민기씨를 소개받으면서 취입이 이루어졌다.

 

이 음반은 특히 노래 전반에 깔리는 김민기씨의 기타반주가 압권으로 그녀의 분위기와 매우 잘 어우러진다. 사실 최양숙씨는 반주에 매우 예민한 편으로 반주가 거슬리면 노래에 몰입을 못하는 성격이라고 털어놓는다. 그녀는 이 음반을 통해 김민기의 곡 '가을편지' '꽃피우는 아이' 를 비롯해 '세노야' 등 포크 명곡들을 발표한다.

 

최양숙은 90년대 중반, 극작가 김숙씨의 제의로 드라마에도 간간이 출연, 오랜만에 브라운관을 통해 연기자로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지금까지도 연예인으로서 대중 앞에 섰던 것이 잘 선택한 것인지 혹은 그렇지 않은 것이었는지 분명한 판단이 서지 않을 정도로 갈등이 심했다는 그간의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제금 본명 '최양숙'으로 돌아와 아름다운 노래 '황혼의 엘레지'처럼 어느덧 황혼을 맞은 그녀. 그녀는 현재 그 이름 그대로 맑고 깊은, 그리고 아름다운 삶을, 듬직한 두 아들 가족과 더불어 아름답게 황혼을 펼쳐 보이고 있다.

 

sachilo@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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