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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정부 검찰개혁, 실패 이유

Jimie 2020. 12. 6. 15:04

[기자수첩]文정부 검찰개혁이 실패한 이유

아시아경제  |입력2020.12.06 13:51 |수정 2020.12.06 14:00 |

 

최석진 법조팀장.

 

[아시아경제 최석진 기자] ‘검찰개혁’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최우선 국정과제로 꼽고 추진해온 정책 중 하나다. 그만큼 국민적 기대감도 컸고 ‘검찰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충분히 형성돼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 임기 절반을 넘어선 지금 검찰의 모습을 지켜보면 개혁을 통해 거듭난 모습이라기보다는 말 그대로 ‘개판 5분 전’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이른바 ‘윤석열 라인’ 같은 걸 없애겠다며 추진한 인사개혁으로 정권의 신임을 받은 검사들이 핵심요직을 차지했고 그 검사들이 다시 자신을 따르는 검사들을 중용하는 인사의 악순환이 반복되며 검찰 내에는 ‘秋 라인’, ‘이성윤 라인’이라는 새로운 주류가 형성됐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이후 국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수사들을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수장이 검찰총장에게 대면보고를 안 한지는 이미 오래됐다.

 

검찰조직 개편을 이유로 총장에게 전국 일선 검찰청의 중요 사건 수사를 보고하는 핵심부서 인력을 축소하고 총장의 참모진이라 할 수 있는 대검 간부들까지 장관이 직접 골라 자기 사람을 심어놓다 보니 총장 스스로 자신을 ‘식물총장’이라고 얘기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국회에서 연출되기도 했다.

 

급기야 정치적 외압으로부터 검찰을 보호하는 바람막이 역할을 해야 할 법무부 장관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나 ‘월성 1호기’ 사건 등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수사로 눈 밖에 난 검찰총장을 몰아내기 위해 총장에 대한 여러 건의 수사를 지휘하고, 징계를 청구하며 직무에서 배제시켰다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장관과 총장 간 ‘막장 드라마’ 못지않은 소송전이 진행되면서 수많은 피해자를 울린 라임·옵티머스 사건 수사는 환매중단·펀드사기 등 수사본류보다 ‘정관계 로비’·‘검사 술접대’ 수사에만 관심이 모아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여권에선 이번 추 장관의 조치에 대한 검사들의 집단반발을 ‘검찰개혁’에 대한 저항으로 치부하며 기어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비위를 저지른 징계 대상으로 낙인찍어 총장직에서 몰아낼 생각인 거 같다.

 

추 장관이 영전시키며 ‘라임’ 수사 지휘를 맡긴 박순철 서울남부지검장이 “정치가 검찰을 덮어버렸다”며 사퇴했고,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과 더불어 차기 검찰총장 ‘0순위’로 꼽힐 정도로 정권의 신임을 받던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마저 추 장관에게 “검찰개혁을 위해 한 발 물러나 달라”고 쓴소리를 하고 나섰다.

 

사법부가 윤 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와 직무정지 명령이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고 하는데도 징계위를 강행하려는 추 장관에 반발, 추 장관이 자신의 핵심 참모로 발탁한 고기영 법무부 차관마저 사표를 내던졌다. 이성윤 지검장의 총애를 받으며 검사장 승진이 보장됐던 김욱준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도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존재가치를 위협하는 조치를 즉각 중단해 달라”며 사퇴했다.

 

원래 검찰 내에서 실력을 인정받지 못해 한직을 떠돌거나, 이 정부에 찍혀 승진 가능성이 없는 비주류 검사들의 푸념 섞인 목소리가 아니다. 추 장관 취임 이후 가장 잘 나가던, 추 장관이 ‘내 편’이라고 생각했던 검찰 최고위층의 진심어린 외침이다.

 

전국 일선의 모든 검찰청 검사들이 추 장관의 조치가 위법·부당하다는 성명을 내는 등 평검사부터 고등검사장, 검찰 사무직원들까지 한 목소리로 추 장관에게 재고를 요청했고, 변호사나 법학교수 단체는 물론 친여 성향의 시민단체인 참여연대까지 추 장관의 조치가 부당함을 지적하고 나섰지만 부끄러워해야 할 추 장관은 전혀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모습이다.

 

특히 추 장관은 “검찰총장이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에 맹종할 경우 검사들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유지될 수 없다. 법무부장관의 검찰, 특히 검찰총장에 대한 구체적인 지휘·감독권의 행사는 법질서 수호와 인권보호, 민주적 통제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최소한에 그칠 필요가 있다”며 윤 총장에 대한 직무정지 명령의 효력을 정지시킨 법원의 결정이 나온 이후에도 조금도 자신의 생각을 되돌아보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내가 장관이고 총장은 내 부한데 수사도 내가 하라는 대로 할 것이지 왜 말이 많아’, 추 장관의 머릿속에는 아마도 이런 생각이 꽉 차 있는 것 같다.

