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상추가 이겼네”…‘최단임 英 총리’ 트러스에 쏟아진 조롱
“양상추가 이겼다.”
미국의 뉴스 웹사이트 더 버지 소속 톰 워렌 기자는 그의 트위터 계정에 “트러스가 사임해 양상추가 이겼다”며 트러스 총리 얼굴에 양상추를 합성한 사진을 올렸다. 사진 트위터 캡처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20일(현지시간) 취임 44일 만에 사임 의사를 밝힌 뒤 영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나온 반응이다. 트러스 총리가 영국 역사상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됨에 따라 영국 내에선 “양상추 유통기한보다 트러스의 남은 임기가 더 짧았다”는 밈(meme·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퍼지는 유행어)이 유행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이날 영국 SNS에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임 의사를 밝히는 트러스 총리의 얼굴을 양상추로 덮은 사진이 올라왔다. 양상추를 연상케 하는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추는 모델의 동영상을 트위터에 올린 네티즌도 있었다.
영국 타블로이드 매체 데일리스타가 유튜브 채널에서 트러스 총리 임기와 양상추 유통기한을 비교하는 장면. 양상추 위에는 트러스 총리의 머리 스타일과 비슷한 가발이 씌워져있다. 사진 데일리스타 유튜브 캡처
트러스 총리의 임기를 양상추에 빗댄 풍자는 지난 11일 시작됐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트러스 총리를 ‘빙산의 여인(The Iceberg Lady)’이라고 부르며 그의 정치적 유효 기간이 양상추 한 포기가 상하는 데 걸리는 시간보다 더 빨리 다가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영국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기 시작한 건 14일 타블로이드 매체 데일리스타가 트러스 총리의 사진 옆에 양상추를 놓고 ‘트러스 총리가 양상추보다 오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실시간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면서다.
약 열흘로 알려진 양상추가 시들기까지 걸리는 기간과 트러스 총리가 사임 의사를 밝힐 때까지 걸릴 기간 중 어느 것이 더 길지를 두고 내기한 것이다. 결국 생중계 엿새만인 지난 20일 트러스의 사임 발표가 나왔다. 영국 네티즌들이 “이제 양상추가 총리” “양상추가 이겼다” 등의 반응을 보인 이유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트러스의 굴욕적인 사임으로 60펜스짜리 양상추가 이색 경쟁의 승자가 됐다”고 전했다.
트러스 총리는 지난 20일 런던 다우닝가 10 번지 총리관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 공약을 지킬 수 없어서 보수당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다”며 “찰스3세 국왕에게 사임한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AP=연합뉴스
한편 트러스 총리가 사임을 발표했지만, 그에 대한 영국 내 비판은 이어졌다. 가디언은 “영국인을 실험실에 갇힌 쥐로 만들어 이데올로기 실험을 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미 하늘을 뚫을 듯이 치솟은 집값 때문에 주택담보대출금을 갚느라 시민들이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그 누구도 감세안에 고마워하지 않을 것”이라며 “트러스 총리가 자유시장주의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지나치게 우파 이념에 매몰된 행보를 보였다”고 덧붙였다.
지난달 6일 취임한 트러스 총리는 450억 파운드의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구체적 재원 마련 방안을 말하지 않으면서 영국 국채 가격이 급락하고, 파운드화 가치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정치권과 시장에서 비판이 쏟아졌다. 트러스 총리는 급하게 감세정책을 철회하고 쿼지 콰탱 재무장관을 경질하며 반전을 노렸지만, 집권 보수당 내 싸늘한 여론을 견디지 못하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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