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도바 안의 친러 미승인國… 들어가보니 ‘1980년대 소련’
親러 트란스니스트리아, 정철환 특파원 르포
검문소에서 휴대폰 꺼내들자 “사진찍지마” 러 병사가 낚아채
시내엔 레닌 동상, 30년 넘은 車… ‘우크라가 드론 공격’ 미확인 뉴스
이곳 시민들도 징집될까봐 공포
몰도바 내 친(親)러 세력이 세운 이른바 ‘트란스니스트리아 공화국’의 경계선을 지키고 있는 것은 러시아군이었다. 27일(현지 시각) 몰도바 수도 키시너우 동쪽으로 약 46㎞ 떨어진 ‘구라 비쿨루이’ 마을을 지나 몰도바와 트란스니스트리아를 가르는 드네스트르강을 건너자 러시아군 검문소가 나왔다. 러시아 국기가 선명한 장갑차 옆에 ‘MC’(평화유지군을 뜻하는 러시아어 약자)라고 쓰인 조끼를 입은 러시아군이 소총을 들고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여권을 확인받는 사이 휴대폰을 꺼내 들자, 뒤에 서있던 러시아 병사가 바로 “사진 찍지 마(No photo)”라며 휴대폰을 낚아챘다. 얼굴이 새파래진 택시 기사가 “잘못하면 큰 봉변 당한다”며 화를 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트란스니스트리아의 ‘수도’ 티라스폴(Tiraspol)에 들어서자 간판과 표지판이 모두 러시아어로 바뀌었다. 시내 진입로 곳곳의 러시아군이 여기가 친러 세력이 장악한 분쟁 지역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콘크리트 구조물로 바리케이드를 친 한 초소에는 부대 식별 마크가 없는 민무늬 군복과 방탄조끼를 입은 병사도 눈에 띄었다. 크림반도 병합과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돈바스에 투입된 특수부대 요원 ‘리틀 그린맨’과 유사한 모습이었다. 시내 한복판에는 높은 담으로 둘러쳐진 러시아군 부대도 있었다. 명분은 평화유지군이지만, 사실상 이들이 티라스폴을 점령 중이었다. 이곳의 러시아군은 1500명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동부 돈바스에 몰래 병력을 투입했던 것처럼,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병력이 들어와 있으며, 전격적으로 몰도바 혹은 우크라이나에 투입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1991년 몰도바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1992년 6개월간의 내전 후 휴전 협정을 맺어 지금까지 국제적 분쟁 지역으로 남은 미승인국이다. 26일부터 잇따라 발생한 국가 보안부 폭발 및 라디오 송신탑 파괴 사건으로 국가 비상사태에 준하는 ‘적색 테러 경보’가 내려진 상태다. 시내의 한 아파트에서 만난 관광 안내원 알료냐(35)씨는 “오늘도 북동쪽 ‘콜바스나’ 마을을 우크라이나 무인 항공기(드론)가 공격했다는 소식이 뉴스에 나왔다”며 “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뛰어들 수도 있다고 한다”고 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정부는 이날 “무고한 대중을 노린 우크라이나의 테러 가능성이 있다”며 2차 대전 승전 기념일인 5월 9일 실시하려 했던 퍼레이드 행사도 공식 취소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폭발 사건을 빌미로 트란스니스트리아를 전쟁에 끌어들이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트란스니스트리아 시민들 역시 확전(擴戰) 가능성에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전날에는 몰도바로 탈출하려는 차량 수천대가 검문소로 몰려들어 큰 혼란이 빚어졌다. 드미트리(45)씨는 “우크라이나의 ‘특별 군사작전’을 잘 알고 있다”며 “그저 이 땅에서 전투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했다. 젊은 남성들 사이엔 재입대에 대한 두려움도 퍼지고 있었다. 티라스폴 도서관 근처 식당에서 만난 아르템(24)씨는 “러시아 징집병들처럼 우크라이나에 투입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18세 이상 트란스니스트리아 남성은 병사는 1년, 장교는 2년의 의무 군 복무를 하고 있다.
티라스폴 시내는 마치 1980년대 소련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었다. 시내 중심가의 시청과 정부 청사, 시민 센터 등 주요 건물은 모두 구(舊)소련 시절에 지은 것들이다. 무장한 군인들 사이로 구소련 시절 생산된 승용차와 트럭들도 여전히 굴러다니고 있다. 소련 붕괴 후 몰도바가 되는 것을 반대해 독립한 지역답게 소련의 국부(國父)로 숭앙되는 레닌의 대형 동상도 있었다. 근처를 지나던 이고리(60)씨는 “소련 시절 이곳은 러시아에서도 오고 싶어 할 만큼 번성하던 도시였다”며 “할 수만 있다면 그 당시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전쟁으로 구소련을 재건하려는) 푸틴의 방법은 완전히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내 주거지와 상업 시설은 심각하게 퇴락했다. 티라스폴 서쪽 외곽의 일부 건물에는 내전 당시 생긴 총탄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았다. 지역 주민은 “상당수 건물이 30년 가까이 관리가 안 된 상태”라고 했다. 트란스니스트리아는 구소련 붕괴와 내전 이후 산업 기반이 상당 부분 파괴됐고, 수년 전 금융 위기도 겪으면서 유럽 최빈국이라는 몰도바보다도 경제가 낙후한 상태다. 경제 고립도 심각해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알료냐씨는 “세계 대부분 국가가 이 나라를 인정하지 않는 탓에 외국에 가려면 러시아나 몰도바 여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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