 

특히 지난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던 추 장관이 법원의 결정 이틀 뒤인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윤 총장에 대한 징계위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노 전 대통령의 영정 사진을 함께 올린 건 여론전을 의식한 ‘정치쇼’가 아닐 수 없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윤 총장만 몰아내면 법무부 장관으로서 내 역할은 다 한 셈’이라는 생각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행보를 지금 추 장관은 보이고 있다.

 

문재인정부 검찰개혁이 이처럼 실패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검찰의 힘을 빼는 것’이 곧 ‘검찰개혁’이라고 생각한 점이다.

 

물론 검찰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집중되며 그동안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해온 건 사실이다. 제도 개혁을 통해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는 것이 검찰개혁의 중요한 수단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침’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 ‘개혁’의 방향은 보다 나은 결과를 위한 것이어야 명분을 가질 수 있다.

 

안타깝게도 문재인정부가 추진해온 ‘검찰개혁’은 그렇지 못했다. 검찰의 힘 빼기에 모든 것을 집중하다보니 그 결과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검찰의 수사권한을 대폭 축소해 경찰로 이관시키고 검사의 수사지휘권을 없애는 법 개정에 성공했지만 검찰과 비교할 수 없는 방대한 조직을 거느린 경찰을 어떻게 통제할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아직 부족해 보인다.

 

문 대통령은 법무부의 ‘탈(脫)검찰화’를 위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박상기 교수와 조국 교수 등 법 이론가를 잇따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한데 이어 판사 출신이긴 하지만 판사 재직기간 몇 배의 시간을 정치권에서 활동한 추미애 장관을 임명했다.

 

검사 출신을 피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그래도 ‘검찰개혁’이라는 중책을 맡은 이들이 너무 검찰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이 문재인정부 ‘검찰개혁’ 실패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던 건 분명해 보인다.

 

‘책으로 연애를 배웠다’는 말이 ‘연애초보’를 놀릴 때 사용되듯이 아무리 오랜 기간 법학을 연구하고 강의했다고 해도, 또 정부의 형법이나 형사소송법 개정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낸 경력이 있다고 해도 그것이 직접 범죄자를 상대로 수사를 해본 경험을 대체하거나 수사 경험과 비교될 순 없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한 사람들이라면 사법시험을 통과해 검사나 판사 혹은 변호사 등 실무가로 활동해본 경험이 있는 교수와, 그렇지 못한 교수의 강의가 갖는 차이점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검사의 수사지휘권 폐지’ 등 1954년 제정된 형사소송법을 66년 만에 대폭 개정해 수사의 틀을 바꾸는 중요한 작업이 수사 경험이 한 번도 없는 법무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의 주도록 이뤄진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

 

아무리 교수가 이론에 밝다한들 수술실에서 환자를 수술한 경험이 단 한 차례도 없고, 수술할 자격증도 따지 못한 사람에게 ‘수술 매뉴얼’을 만들라고 맡긴다면 그 매뉴얼을 과연 환자들이 신뢰할 수 있겠는가. 정부가 추진해온 여러 검찰개혁 방안들이 일선 검사들의 공감을 얻어내기 어려운 이유다.

 

검찰 인사도 문제가 많았다. 어느 조직보다 인사에 민감한 게 검찰 조직이다.

 

역시 검찰개혁 방안이라며 특수부, 공안부 등 검찰 내 소위 잘 나가는 검사들이 배치됐던 부서를 아예 없애거나 이름을 형사부로 바꾸고, 형사부·공판부 검사를 우대한다며 파격 인사를 단행했지만 이는 ‘무능한 검찰’이라는 부작용을 낳았다.

 

목적을 위해 모든 수단이 용인되는 ‘검찰개혁’ 명분하에 성적이 좋고 수사 잘하는 검사들은 지방 한직으로 밀려 뒷방 신세가 됐다. 그리고 그 자리는 몇 안 되는 친정부 성향의 검찰 간부들과 그들이 선택한 ‘특정 라인’ 검사들이 차지했다.

 

물론 검찰 내 특수통만 우대받고 특수부를 거치지 못한 검사들이 형사부에서 형사부로만 옮겨 다니던 인사 패턴에 변화가 필요했다는 점은 공감한다. 하지만 그 변화는 특정한 정치 성향이나 소위 ‘라인‘을 통한 인사를 배척하고 검사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줄 수 있는 것이어야지 실력과 능력이 무시되거나 실력과 거꾸로 가는 인사가 돼선 안 될 것이다.

 

불행하게도 추 장관 취임 이후 단행된 인사에서는 실력보다는 ‘내 편’인가 아니면 윤 총장 편인 ‘특수통’인가에 따라 운명이 갈린 경우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검사들, 특히 사법연수원 동기 검사들 사이에는 본인들이 인정하는 기수 내 선두주자들이 있다. 누가 봐도 실력으로 보나 수사 실적으로 보나 눈에 띄는 검사들이다. 그런 검사들이 지금까지는 특수부에 발탁됐고,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물론 정치적 고려로, 장관이나 총장과의 인연으로 능력에 비해 과분한 자리에 오른 사례가 없진 않았지만 적어도 ‘아 저 친구는 저 자리 갈만하지’라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그 같은 인사의 기준이 되는 검사에 대한 평가는 단지 어느 대학을 졸업했는지, 사법연수원 성적이 몇 등이었는지를 떠나 검사로서 근무하며 어떤 모습을 보여줬는지에 대한 선배 검사들의 평가가 바탕이 됐다.

