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여 년 전 러시아제국 변방 우크라이나의 작은 마을. 유대인 농부가 큰딸을 시집보내며 감회에 젖습니다. 결혼식은 그러나 들이닥친 러시아 경찰들에게 짓밟힙니다. 러시아혁명의 혼돈 속에서 추방령이 떨어지고 마을사람들은 뿔뿔이 유랑의 길을 떠납니다.
우크라이나 태생 바이올린 거장 아이작 스턴의 선율이 민초들의 수난사를 애잔하게 위로합니다.
타라스 셰브첸코는 '우크라이나의 윤동주'입니다. 나라 없던 시대, 우크라이나어로 시를 써 민족의 가슴에 자유와 저항의 불길을 지폈습니다.
"나 죽거든, 그리운 우크라이나 들판에 묻어주오. 떨쳐 일어나 예속의 사슬을 끊고, 적들의 피로써 자유를 지켜주오"
그의 시는 오렌지혁명 때 시민들의 피켓마다 쓰여 있었고, 친러 정권을 몰아낸 시위에서도 암송됐습니다.
이제 셰브첸코의 후예들은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자유를 지키는 사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아빠는 혼자 키이우에 남았어요.우리 군인 영웅들을 돕고 있어요."
나흘 안에 수도 함락을 자신했던 러시아가 뜻밖의 결사항전에 주춤거리다 민간인까지 무차별 살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잠옷 바람으로 숨진 이 여섯 살 소녀의 눈빛을 "푸틴에게 보여줘라"고 절규했습니다.
러시아가 국제사회가 금지하는 대량살랑무기, 진공폭탄과 집속탄까지 사용했다는 주장이 나온 데 이어 푸틴이 급기야 핵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핵무기 운용부대에 특별 전투임무 돌입을 명령해 우크라이나와 자유진영을 협박하고 나섰습니다.
전쟁광이 아니라면 지금 이 시대에 누가 핵 단추에 손을 올리고 이웃나라를 위협할 수 있겠습니까? 철권통치 독재자가 핵을 어떻게 악용할 수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핵전쟁 가능성을 일축했습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언론과 전문가들은 푸틴의 정신상태를 걱정합니다. 오랜 무소불위 권력을 누리면서 자아도취와 과대망상에 빠졌을 수 있다는 겁니다.
푸틴의 행보는 당장 북한의 오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이미 여러 차례 핵 위협을 해왔습니다. 엊그제는 푸틴에 맞장구라도 치듯 미사일 시위를 벌였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정부의 어정쩡한 태도도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외교란 적이 동지가 되고, 또 언제든 그 반대가 될 수 있는 겁니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라면 목소리를 내야 할 땐 단호하게 목소리를 내야 합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국제사회가 한 목소리를 내는 러시아 제재에 뒤꽁무니를 빼고 있다가 뒤늦게 우리 기업들의 피해 얘기가 나오자 부랴부랴 합류했습니다. 창피한 일이지요? 이런 우리를 북한은 또 어떻게 보겠습니까?
3월 2일 앵커의 시선은 '창피하고 걱정스럽습니다' 였습니다.