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5·18은 끝났다" 5·18 겪은 철학자의 '5·18법 저주시'
[중앙일보] 입력 2020.12.11 18:49 수정 2020.12.11 19:19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5.18역사왜곡처벌법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11일 페이스북에 '나는 5.19을 왜곡한다'라는 제목의 시를 올린 최 교수는 법안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앙포토
“지금 나는 5.18을 저주하고 5.18을 모욕한다. 그 잘난 5.18들은 5.18이 아니었다. 나는 속았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가 11일 페이스북 게시글에 올린 시 ‘나는 5.18을 왜곡한다’의 내용 중 일부다. 그는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5.18역사왜곡처벌법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시를 썼다.
최 교수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자기 확신에 도취돼 역사 퇴행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는 법안”이라며 “5.18역사왜곡처벌법을 넘어 그 연장선상에서 전체주의적 독재의 길을 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5월 광주에서 21살의 나이로 5.18민주화운동을 겪었다.
최 교수는 시를 통해 5.18역사왜곡처벌법을 처리한 민주당을 5·18에 비유해 “5.18아 배불리 먹고 최소 20년은 권세를 누리거라. 부귀영화에 빠지거라. 민주고 자유고 다 헛소리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법안을 비판하는 문구로 시를 끝맺었다. “5.18역사왜곡처벌법에 21살의 내 5.18은 뺏기기 싫어.”
〈최진석 교수 '나는 5.18을 왜곡한다' 전문〉
지금 나는 5.18을 저주하고, 5.18을 모욕한다.
1980년 5월 18일에 다시 태어난 적 있는 나는
지금 5.18을 그때 5.18의 슬픈 눈으로 왜곡하고 폄훼한다.
무릎 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하면서
그들에게 포획된 5.18을 나는 저주한다.
그 잘난 5.18들은 5.18이 아니었다.
나는 속았다.
금남로, 전일빌딩, 전남도청, 카톨릭쎈타,너릿재의 5.18은 죽었다.
자유의 5.18은 끝났다.민주의 5.18은 길을 잃었다.
5.18이 전두환을 닮아갈 줄 꿈에도 몰랐다.
나는 속았다.
3.1, 4.19. 6.10, 부마항쟁의 자유로운 님들께
동학교도들의 겸손한 님들께
천안함 형제들의 원한에
미안하다.
자유를 위해 싸우다 자유를 가둔
5.18을 저주한다.
그들만의 5.18을 폄훼한다.
갇힌 5.18을 왜곡한다.
5.18이 법에 갇히다니.
자유의 5.18이 민주의 5.18이 감옥에 갇히다니
그들만의 5.18을 저주한다.
이제 나는 5.18을 떠난다.
5.18이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죽어라, 그러면 산다.
나는 5.18을 지키러 5.18을 폄훼한다.
그날처럼 피울음 삼키며
나는 죽는다.
5.18아 배불리 먹고
최소 20년은 권세를 누리거라
부귀영화에 빠지거라
기념탑도 세계 최고 높이로 더 크게 세우고
유공자도 더 많이 만들어라
민주고 자유고 다 헛소리가 되었다.
5.18 너만 홀로 더욱 빛나거라.
나는 떠난다.
내 5.18 속에서 나 혼자 살련다.
나는 운다.
5.18역사왜곡처벌법에
21살의 내 5.18은 뺏기기 싫어.
최 교수는 5·18역사왜곡처벌법에 대해 “토론과 대화를 제약하는 법안이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 자체를 매우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법안”으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독재의 길을 닮아가고 있다. 시를 통해 5.18이 전두환을 닮을 줄 몰랐다고 표현했단 게 이런 의미”라고 말했다. 이하 최 교수와의 일문일답.
Q5.18역사왜곡처벌법에 대한 시를 쓰게 된 계기는.
A“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평가와 논의를 국가가 법으로 막고 통제하고 독점하는 것은 큰 문제라고 봤다. 이런 태도는 5.18의 핵심 가치였던 ‘자유’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Q민주당은 5.18에 대한 왜곡과 비하를 막기 위한 법안이라고 그 취지를 설명한다.
A“5.18에 대한 평가는 자유로운 토론과 논의 속에 남겨두는 게 성숙한 민주주의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역사 왜곡을 한다 해도 이미 그런 왜곡을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의 성숙한 사회가 됐다고 본다.”
Q시를 통해 “자유의 5.18은 끝났다”고 썼다.
A“5.18 등 우리는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치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가 자유로운가. 민주주의로 가고 있는 것은 맞다. 그렇지 못하다고 본다. 군부 독재의 폭압적 행태를 닮아가고 있다.”
Q스스로 5.18의 당사자라고 하는 의원들이 왜 이 법안을 발의했다고 보나.
A“지금은 어떤 자기 확신에 도취돼 있다고 본다. 아주 위험한 상태다. 역사 퇴행적인 상황으로 가고 있다.”
Q그럼에도 민주당은 ‘역사 바로세우기’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A“역사 바로세우기, 비정상의 정상화, 적폐 청산 이런 것들은 사실 모두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거다. 대화가 불가능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을 매우 폭력적으로 억압하는 행태다. 독재의 길을 닮아가고 있다고 본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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