 

그런데 추 장관이 단행한 인사에서 이 같은 최소한의 기본이 무너졌다. 실력보다는 다른 요소들이 승진과 좌천의 이유가 됐다. 실제 각 기수의 선두주자들이 보임됐던 서울중앙지검 부장자리에 검찰에 10년 이상 근무했지만 이름도 잘 못 들어 본 검사들이 여럿 있어 놀랐다는 검찰 출신 변호사들의 반응은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인사권자인 추 장관이 뒤에 버티고 있으니 추 장관의 전폭적인 신뢰를 받는 이성윤 지검장은 정작 검찰 내 직속상관인 총장에게 보고를 안 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조국 전 장관이 임명하고 역시 추 장관이 지원하고 있는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은 자신의 소속을 망각한 듯 윤 총장의 참모로서의 역할보다 윤 총장을 조사하는 추 장관의 선봉대 노릇을 하고 있다. 검찰을 개혁하려다가 검찰을 ‘콩가루 집안’으로 만든 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사가 제대로 될 수가 없다.

 

법무부도 ‘개판 5분 전’인 건 검찰과 마찬가지다.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청구·직무정지 명령이라는 중요한 공문은 결재권자인 심우정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의 결재가 생략된 채 대검에 발송됐다. 추 장관의 지시를 받고 윤 총장을 조사하고 있는 법무부 감찰부에선 추 장관의 오른팔로 떠오른 박은정 감찰담당관이 상관인 류혁 감찰관을 패싱하고 보고조차 생략하는 상황이 용인되고 있다. 심 실장이나 류 감찰관이나 추 장관의 조치에 반대하는 입장이라는 이유다.

 

무엇보다 문재인정부 검찰개혁이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검찰을 장악하고자 하는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한 점이다.

 

“검찰을 개혁해 정상으로 돌리겠다”는 순수했던 마음이 “검찰을 ‘내 편’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변질됐고, 그게 뜻대로 되지 않자 ‘내 편’에 칼을 겨눈 윤 총장을 공격하는 비정상적인 상황까지 와버린 모양새다.

 

특히 전 정부 국정원 등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로 좌천돼 검찰을 떠났던 윤 총장이 최서원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에 차출돼 종횡무진 활약할 때,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사법농단’을 파헤칠 때 그토록 환호하고 박수쳤던 문재인정부가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계기로 180도 윤 총장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며 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의 순수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애초 문 대통령도, 여당도 일단 수사가 시작되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윤 총장의 스타일을 모르고 총장에 임명한 건 아니지 않는가. 오히려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해서 파격인사를 통해 서울중앙지검장에 이어 검찰총장이라는 중책을 맡긴 게 아니었는가.

 

그런데 장관 임명 전 여러 비위 사실이 드러난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이유로 윤 총장을 공격하고, ‘유재수 감찰 무마’ 사건이나 최근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조작 의혹’ 사건 등 명백한 범죄 혐의가 있어 개시한 수사를 ‘우리 편에 대한 수사’라는 이유로 무작정 ‘정치적 의도가 있는 수사’, ‘검찰권 남용’으로 몰아간다면 상식적으로 어느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 최근 추 장관이 윤 총장의 비위사실이라며 징계 청구와 직무배제의 근거로 삼은 의혹 중에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불과 1년여 전 윤 총장의 인사청문회 때 “이미 깨끗이 클리어가 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의혹들이 포함돼 있다. 같은 의혹을 놓고 상황에 따라 ‘아무 문제가 없던 일’을 ‘검찰총장이 직에서 해임될 만한 엄청난 일’로 바꾸는 모습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은 법에 근거해 합법적으로 사람의 ‘신체의 자유’라는 중요한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이다. 특히 권력자 입장에서 정적을 제거하거나 말을 듣지 않는 대기업을 혼내주는 수단으로는 검찰 수사만한 게 없다. 또 내 편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서도 검찰의 도움은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늘 권력을 잡은 세력은 검찰을 내 편으로 만들고 싶은 유혹을 이겨내지 못했다. 정권이 바뀌면 관행처럼 늘 전 정권 인사들에 대한 비리 수사가 반복된 것 역시 이런 속성 탓이다.

 

하지만 문재인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검찰개혁’을 강조해온 정부다. 그리고 검찰개혁의 핵심은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한 수사’를 보장하는 일이다. 지금 추 장관이 그 검찰개혁의 핵심을 무너트리고 있다. 추 장관을 경질하면 ‘검찰개혁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든가 ‘레임덕이 당겨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겠지만, 지금 이대로 추 장관의 폭주를 방치하면 더 큰 걸 잃을 수 있다.



최석진 기자 csj0404@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