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분수대
아일랜드엔 독립기념일이 없다
입력 2017.09.01 02:23
고정애 정치부 차장
구글이 늘 답을 주는 건 아니다. 아일랜드, 정확하겐 아일랜드공화국의 독립일도 그런 경우다. 대충 “1918년 12월 총선에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주장하던 정파가 승리했고 1919년 1월 21일 독자 정부를 구성하고 독립을 선언했다”고 할 터인데 사정은 그리 명료하지 않다.
먼저 1916년 4월 24일 부활절 봉기가 있었다. 총선에 이은 독립선언이 뒤따랐고 독립전쟁 끝에 영국과 조약이 체결됐다. 1922년 12월 6일 자유국이 됐지만 영국 왕에 대한 충성맹세 여부를 두고 내전이 벌어져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북아일랜드는 영국 잔류를 택했다. 정전 후 1937년 12월 29일 공화국 헌법이 발효됐고 1949년 4월 18일 공화국으로 공식 출범했다.
이 중 어느 날일 것 같은가. 없다. 공식적으론 말이다. 800년 가까운 지배에서 벗어난 날이니 당연히 요구는 있었다. 올해도 관련 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정부가 뿌리쳤다. 설명은 이랬다.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독립 관련 100주년 행사가 줄줄이 다가온다. 그걸 치유의 계기로, 또 정치가 아닌 역사로 만들 수 있느냐가 우리의 할 일이다. 독립기념일을 지정하자고 하면 분열을 부를 텐데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편 가르는 것보다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
내전 당시 맞서 싸운 진영이 지금 1, 2당의 뿌리이며 ‘내전 정치’란 말이 통용될 정도로 갈등과 분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를 두고 집권세력에서도 사퇴 요구가 나오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1919년 건국’ 역사관과 달라서다. 정작 업무와 직결된 창조과학 연루 문제를 두곤 “종교의 자유”라며 대범했던 이들이다. 이 와중에 문 대통령은 재차 “2019년이 건국 100주년”이라고 했다.
이제 건국 논란은 기념일 차원을 넘어섰다. 정보통신 수장이 되려는 이의 명운도 쥐고 흔들며 “건국과 정부 수립이 다른지 몰랐다”고 고해토록 할 ‘핵심 가치’가 됐다. 이 정부에서 한자리하려는 이에겐 누구든 물을 테고 속이야 어떻든 그때마다 “1919년 건국”이라고 공언해야 할 희비극도 벌어질 터다. 참으로 편협하다. 아일랜드식 신중함을 부러워할 날이 올지 몰랐다.
고정애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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