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핵무기는 美가 먼저 쓴 전례있다”... 점령지 합병 선언하며 核위협
“새로 생긴 4곳, 모든 수단 동원해 지킬 것”
서방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 위반” 반발
점령지 대표들과 만세 부르는 푸틴 - 30일 오후(현지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점령지 합병 조약 서명식이 끝난 뒤 블라디미르 푸틴(가운데) 러시아 대통령이 점령지 괴뢰 정부 대표들과 함께 손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살도 헤르손주 행정수반, 예브게니 발리츠키 자포리자주 행정수반, 푸틴 대통령, 데니스 푸실린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수장, 레오니트 파센치크 루한스크 인민공화국 수장. /로이터 뉴스1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30일(현지 시각) 우크라이나 동부와 남부 점령지의 괴뢰 정부 대표와 함께 이들 지역의 러시아 영토 편입을 선언하는 ‘합병 조약’에 서명했다. 돈바스 지역의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남부 헤르손 및 자포리자주(州) 등 총 4곳이다. 우크라이나 국토의 약 15%에 해당하는 점령지를 러시아 영토로 강제 합병하는 주요 절차가 일단락된 셈이다. 러시아 의회의 조약 비준 등 요식 절차만 거치면 10월 초 이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주장하는 발표가 나올 예정이다. 러시아는 이를 구실로 점령지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수복 시도를 “러시아 영토에 대한 공격”이라고 주장하며 핵무기 사용 위협을 고조시킬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강요·강압을 통해 불법적으로 이뤄진 영토 합병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러시아군 점령 4개 지역 대표와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후 모스크바의 러시아 대통령궁(크렘린궁)에 있는 성(聖) 게오르그홀에서 영토 합병 조약에 차례로 서명했다. 이는 지난달 23일부터 27일까지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투명 투표함’을 들고 다니며 실시한 주민투표 결과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러시아 정부에 따르면, 이 지역 주민투표는 지역별로 87~99%의 찬성률을 기록했다. 서명이 끝난 후 점령지 대표와 푸틴 대통령은 손을 맞잡고 “러시아, 러시아, 러시아 만세!”를 외쳤다.
푸틴 대통령은 서명식에 앞서 35분간 연설을 통해 “이번 합병은 유엔 헌장에도 나와 있는 민족 자결권에 의한 합법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또 “(유럽과 러시아의 예속화를 추구하는) ‘앵글로 색슨’ 국가들(미국과 영국)이 노르트스트림 가스관을 파괴했다”고도 했다. 그는 연설 내내 서방을 ‘러시아를 파괴하고 예속화하려는 식민주의자’라고 비난하면서 “러시아가 서방의 세계 지배 야욕을 저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행사에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 키릴 러시아정교회 총대주교,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람잔 카디로프 체첸 공화국 수반 등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과 독립국가연합(CIS) 주요 인사 800여 명이 참석했다. 푸틴 대통령은 앞서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 내 러시아군 점령지 중 아직 독립국 선언을 하지 않은 헤르손과 자포리자주에 대한 ‘독립국 승인 포고령’에 서명했다. 조약은 국가 간 약속이므로, 이들 2개 주 괴뢰 정부에 대한 국가 인정부터 한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앞으로 헌법재판소 승인과 러시아 하원 및 상원 비준, 그리고 푸틴 대통령의 최종 서명을 거치면 조약이 발효된다”고 전했다.
러시아는 이번 조약 체결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와 서방에 대한 핵 공격 압박의 강도를 더욱 끌어올릴 전망이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러시아 영토에 대한 공격에 ‘가용한 모든 수단’으로 대응하겠다”고 한데 이어, 이날은 “러시아에 새로 추가된 4개 지역을 지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핵무기는 미국이 (일본에) 사용한 전례가 있다”고도 했다. 우크라이나가 이들 지역에 대한 수복 작전에 나서면 러시아 영토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 핵무기를 쓸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도 “러시아는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으면 핵무기를 사용할 권리가 있다” “(위력이 약한) 전술 핵무기뿐만 아니라 (대도시나 국가를 초토화할 수 있는) 전략 핵무기도 쓸 수 있다”고 강조해왔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점령지 괴뢰 정부에 대한 국가 인정에 이어 조약 체결 절차가 진행되자 안보·국방 분야 최고위 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그는 “(영토 합병 조약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매우 가혹할 것”이라며 “쓸모없는 주민투표로 현실을 바꿀 수 없다”고 했다. 유엔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사회도 조약 체결을 거세게 비판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잘못된 투표를 통한 결정은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고, 절대 용인될 수 없다”며 “다른 나라의 영토를 무력이나 위협으로 병합하는 것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국제법을 무시한 불법적 합병 조약 체결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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